정치인들이 택배노동자에게 해야 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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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를 지키려면 아내가 자궁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수술 날짜를 잡고 대리점주에게 이틀 정도 빠져야 하는 이유와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돌아오는 답변이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히더군요. ‘야, 네 와이프는 하필 이럴 때 아프고 그러냐.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다들 바빠서 죽으려고 하는데. 네 와이프도 참 유난이다. 네가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부탁해. 나는 모르겠다’ 이러더군요. 저도 압니다. 다들 많이 바쁘고 어렵다는 거. 그런데 가장 힘든 당사자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 있나요. 5년 동안 함께 일했습니다.”

전국택배연대노조원들이 지난 7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오는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강윤중 기자

전국택배연대노조원들이 지난 7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오는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강윤중 기자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민간 택배업체 대리점에서 일하는 한 택배기사의 편지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했다.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다. 법이 보장하는 노동시간, 휴가 등을 보장받지 못한다. 담당구역의 배송을 끝내지 못하면 쉴 수 없는 구조다. 가족이나 자신이 아파도, 경조사가 생겨도 업체들은 담당구역의 물량을 조정해주지 않는다.

지난 7월 초 CJ대한통운 소속의 택배노동자 서형욱씨(47)가 숨졌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서씨는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증가하면서 피로를 호소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맡은 지역의 배달을 책임지느라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숨지기 일주일 전, 몸에 갑작스러운 이상을 느꼈고 그제야 병원을 찾았다. 병원 도착 직후 그는 심근경색으로 정신을 잃었고,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그에 앞서 지난 3월과 5월 두 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택배노동자야말로 코로나19 사태의 와중에 우리의 일상을 유지해준 ‘숨은 영웅’이지만, 가장 보호받지 못한 이웃이기도 하다. 업체들은 비정규직인 이들에게 마스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이들이 일하는 물류창고는 코로나19 확산 경로가 되기도 했다. 집배원과 함께 우체국 택배를 나눠맡고 있는 위탁 배달원들은 택배연대노조에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제 동료의 배송담당구역은 (코로나19 환자를 격리치료하는) ‘○○의료원’입니다. 그 친구는 의료원 정문에서 소독도 하고, 위생에 철저했고, 목숨 걸고 책임 있게 배송했다고 합니다. 집에 가면 밖에서 옷을 다 벗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집에는 갓 태어난 3개월도 안 된 아기가 있었거든요. 혹시나 의료원에서 (묻어온) 코로나가 가족, 그리고 아기를 전염시킬까봐 그랬다고 합니다. 안아주고 싶어도 불안해서 안아주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오는 8월 14일 ‘짧은 휴가’를 가게 됐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 등이 전국택배연대노조와 전국택배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이날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일부 노조원만 참여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택배업체들이 참여하면서 택배노동자 대부분이 쉴 수 있게 됐다. 우체국 택배를 담당하는 위탁 배달원의 경우, 지난해 택배연대노조와 우체국물류지원단이 단체협약을 맺어 ‘경조사 발생 시 휴가’, ‘이틀간의 여름휴가’ 등을 보장하고 있어 그나마 다른 업체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의 정치인들은 “택배 산업 28년 만에 택배노동자들이 휴가를 가게 됐다”며 자신의 SNS에 축하의 글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남겨야 할 글은 축하편지가 아닌 사죄의 편지다.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택배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겠습니다.”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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