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아야 소피아의 ‘기구한 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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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세속주의 국가 터키에 이슬람 색채를 강화해 ‘21세기 술탄’으로 불린다. 최근 그의 이슬람주의 행보가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고대 동로마(비잔티움)제국 당시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 예배당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야 소피아까지 모스크로 변경하도록 한 것이다.

터키 국기로 티셔츠를 맞춰 입은 남성들이 7월 15일(현지시간)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앞 광장에서 터키 국기를 들고 달리며 쿠데타 실패 4주년 기념행사 리허설을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터키 국기로 티셔츠를 맞춰 입은 남성들이 7월 15일(현지시간)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앞 광장에서 터키 국기를 들고 달리며 쿠데타 실패 4주년 기념행사 리허설을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에르도안 정부가 장악한 터키 최고행정법원은 지난 7월 10일 아야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사용하도록 한 1934년 내각회의의 결정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리며 아야 소피아를 86년 만에 모스크로 되돌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남짓 지난 7월 19일, 에르도안 대통령은 아야 소피아를 깜짝 방문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안팎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아야 소피아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이 지지 세력 결집이라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을 이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집트의 최고 이슬람법 권위자인 ‘대 무프티’ 샤우키 알람조차 7월 18일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교회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선지자 무함마드는 전시에도 사원이나 수도자들을 죽이지 말라고 말했다”고 비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7월 12일 “성 소피아를 떠올리면 깊은 슬픔에 잠긴다”며 “내 마음은 성 소피아에 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조셉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도 유감의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아야 소피아를 깜짝 방문하며 이슬람주의자들의 결집을 꾀한 것은 민심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은 지난해 지자체장 선거에서 수도 앙카라를 포함해 대도시 5곳 중 4곳을 야당에 내줬다. 그중에서도 재선거까지 치르고도 최대 도시 이스탄불 시장을 야당에 내준 것이 특히 뼈아팠다. 이스탄불은 에르도안이 시장을 지내며 총리·대통령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에 아야 소피아가 있다.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전환한 시점을 보면 에르도안 정부의 속셈은 더욱 명확해진다. 정부는 올해 들어서도 리라화 폭락을 막지 못했고, 코로나19 위기에 잘 대처하지도 못했다. 중동 전문매체 미들이스트모니터는 이런 상황에서 에르도안은 이스탄불을 비잔티움제국으로부터 빼앗은 오스만제국 술탄 메흐메트 2세의 영광을 자신이 다시 재현했다고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침 터키 최고행정법원이 모스크 전환 판결을 내린 시점은 세속주의자들이 중심이 돼 일으킨 7월 15일 쿠데타 실패 4주년이 되기 며칠 전이었다.

아야 소피아는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왔다. 비잔티움제국에서는 정교회 예배당, 중세 십자군 점령 이후에는 가톨릭 성당, 오스만제국에서는 황실 모스크, 터키 공화국에서는 박물관이었다. 그나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원형을 지켜올 수 있었다.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지킬 수 없는 아야 소피아의 슬픈 처지는 언제쯤 끝이 날까.

<박효재 산업부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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