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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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DVD’라고 하면 보통 영상 저장매체인 ‘디지털비디오디스크’를 떠올릴 겁니다. 지금은 이것도 한물갔지만 VTR 시대가 저문 뒤 등장해 한동안 인기를 끌었죠.

[편집실에서]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DVD라는 말은 아주 고약한 뜻의 속어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영국인들이 아시아계 사람들을 비하할 때 쓰는 인종차별 용어입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길거리에서 불법 복제 DVD를 판다는 의미에서 나온 모욕적 표현입니다. 얼마 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토트넘)가 교체되면서 벤치로 들어가자 상대편의 한 팬이 “DVD 나간다”라고 했다가 논란이 일었습니다. 하필이면 1골 1도움을 올리며 프로 데뷔 후 처음이자 아시아 선수 최초로 ‘10골-10도움’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날에 말입니다.

손흥민 선수뿐만이 아닙니다. EPL에서는 ‘검둥이’·‘원숭이’와 같은 인종차별적 표현은 물론이고, 양쪽 눈을 옆으로 찢는 제스처나 흑인 선수를 향해 바나나를 던지는 저급한 행위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사의 나라’가 아닌 ‘훌리건의 본고장’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셈입니다.

지난 7월 15일자 <경향신문> 국제면에 실린 아주 의미 있는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네덜란드의 고교 졸업반 학생 3명이 정부 사이트에 ‘학교에서 인종차별 교육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온라인 청원을 올렸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시민의 공감을 얻어 결국 관련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프리카계·아시아 출신인 이들 세 학생은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학교 커리큘럼이 변해야 한다. 학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청원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이들의 청원이 성과를 올리면서 네덜란드에서는 식민주의 역사를 반성하자는 여론도 높아졌다고 합니다.

미국 프로스포츠계에서 인종차별적 구단명으로 유명한 미국프로풋볼(NFL)의 워싱턴 레드스킨스가 87년 만에 팀 이름을 변경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나왔습니다. 피부색이 빨갛다는 뜻의 ‘레드스킨스’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구단 측은 그동안 팀명 고수 입장을 유지해왔지만 페덱스와 나이키, 아마존 등 굵직한 스폰서 기업들이 “팀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스폰서 계약을 철회하겠다”고 통보하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들 역시 ‘인종차별 기업’으로 낙인찍힐 경우, 매출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란 이유에서 구단에 압력을 행사한 걸로 보입니다.

지난 5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환기시켰습니다. 물론 차별 행위가 완전히 뿌리뽑힌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제 미국의 ‘흑-백 간의 갈등’을 넘어 점차 글로벌 이슈가 되어가고 있는 양상입니다. 인종차별은 비단 서구의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다문화사회가 된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잘못된 관습과 통념을 하나둘 바꾸자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꿈틀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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