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구창모, ‘최고의 투수’로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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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전 야구대표팀 감독은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마친 뒤 한국야구의 미래를 위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김인식이 이끈 대표팀은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013년 대회 이어 2연속 1라운드 탈락이었다.

NC 다이노스 구창모 / 연합뉴스

NC 다이노스 구창모 / 연합뉴스

김 감독은 2006~2007년 류현진(토론토)·김광현(세인트루이스)·양현종(KIA) 등 걸출한 투수가 나온 이후 위협적인 투수가 나오지 않은 것을 문제점으로 거론했다. 당시 김 감독은 “물론 좋은 투수가 나오기는 했지만 최근 10여 년간 김광현·류현진처럼 타자가 무섭게 느끼는 투수가 나오지 않았다”며 “야구는 투수가 강해야 제대로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대학교에서 좋은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 가능성을 가진 투수들도 타자가 무섭게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김 감독의 말은 야구계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걸출한 투수가 왜 나오지 않는지, 나오더라도 왜 성장을 할 수 없었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그러나 올 시즌만큼은 다르다. 이런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선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NC 구창모(23). 구창모는 7월 14일 현재 11경기에 나와 8승 무패 평균자책점 1.48을 기록 중이다.

2015년 2차 1라운드 3순위 지명

가히 리그 최고의 투수라고 할 만하다. 평균자책점 부문은 키움 에릭 요키시(1.41)에 이어 2위에 올라 있고, 다승 부문은 두산 라울 알칸타라, 키움 요키시, NC 드류 루친스키와 함께 공동 1위다. 삼진 부문도 1위다. 82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2위 롯데 댄 스트레일리가 기록한 78개와 4개 차이로 벌어져 있다. 이밖에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은 0.81로 1위, 퀄리티스타트는 10차례로 공동 3위, 피안타율은 0.181로 1위를 기록 중이다. 웬만한 투수기록 상위권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천안남산초-덕수중-울산공고를 졸업한 구창모는 201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3순위로 NC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계약금은 1억5000만원이었다. 구창모는 팀의 오랜 고민인 ‘좌완 목마름’을 해결해줄 투수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프로 무대는 녹록지 않았다. 입단하자마자 스프링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중도 귀국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15년 퓨처스리그에서 한 해를 보냈다. 이듬해에는 스프링캠프까지 거쳐 시범경기까지 1군 선수단에서 살아남았다. 당시 김경문 감독(현 국가대표팀 감독)은 구창모를 개막 엔트리에 넣으면서 기대감을 표했다. 그해 구창모는 기대에 부응했다. 39경기에서 68.2이닝을 소화하며 4승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4.19를 기록했다. 8월 초까지는 구원 등판했다가 8월 중순부터는 팀 사정상 임시 선발로 나서기도 했다.

구창모는 그해 포스트시즌 무대까지 밟는 영광을 안았다. NC는 플레이오프에 승선했고,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NC는 한국시리즈에서 마주한 두산에 4경기를 내리 져 안방에서 두산이 샴페인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당시 구창모는 두산이 우승의 기쁨에 겨워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을 지켜본 선수 중 하나였다. 그는 “내년에 복수하려고 한다. 고등학교 때 결승전을 하는 기분과 비슷했지만 확실히 달랐다”면서 ‘복수의 역투’를 선보이기로 했다.

이렇게 굳은 다짐을 한 구창모에게 김경문 전 감독은 확실한 기회를 줬다. 김경문 감독은 “구창모는 NC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투수가 될 것”이라면서 그를 확실하게 키우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2017시즌을 앞두고 구창모를 선발 자원으로 낙점한 김 감독은 “구창모에게 선발투수로서의 기회를 10번은 무조건 준다”고 했다. 많은 기회를 얻은 구창모는 그해 31경기에서 7승 10패 평균자책점 5.32를 기록했다.

지난해 첫 10승 거두며 잠재력 증명

하지만 받은 기회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선발로 등판한 25경기에서 109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한 경기 평균 이닝은 4.36으로 직전 해(4.4이닝)보다 더 줄어들었다. 퀄리티스타트도 세 차례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구창모가 등판하는 날이면 불펜투수들이 일찍 몸을 풀어야 했다.

2018시즌은 구창모에게 시련의 해였다. 36경기에 나서 5승 11패 평균자책점 5.35로 성적이 더 하락했다. 그해에는 김경문 감독이 시즌 중반 사퇴를 하기도 했다. 구창모에게는 꾸준히 기회가 갔지만, 다시 발돋움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없었다. 그는 “나 때문에 불펜 형들이 고생한다”며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귀인’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던가. NC는 2019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리그 최고의 포수 양의지를 손에 넣었다. 양의지 영입은 NC팀 전체는 물론 투수 중 한 명인 구창모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시즌 시작은 순탄치 못했다. 구창모는 시즌 개막 직전 부상으로 이탈했고,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5월 3일 KIA전에서 복귀 후 4경기 연속 구원 등판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렸던 구창모는 5월 17일 LG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됐다. 그리고 구창모는 NC 구단이 꿈에만 그리던 좌완 선발 10승을 달성했다. 2019시즌 10승 7패 평균자책점 3.20을 기록하며 팀의 어엿한 선발투수로서 자격을 증명했다. 구창모가 그동안 쌓은 경험도 힘이 됐지만, 양의지의 적극적인 리드가 그에게 큰 변화를 안겨줬다. 덕분에 2018년 꼴찌에서 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성과를 이뤘다.

시즌 막판 다시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구창모는 허리 피로골절로 4주 진단을 받으면서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물론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까지 참가하지 못했다. 남들보다 더 빠른 비시즌을 맞이한 구창모는 더욱 신중하게 몸을 만들었다. 2019시즌 경험을 바탕으로 완급 조절도 터득했다. 주무기인 커브 외에도 슬라이더와 포크를 가다듬었고, 직구의 완급 조절 능력까지 터득했다. 덕분에 올시즌 리그를 평정하고 있다. 이제 상대팀들은 구창모를 만나면 일찌감치 ‘어려운 경기’라고 생각할 정도다.

구창모는 2006년 류현진(당시 한화) 이후 좌완 첫 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넘보고 있다. 특히 삼진 부문에서는 고 최동원이 1984년 기록한 시즌 최다 삼진수(223개) 돌파도 기대할 만하다. ‘새 얼굴’을 향한 리그의 목마름, 구창모가 그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김하진 스포츠부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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