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가 기부 부르는 ‘임팩트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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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 성공하면 재기부 통해 다른 기업 자립 돕는 순환형 기부

‘한 번 냈던 기부금을 다시 돌려받아 다른 기부에 또 쓸 수 있다면?’

추가로 투입되는 에너지 없이 무한하게 돌아간다는 ‘영구기관’ 같은 발상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방식의 기부 플랫폼을 만들어 정착한 비영리기관이 있다. ‘임팩트 기부’라는 이름이 붙은 이 기부 방식은 기부자에게서 기부금을 모아 창업 자금이 필요한 취약계층 사업가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사업가가 창업으로 자립에 성공한 뒤 기부받은 금액을 모두 상환하면 처음 기부한 사람들에게로 기부금이 되돌아간다. 다시 돌려받은 기부금은 자금이 필요한 또 다른 기부처로 들어가는 순환형 모델인 셈이다.

르완다 내전으로 고아가 된 여성들이 자립 지원사업 프로그램에 참여해 손수 만든 공예품을 선보이고 있다./더 브릿지 제공

르완다 내전으로 고아가 된 여성들이 자립 지원사업 프로그램에 참여해 손수 만든 공예품을 선보이고 있다./더 브릿지 제공

국내 처음으로 이런 임팩트 기부 모델을 도입한 ‘더 브릿지(비영리 사단법인)’의 프로젝트에서는 이런 순환이 가능하다. 모금 목표액 360만원을 달성한 르완다의 여성 행상인 지원 프로젝트에 1만원을 기부했다면 지원을 받은 여성 행상인들이 자립과 전액 상환에 성공할 경우 다시 기부금을 포인트로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부금을 받은 기업의 자립이 우선이다. 르완다 여성 행상인 지원 사업은 현지에서 설립된 식품유통 분야 사회적 기업 ‘파크앤피크’에서 진행 중이다. 별다른 기술이나 자본도 없어 현지 당국에서 불법으로 금지한 행상 판매에 나서는 여성들이 신변에 위협이 가해지는 부담을 감수하며 돈벌이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합법적인 식품 유통업에 고용하는 사업이다.

비영리기관 ‘더 브릿지’ 국내 첫 도입

만약 기부한 프로젝트에서 상환된 돈으로 기부자가 환급금을 받으면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지원 프로젝트에 다시 기부할 수 있다. 환급금은 재기부에만 쓸 수 있도록 포인트로 돌아온다. 해외에선 르완다나 가나, 네팔 등 개발도상국의 취약계층을 지원한다면 국내에선 탈북민의 자립에 특화한 프로젝트들이 기부를 기다리고 있다. 남한으로 넘어와 별다른 기반은 없지만 탈북민들 간의 관계는 물론 북한 현지의 가족과 이웃에 연결되는 비공식적 네트워크까지 활용할 수 있는 이들의 역량을 사업으로 확장시킨다는 취지다. 현재로선 탈북민 창업가의 화장품 사업과 인쇄 사업에 기부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열려 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기부 방식이 도입되면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통해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십시일반 기부금을 모아 지원하는 방식은 안정적으로 정착됐다. 임팩트 기부 역시 모금은 비슷한 구조로 하지만 기부금이 들어가는 곳의 성격이 다르다.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용도 유발할 수 있는 사업이지만 자금이 모자라 시작하지 못한 사회적·공공적인 성격을 띤 기업에 투자하는 셈이다. 일반 기업이 공익적 목적에 더 중점을 두고 투자하는 방식을 뜻하는 ‘임팩트 투자’와, 취약계층에게 소액을 빌려주는 은행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장점을 한데 결합한 모델이다.

그렇다면 과연 기부금 가운데 어느 정도가 되돌아올까. 황진솔 더 브릿지 대표는 “현재까지는 액수로 따졌을 때 약 60% 정도가 기부자에게 돌아가 재기부되고 있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2014년부터 더 브릿지를 통한 임팩트 기부에 나선 이래 2년쯤 지나면서 서서히 환급이 가능할 정도로 자립한 프로젝트들도 나타났고, 한편에서는 기부금을 지원받고도 사업 정착에는 실패한 프로젝트도 생겼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으로 설정한 환급 가능 목표치는 70%다. 투자로 본다면 100%를 넘어 이익까지 돌아와야 하겠지만 기부의 관점으로 볼 때 기부금이 제 역할을 다한 뒤 60%나 돌아온 것만도 나름 준수한 성적을 거둔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기부자 입장에서는 기부금이 일회성으로 소모되는 것보다 장기적인 자립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시 기부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기부금을 지원받는 상대방 사업가의 입장에서도 임팩트 기부의 장점은 많다. 사업 프로젝트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마이크로파이낸스를 통한 소액대출보다 문턱은 높을 수 있지만 상환 기간에는 대출이자가 없다. 사업 성격에 따라 가감되긴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 지원금 규모가 대체로 미화 3000달러(약 360만원) 정도로 큰 액수가 아니어서 모금 목표액 달성도 쉽고 현지에서도 물가·인건비 사정을 생각하면 충분한 금액이다. 황 대표는 “마이크로파이낸싱 방식도 고민했으나 주도하는 기관의 입김에 따라 근본 목표인 자립을 오히려 위협하는 부작용도 나타나는 해외 사례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약 60% 정도 재기부로 돌아와

기부자가 돈을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립 이후 상환하게 하는 방식의 선구적 모델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키바(KIVA)’가 유명하다. 취약계층에 대출금을 빌려주고 기한 내에 상환이 이뤄질 경우 기부자는 돌아온 돈을 재대출할 수 있다. 더 브릿지와 비슷하지만 키바에선 돌아온 돈을 기부자가 회수할 수도 있다는 점이 차이다. 그밖에도 세계 곳곳에서 개도국의 창업·자립을 지원하는 단체들이 속속 나타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투자에 더 방점을 찍은 ‘아시아벤처자선네트워크(AVPN)’ 같은 연대체가 대표적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기부금을 받아 사회적인 목적에 사용하는 단체들이 운영비를 과다 계상하거나 유용하는 등의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투명성을 높이고 기부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가 된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임팩트 기부를 통해 전달된 기부금을 사업 실패로 상환받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중간에 자금을 전달하는 모금단체가 돈을 유용했다면 지탄받는 것이 여론의 분위기다. 때문에 더 브릿지는 운영비에서 적자가 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기부할 때 단체에 운영비를 얼마나 지급할지 직접 결정하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1만원을 기부한다고 치면 기부자의 결정에 따라 1만원 전액을 기부대상에게 전달할 수도 있고, 운영비로 1000원을 단체에 돌아가게 할 수도 있는 식이다.

국내에서 진행된 임팩트 기부로 초기 사업자금을 지원받은 탈북민 입장에서도 단순한 기부 대신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임팩트 기부가 더 나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탈북민 기업이 정착하는 것은 이질적이라고 생각해 왔던 사회 구성원들이 일반 시민의 지지에 바탕을 두고 성공적으로 적응한 예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KB경영연구소의 손광수 책임연구원은 “여러 비영리기관에서 탈북민 기업의 창업 및 운영자금을 조달했지만 대부분 2~3년 안에 사업을 포기하거나 실패하는 결과가 나온 데 비해 임팩트 기부를 통한 지원은 비교적 높은 자립도를 보여줬다”며 “넓게는 남북의 주민이 한 구성원으로 통합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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