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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쏠림으로 ‘의료공백’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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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자원 편중되면서 일반 환자 ‘골든타임’ 놓치는 안타까운 상황 막아야

#1 지난 3월 10일 화요일,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된 둘째 날이었다. 2002년생이라 이날 마스크를 살 수 있었던 정유엽군(17)은 아버지 정성재씨(53)와 함께 오후 5시 20분쯤 경북 경산의 한 약국 앞에 줄을 섰다. 아침부터 마스크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다 겨우 물량이 남아 있는 곳을 찾아냈다. 6시부터 선착순으로 판매한다길래 외투와 목도리를 하고 기다렸다. 가랑비가 날리던 추운 날씨였다.

7월 9일 광주 서구청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문진을 하고 있다. 광주에선 코로나19 지역감염이 확산하며 감염원이 늘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7월 9일 광주 서구청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문진을 하고 있다. 광주에선 코로나19 지역감염이 확산하며 감염원이 늘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정유엽 학생은 그날 자정 무렵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감기인 줄 알고 감기약과 해열제를 복용했다. 열은 12일까지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날 저녁 체온을 재니 42도였다. 급히 집 근처 경산 중앙병원 선별진료소에 갔지만 문을 닫아 응급실을 찾았다. 의사는 코로나19로 의심해 해열제와 항생제 한 알만 처방해주고 집에 돌려보냈다.

열은 내리지 않았다. 다음날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선별진료소에서 폐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코로나19와 독감 검사를 했다. 의사는 폐에 염증이 군데군데 보인다고만 말하고 코로나19 검사결과가 나오는 내일 오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일이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 부모는 병원에 연락했다. 담당 의사는 진료의뢰서를 끊어주겠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병원장은 대뜸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했다. 퇴근 무렵이었다. 구급차를 요청했지만 병원은 거부했다. 항암치료로 손발이 저렸지만 정성재씨는 직접 운전해 대구 영남대병원까지 가야 했다.

중앙병원의 코로나19 검사결과는 음성으로 나왔지만 영남대병원은 13차례의 검사를 추가로 했다. 출입이 금지된 채 부모는 승용차에서 대기하며 전화로 산소호흡기 착용, 스탠드 시술, 인공호흡기 시술 등의 결과를 통보받거나 동의를 요구받았고, 매일 같이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3월 18일 아들이 죽기 두 시간 전. 한 의사가 갑자기 흥분한 상태로 전화해 아들에게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알렸다. “변종 바이러스로 생각되는데 세계 학회에 보고할 사항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죽어가는 애 앞에서 할 말인가요.” 응급실에서 마지막으로 잠깐 볼 수 있었던 아이의 얼굴. 눈가엔 마른 눈물 자국이 있었다. 사망진단서에는 ‘코로나19에 의한 호흡부전’이라는 사인이 적혔다. 그러나 병원 측은 곧 사망진단서를 회수했다. 질병관리본부의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급성 폐렴’으로 사인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급성 폐렴으로 결론이 났지만, 음압병실에 있었다는 이유로 장례식장을 찾기조차 어려웠다. 어머니 이지연씨(51)는 “중환자실에 있었다면 잠깐 손이라도 만질 수 있었는데 음압병실에 들어가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면서 울먹였다.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낸 아들은 이제 거실 액자 속에서 살포시 웃고 있다. “(부모와) 20년 후 공기 좋은 곳에서 같이 지내기,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정유엽군의 책상 액자에 담긴 ‘버킷 리스트’다.

#2 대구의 한 대학에 다니는 ㄱ씨. 지난 3월 11일 저녁 갑자기 배 오른쪽에 통증이 느껴졌다. 맹장이라고 생각해 경산 세명병원을 찾았다. 체온을 재니 37.8도가 나와 병원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열이 나면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거친 후 음성 결과가 나와야 병원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세명병원도 인근 경산 중앙병원도 오후 6시에 선별진료소 문을 닫은 상태였다. 병원 측은 열이 나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ㄱ씨는 119에 전화해 병원을 수소문했고, 결국 24시간 선별진료소가 있는 대구 경북대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폐쇄됐다.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오전 6시 40분이 되어서야 코로나19 음성판정과 맹장염 진단을 받아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발생하면서 병동이 폐쇄됐고, 결국 인근 협력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거의 16시간을 기다린 끝에 받은 수술이다. ㄱ씨는 “위급한 사람에겐 일분일초가 생명과 직결되는데 열이 있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고, 환자가 알아서 병원을 찾아가라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3 지난 3월, ㄴ씨는 급히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을 찾았다. 숨을 쉬기 어렵고 두통이 심해 응급 치료가 필요했다. ㄴ씨는 심혈관질환을 앓고 있다. 심혈관질환은 뇌혈관질환, 중증외상과 함께 응급치료가 필요한 3대 중증 응급질환이다. 하지만 응급실은커녕 병원 입구에서부터 막혔다. 코로나19 환자만 진료한다는 이유였다.

문제는 ㄴ씨가 국립중앙의료원 말고는 갈 병원이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ㄴ씨는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인, 즉 에이즈 환자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는 HIV 감염인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병원에 사정해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비슷한 일이 발생할까봐 마음을 졸인다.

HIV 감염인들은 감염병이 크게 발생할 때마다 의료 사각지대로 몰린다.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병원은 몇몇 공공병원뿐인데, 공공의료원은 제일 먼저 ‘국가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다. 이번에도 서울의 공공병원 6곳 중 5곳이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손문수 한국 HIV/AIDS 감염인연합회 대표는 “감염인이 다치거나 수술이 필요할 때 그나마 잘 받아주는 곳이 국립중앙의료원인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응급실·수술 모두 막혔다.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4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지난 2월 말, 근로복지공단 병원 의료진 사이에서는 “우리도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근로복지공단은 전국 10개 직영 병원과 2개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의 우려처럼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은 지난 2월 23일 ‘국가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2월 29일에는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이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의료진을 비롯한 병원 인력들은 바빠졌다. 기존 환자들을 다른 민간병원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공단병원은 특성상 산재 환자, 장기 입원 환자가 많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게 쉽지 않다. 창원병원의 한 간호사는 “백방으로 병원을 알아보느라 코로나19 환자를 받기 직전까지 난리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공단병원은 코로나19 국면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현장 의료진들은 ‘이게 최선이었을까’라고 묻는다. 대구·창원병원 모두 음압시설이 없고 감염내과도 없다. 심지어 재활전문병원인 대구병원은 감염병 대응·통제시설이 없어 본관 전체 출입을 통제하고 병원의 모든 부서와 시설을 컨테이너 건물로 옮겨야 했다.

배호원 보건의료노조 대구병원지부장은 “야전병원처럼 움직여야 해서 직원들이 많이 힘들었다”며 “인근에 감염병을 전문으로 하는 공공병원이나 대구의료원 외에 또 다른 종합병원급 공공병원이 있었다면 컨테이너까지 써 가면서 전담병원을 운영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 6일 경북 경산 자택에서 정유엽군(17)의 부모가 아들의 사진이 담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주영재 기자

7월 6일 경북 경산 자택에서 정유엽군(17)의 부모가 아들의 사진이 담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주영재 기자

창원병원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2013년 폐원된 진주의료원은 중환자실 전체에 음압시설이 되어 있었다. 민간병원에서 꺼렸던 신종플루 환자들을 진주의료원에서 도맡아 치료한 경험도 있다. 때문에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진주의료원만 있었어도…”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의료공백으로 인한 초과사망 조사 필요

앞선 사례는 모두 코로나19에 의료자원이 집중되면서 응급환자와 입원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의료공백에서 비롯했다. 특히 정유엽군의 죽음은 여력이 있는 병원으로 응급환자를 안내하는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탓이 크다. 공공병원 병동을 코로나19 환자 병상으로 바꾸면서 기존 입원 환자의 진료 연속성이 파괴되고, 지역 사회의 진료 역량이 줄어든다. 노인 환자나 만성질환자들은 감염 불안으로 의료기관 방문을 꺼리거나 예정된 치료를 미루면서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심장병·뇌질환, 응급환자들의 사망이 늘어나는 ‘초과사망’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홍윤철 단장(예방의학과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통계를 토대로 한 대구의 3월 예측 사망자는 1215.8명인 반면 실제 사망자는 1403명이었다. 코로나19로 응급환자·만성질환자의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187명(15.4%)에 달하는 초과사망자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7월 9일 현재 대구지역 코로나19 사망자(185명)보다 많다. 해외에서도 초과사망 문제는 심각하다. 지난 4월 말 발표된 국제연구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스코틀랜드(27%)와 잉글랜드·웨일스(35%), 네덜란드(60%), 미국 뉴욕주(26%)에서 사망률이 증가했는데 사망자 중 코로나19로 인한 비율은 채 절반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의 이상윤 책임연구위원(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초과사망이 확인된 만큼 왜 발생했는지 국내외 사례를 조사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방역에 구멍이 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의료자원과 방역자원을 구축하는 데 우선적으로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 컨트롤 타워 ‘공공보건의료청’ 만들자

지난 2월 말 콩팥 이식 수술 후 면역 억제제를 먹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가 입원을 못 하고 집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정유엽군처럼 의료자원 부족에 기저질환이 있는 응급환자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의료전달체계의 미비 탓이다. 전문가들은 가을 2차 대유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유기적인 의료전달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지역에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을 꾸려 비슷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데 그 권한을 더 명확히 하고, 장기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의료자원 정보를 수집하고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공공보건의료청’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상윤 위원은 “정유엽 학생을 진료한 의사는 지역사회의 어느 병원에 병상이 남아 있고, 발열이 있음에도 입원시킬 수 있는 병상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 환자를 그냥 집에 돌려보냈다”며 “방역을 책임지는 기관이 있듯이 의료를 책임지고 지역사회의 의료자원을 연계해주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으면 의료공백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코로나19 환자와 아닌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지 대응체계를 세우지 않으면 언제든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은 지금, 호흡기 환자와 발열 환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가 여전히 어렵다. 정유엽 학생 부모와 시민단체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정부의 진상조사와 재발방지책을 요구하고 있다. 정성재씨는 “유엽이와 같은 일을 당한 사람은 누구나 하루하루가 지옥 같을 것”이라며 “이 아픔을 우리 대에서 끝내야지 다른 가족이 또다시 고통받게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주영재·이하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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