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 시청자가 납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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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커지면서 인상 추진… 공영방송에 걸맞은 역할하고 있나

지난 5월 부부가 사는 24평 아파트 관리비는 13만4880원. 관리비 명세서에는 일반관리비·청소비·승강기유지비·수선유지비·장기수선충당금·경비비 등 항목이 나와 있다. 난방비는 따로 전기세가 함께 부과된다. 전기, 공동전기료, 승강기전기 그리고 마지막은 2500원의 ‘TV수신료’다. 전국 어디든 수신료는 똑같다. 단독주택이라면 전기세 지로용지에서 TV수신료 항목을 찾을 수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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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비가 2만~3만원이던 1980년대에도 수신료는 2500원으로 같았다. 1981년부터 40년째 동결이다. 최근 KBS가 ‘수신료 현실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수차례 수신료를 올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올려야 한다는 명분과 그럴 수 없다는 명분이 부딪치면서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1000억대 적자 바라보는 KBS

“우리의 가장 절실한 과제는 바로, 수신료 현실화입니다. KBS가 명실상부한 국가기간방송이자 공영방송이 되려면 수신료 재원이 전체 재원의 70% 이상은 돼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45% 전후에 머물고 있습니다.”

양승동 KBS 사장은 지난 7월 1일 직원조회에서 수신료 인상을 포함한 ‘경영혁신안’을 발표했다. 양 사장은 “수신료를 현실화하는 일은 사회적 합의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수신료를 올리려던) 지난 세 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정교하게 준비하겠다”며 올 하반기 수신료 현실화 추진단을 출범시키겠다고 했다. 양 사장의 주장은 성공적 공영방송 모델로 꼽히는 영국 BBC의 전체 재원 중 수신료 비중이 70%가 넘는다는 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웃나라 일본의 NHK는 90% 이상이다. 재원 대부분을 수신료로 충당하는 두 방송은 광고를 하지 않는다. KBS는 1TV에서 광고를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KBS가 받은 수신료는 6705억원. 전체 재원 1조4566원의 46%를 차지한다. 지난해 수치를 기준으로 수신료 비중을 70%로 높이려면 1000원 넘게 올려야 한다. KBS는 2003년, 2007년, 2013년에도 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3500~4000원으로 올리려고 했으나 편파방송 논란과 미흡한 자구책 등 반대 여론에 없던 일이 됐다. 현 정부 들어서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징수해달라는 국민청원이 21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와대는 “통합징수는 법원에서 적법하다는 판결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KBS는 2년 전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759억의 손실을 봤고, 올해는 1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 사장은 현재 5300여 명의 직원을 4년간 1000명 이상 줄이겠다고 밝혔다.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제도도 개선해 성과급제를 확대할 계획이다. 임원진은 급여의 20%를 반납하기로 했다. KBS는 2018년 직원 2명 중 1명이 1억원 이상 고연봉자로 나타나는 등 ‘방만 경영’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시달리는 점도 불신을 키웠다. 여기에 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영향력이 지상파·공영방송 의존도는 떨어졌다. 지금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처지다.

수신료는 1980년 컬러방송 개시를 명분으로 이듬해 월 800원에서 2500원으로 책정한 뒤 지금까지 그대로다. 2500원이던 신문 월 구독료를 기준으로 책정했다. 당시에는 KBS 징수원이 집마다 돌며 수신료를 걷었다. 80년대 중반에는 군사정권의 언론통제에 반발해 전국적으로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KBS가 밤 9시를 알리는 ‘땡’ 소리와 함께 “오늘 전두환 대통령은”이라는 멘트가 이어지는 ‘땡전뉴스’ 시절이었다.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포함해 징수한 건 1994년 10월부터다. 현재 수신료는 한국전력이 수수료 몫으로 6.15%를 가져가고, 나머지 금액을 KBS와 EBS가 97 대 3 비중으로 나눠 갖는다. 수신료는 KBS 이사회가 심의·의결한 뒤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얻어 확정된다.

수신료는 언제나 정쟁 대상

KBS는 수신료를 국가기간방송 채널 운영 외에도 산간벽지와 도서지역의 난시청 해소, 소수·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 재해·재난 주관방송과 구호·지원, 국가적 외교문화·스포츠 행사 주관, KBS 교향악단·국악관현악단을 통한 공연문화 제공, 우리 말과 글의 보존·발전을 위한 연구 진흥, 시청자 권익보호, 디지털 방송환경 구축에 쓴다고 밝히고 있다.

TV수신료가 부과된 아파트 관리비 명세서

TV수신료가 부과된 아파트 관리비 명세서

징수 근거는 방송법에 있다. 방송법 제64조는 “텔레비전방송을 수신하기 위하여 텔레비전수상기를 소지한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사(KBS)에 그 수상기를 등록하고 텔레비전 방송수신료를 납부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수신료는 KBS 시청에 대한 사용료가 아니다. KBS를 보느냐 마느냐와 관계없이 TV가 있으면 납부 의무가 생긴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판결에서 “수신료는 공영방송사업이라는 공익사업의 경비 조달에 충당하기 위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이라고 규정하며 수신료 징수가 정당하다고 봤다. 헌재의 판단처럼 수신료는 일종의 준조세 성격을 띤다.

잘 보지도 않는 채널에 돈을 낼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만만찮다. 수신료 인상을 주장하는 측은 매체의 범람 속에서 방송문화의 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공영방송이며 수신료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적 가치를 강조하는 주장은 시청자 개인이 느끼는 필요성에 구체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에 호소력을 갖기 어렵다. KBS가 공영방송이자 국가기간방송으로서의 지위에 걸맞은 구실을 하고 있느냐는 문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도마 위에 오른다. 매번 ‘수신료 인상하기 전에 KBS부터 정상화하라’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KBS 수신료 문제는 언제나 여·야의 정쟁 대상이었다. 어느 정부에서든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면 야당이 반대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KBS가 수신료를 인상하려고 하자 야당인 한나라당이 반대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는 여당인 한나라당이 입장을 바꿔 수신료 인상을 지지했고, 야당인 민주당이 반대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여당이 지지하고, 야당이 반대했다.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방송계 안팎에선 수신료를 결정하는 절차가 정파성에 치우쳐 있다며 ‘수신료위원회’를 따로 둬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수신료 산정·징수·배분 등을 관리·감독하는 기구다. 수신료 인상의 전제 조건으로 인식돼온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도 시급하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에서 여·야가 일정 비율로 추천하며 자리를 나눠먹는 오랜 관행이 여전하다. 현 여당 역시 야당이던 9년 전 수신료 인상 논의 때 KBS의 공정성 확보와 지배구조 개선 등을 선결조건으로 내건 바 있다.

서울 여의도 KBS 본관 / 권호욱 선임기자

서울 여의도 KBS 본관 / 권호욱 선임기자

상업방송과 차별성을 갖는 책임과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공영방송의 딜레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BBC조차 예산감축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등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리스 존슨 총리의 보수당 정부가 수신료 체납을 형사처벌하는 현행 수신료 제도의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이 시도가 결국 수신료 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일본에는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이 있을 정도로 수신료 징수에 불만이 적지 않다. BBC의 수신료는 1년에 157.50파운드(약 24만원)로 한 달 2만원 꼴이다. NHK는 지상파 방송만 볼 경우 매달 1260엔(약 1만4000원), 위성방송까지 포함할 경우 2230엔(약 2만5000원)이다.

‘이게 진짜 공영방송’ 느낄 수 있어야

수신료 인상이 논의될 때마다 BBC와 NHK의 사례가 거론된다. 하지만 두 방송의 수신료 비중이 높다는 사실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BBC에 대한 신뢰는 그간 스스로 공영방송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한 결과이며, NHK 역시 2000년대 제작비 부정지출 사건 등으로 수신료 거부 운동이 일자 수신료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다양한 개혁을 통해 신뢰를 회복했다.

2015년 KBS는 세 번째 ‘수신료 인상 시도’에 열을 냈다. 2013년 이사회에서 4000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최종 의결한 후 방통위를 거쳐 국회에 제출했지만 1년 넘게 계류되고 있었다. 그해 6월 KBS는 수신료 인상 후 광고수입을 점진적으로 줄여 중·장기적으로 ‘광고 완전 폐지’로 나아간다는 구상을 밝혔다. 우선 오전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2TV 광고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EBS에 대한 지원 확대도 약속했다(EBS는 2017년 이후 매년 100억원 넘는 적자경영 상태로, 수신료 배분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공익콘텐츠 확대, 보도 공정성 확보는 물론 인력 효율화도 진행하겠다고 했다. 당시에도 여야가 팽팽히 맞섰다. 수신료 인상안은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5년새 위기는 심화됐다. 2015년 55%에 달하던 지상파 광고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6.7%로 쪼그라들었다. 올 하반기 출범하는 수신료 현실화 추진단은 과거를 넘어서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KBS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출범 시기나 내용 등 윤곽이 나오지 않았다”며 “추친단이 꾸려지는 대로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KBS가 수신료를 인상하려 할 때마다 제시한 약속들은 구체성이 떨어지고 사후에 제대로 지켰는지 검증할 시스템이 없었다”며 “장밋빛 전망을 던지는 것만으로는 시민의 지지를 얻어내기 어렵다. 신뢰 회복 방안뿐만 아니라 사후 검증 방안까지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KBS가 갈 길은 명확하다. 지금과 달라야 한다. KBS 이사인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역시 “아무리 수신료가 수십 년간 2500원이었다고 해도 이제는 공영방송을 그만하자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교양이 됐든 드라마가 됐든 공영방송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우리 사회 언론지형에서 부족한 부분, 시장에서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먼저 이야기하고, 공영방송이 이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합의한 뒤 수신료를 어떻게 올릴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연우 교수는 “시민이 ‘야, 이게 진짜 공영방송이지’, ‘우리의 방송이지’라고 느낄 수 있도록 공영방송 운영·제작 과정에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위기의 지상파
“TV 봐요?”, “잘 안 보죠. 사실 집에 TV가 없어가지고….”

최근 KBS의 유튜브 웹예능 <구라철>은 TV의 위기를 다뤘다. / 구라철 유튜브 캡처

최근 KBS의 유튜브 웹예능 <구라철>은 TV의 위기를 다뤘다. / 구라철 유튜브 캡처


KBS의 유튜브 웹예능 <구라철>의 한 장면. 방송인 김구라씨가 서울 상암동을 돌며 시민에게 ‘TV의 위기’를 물었다. TV가 없다던 시민은 방송사 직원이었다. 또 다른 시민에게 TV를 자주 보느냐고 물었다. 이 시민은 “유튜브 이런 게 훨씬 재밌다”고 했다. TV의 위기가 시작됐다고 보냐는 질문에 답은 명료했다. “이미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업계 전반이 위기를 맞은 가운데 지상파의 위기는 두드러진다. KBS뿐 아니라 MBC와 SBS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MBC는 모든 유형의 프로그램에서 비용 대비 시청률과 수익률이 하락세를 지속하면서 최근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SBS도 시청률·광고 수입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지상파의 힘은 막강했다. 2005년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평균 시청률 36.9%, 최고 시청률 50.5%를 기록했다. 서른 살 삼순이가 노처녀로 취급받던 그때와 시절이 다르듯 매체 환경도 변했다. 지상파 방송의 위기는 방송사업 매출·광고수익 감소, 시청률·신뢰도 하락 등 여러 지표로 나타났다. 지상파의 광고시장 점유율은 2006년 75.8%에서 지난해 36.7%까지 줄었다.

MBC는 지난해 966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지난해 7월 MBC의 하루 광고매출액이 1억4000만원을 기록한 날까지 나왔다. MBC노동조합(3노조)은 “임직원 1700명의 지상파 방송사가 여섯 살 이보람양의 유튜브 방송과 광고 매출이 비슷해졌으니, 경영위기가 아니라 생존위기가 닥친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같은 달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MBC는 최근 미래비전을 담은 경영혁신안을 내놨다. 지역 MBC도 임금을 삭감하는 등 줄줄이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황이다.

MBC는 법제화를 통해 MBC 정체성을 ‘공영방송’으로 명확히 하고 공적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적 재원을 다룰 땐 민간상업 방송 범주에 포함돼 지원을 받지 못하고, 광고시장에서는 공영방송으로 분류돼 자유롭게 영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MBC는 주식회사로 광고 수익을 통해 운영되지만, 공영적 소유구조를 가지며 공영방송으로 존재해왔다.

민영 방송사인 SBS는 지난해 59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선방했다. 하지만 돈 많이 드는 드라마를 만들지 않고 방송 편수를 줄인 결과라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매각설까지 흘러나왔다. 최근 SBS노조는 태영건설이 “투자자들께서는 태영기업집단의 자산증가로 인해 방송사업 부문에 대한 지분 매각이 이뤄질 가능성에 대해 유의하시길 바란다”고 두 차례 공시한 데 대해 “SBS 매각 가능성을 공식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송법상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은 지상파 방송사 지분의 10%를 초과해 소유할 수 없다. 사측은 “원론적인 정보제공 차원의 공시”라며 매각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간 지상파 방송에 가상광고 도입, 간접광고(PPL) 확대에 이어 2015년 광고총량제를 도입했는데도 광고 실적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3년 전부터는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2~3부로 쪼개 ‘유사 중간광고’까지 넣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중간광고 등 다른 사업자들과의 비대칭 규제 격차 해소를 요구하고 있다.

2000년 제정된 현행 방송법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맞지 않아 방송정책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상파를 먹여 살리는 차원이 아니라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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