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출산이 ‘남의 나라 이야기’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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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결혼, 출산과 육아라는 인생의 경로를 공식처럼 따랐습니다. 취업해도 결혼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다수가 선택한 것만 좇았던 것이죠. 물론 후회하지 않습니다만….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하지만 결혼·출산이라는 선택이 오롯이 개인의 선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적인 요인과 개인의 취향, 가치관이 함께 작용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생각은 없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비혼주의자가 결혼을 생각할 수도, ‘딩크족’이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즉 합계출산율은 2018년 이후 3년째 0명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홍콩이 1999년 합계출산율 0.98명을 기록한 적은 있지만, 국가 단위에서 0명대를 보인 곳은 한국이 유일합니다. 저출산이 가져올 생산인구 감소, 고령화로 인한 연금 고갈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정부가 5년마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세워 여러 정책을 펴왔지만, 기혼 부부의 출산율을 유지한 것 외엔 큰 성과를 보진 못했습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만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된 구조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가 어려워지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곳에서 결혼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해도 일에 치여 쉴 틈을 갖기 어렵거나, 임신이나 육아를 이유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면 아이를 낳기보다 그 자원을 아껴 삶을 즐기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코로나19 방역을 잘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선진국 반열에 오른 듯하지만, 아직 아이를 키우기 좋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청년들에겐 여전히 ‘지옥’ 같은 이곳에서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국가가 저출산이 걱정된다면, 적어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가족을 꾸리고 싶은 욕망조차 품지 못하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 가족만이 아니라 어느 부모, 어느 가정에서 태어났든 아이를 중심으로 충분한 보호와 양육을 지원해야 합니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출산장려정책, 인구정책을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아이와 청년, 부부와 미혼모, 노부모 등 모두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면, 산부인과가 폐업을 걱정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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