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 이자에도 은행으로 돈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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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규제 심하고 주식은 한풀 꺾여… 안정적 ‘지키는 투자’ 관심 커져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은행권 재테크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제로금리(0%대 금리)’ 시대를 맞아 시중 유동성(자금)이 넘쳐나고 있음에도 코로나19 재확산 우려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지키는 투자’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 재테크 시장인 부동산은 이미 가격이 많이 오른데다 정부의 대출규제 등으로 투자 여건이 우호적이지 않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대변되는 주식매수 열풍은 최근 한풀 꺾인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코로나19 재확산 흐름에 따라 국내 증시가 언제든 요동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원금 손실 피해와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은행들도 공격적인 투자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 5월 28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한국은행 제공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 5월 28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한국은행 제공

시중 부동자금은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발표한 4월 광의통화량(M2)은 전월 대비 1.1%(34조원) 늘어난 3018조6000억원이다. 넓은 의미의 통화량을 나타내는 M2에는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예·적금 등이 포함돼 있다. M2는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들로, 3000조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시중 통화량 3018조 ‘역대 최대’

연 1% 미만의 쥐꼬리 이자를 주고 있음에도 은행에 돈이 쌓이고 있는 것은 그만큼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의미다. 한은이 지난 5월 말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연 0.50%로 인하한 이후 은행권 예·적금 등 수신금리는 역대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한은의 ‘5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를 보면 저축성 수신금리(신규 취급액)는 전월에 0.13%포인트 하락한 연 1.07%로,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다. 은행에 100만원을 맡기면 1년간 이자로 1만원가량 받는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에서 판매되는 0%대 정기예금(1년 미만) 상품 비중도 늘어 역대 최대인 31.1%를 나타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엔 예금 이자보다는 높고 안정적인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은행 창구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성진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양재PB센터 팀장은 “시중에 유동성은 넘쳐나는데 부동산시장은 정부 규제 강화로, 주식시장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변동성 확대 우려 때문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최근엔 0%대 예·적금보다는 높은 수익을 내면서 원금 손실 위험이 낮은 금융상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3월 국내 증시가 1400대까지 폭락하면서 은행에 묶여 있던 자금들이 주식시장으로 대거 이동하는 흐름을 보였으나 최근 코로나19 재확산 추세에 따라 주식시장 변동성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은행권 금융상품을 문의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중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달러화 예금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심화하면서 달러 수요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국내 거주자의 외화예금은 809억2000만 달러로, 한 달 전보다 27억4000만 달러 증가했다. 거주자 외화예금은 내국인과 국내기업, 6개월 이상 국내에 거주한 외국인 등이 보유한 국내 외화예금을 합한 것이다.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기 시작한 2월부터 증가세를 보이면서 2년 3개월여 만에 다시 8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김미애 NH농협은행 NH All100자문센터 WM전문역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선호가 커지는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며 “게다가 미·중 무역분쟁 재점화, 남북한 정세 불안 등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들이 많아지면서 그 수요가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이어 “5000만원 이하는 예금자 보호를 받는 이 예금은 은행 창구를 통해 간단히 계좌를 만들 수 있는데다 매매차익이 비과세이기 때문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쥐꼬리 이자에도 은행으로 돈 몰린다

단기성 재테크 수단으로 머니마켓펀드(MMF)도 주목받고 있다. 부동자금의 대표 지표로 쓰이는 MMF는 1년 미만의 국공채나 기업어음(CP) 등 단기우량채에 집중투자해 얻는 수익을 배당받는 상품이다. 예금자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고, 하루만 돈을 넣어도 연 1% 가까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또 운용 채권들이 통상 1년 이내여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단기자금을 활용할 수 있다. 설정액은 올 초 105조원 규모에서 최근 150조원을 넘겼다.

달러화 예금·MMF·골드바 등 주목

예금자 보호가 되는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도 있다. 흔히 파킹통장으로 불리는 MMDA는 주로 짧은 기간 돈을 맡겼다가 인출할 수 있다. 금리는 최대 연 0.5% 미만으로, 0.1~0.2%의 수시입출식 통장에 비해 높지만 정기예금 금리보다는 낮다. 비교적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ELS(주가연계증권)나 ELF(주가연계펀드) 역시 은행권의 주요 금융상품이다. 다만 ELS·ELF는 증시 상황에 따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만큼 상품구조를 100% 이해한 후 투자하는 게 좋다.

코로나19 이후 언택트(비대면) 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업종에 투자하는 펀드도 주목받고 있다. 신동일 KB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며 “미국 나스닥 기준으로 1~10위 기업에 대한 분산투자 또는 인공지능(AI)·로봇·4차산업 등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곽재혁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전문위원은 “안전자산 수요를 감안했을 때 골드투자 통장 등이 투자 대상으로 꼽힌다”며 “주식형 펀드 또는 ETF의 경우 국내 정보기술(IT) 관련이나 성과가 우수한 중·소형주 상품, 미국 언택트·IT 등 성장 업종 투자비중이 높은 상품, 중국 기술주(5G, 전기차 등) 등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가급적 분할매수를 통해 점진적으로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세제 혜택도 들여다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세금을 떼지 않는 개인형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가입의무기간 5년)를 비롯해 연금저축보험·연금저축펀드·개인형 IRP(개인형 퇴직연금) 등도 은행권 재테크 상품 목록에 넣어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안광호 경제부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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