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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트라우마 극복, 정부 신뢰 회복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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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이 균열을 낸 건 땅뿐만이 아니다. 지역공동체에도 금이 갔다. 한 아파트 주민들은 둘로, 셋으로 갈라섰다. 보상을 둘러싼 분쟁이 이어졌고, 주민 간 불신이 생겨났다. 지진이 발생한 지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포항시민은 지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 가운데는 심리 치료가 시급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도 적지 않다. 이들은 왜 지진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포항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하고 있는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60·전 국립부곡병원장)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e메일과 전화로 이뤄졌다.

2017년 11월 15일 지진이 발생한 경북 포항시 흥해읍 도로변 모습 / 경향DB

2017년 11월 15일 지진이 발생한 경북 포항시 흥해읍 도로변 모습 / 경향DB

-지금도 지진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분들이 있나.

“지난해 11월에 트라우마센터를 열었는데 그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센터를 찾는 분들은 하나같이 소리와 진동에 과민 증상을 보였다. 아랫집 휴대폰 진동 소리를 못 견딘다고 했다. 층간 소음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10명 중 7명은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불안과 우울감이 심해졌고, 지진을 겪고 나서 성격이 변한 사람들도 많았다. 괜찮았던 대인관계가 엉망이 되면서 주변에 사람이 다 떠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이혼까지 가는 경우도 흔하다.”

-지진이 그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인가.

“포항지진은 큰 재난이지만, 지진 자체는 대형 인명사고를 동반한 끔찍한 사고는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진으로 인해 매몰됐다가 구조된 사람은 없었다. 사실 충격적인 일을 당한 사람은 그 당시 상황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하지만 포항지진 피해자들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고 상상하기도 한다. 지진 자체만 놓고 보면 이렇게 후유증이 오래갈 만한 재난은 아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회복이 더딘가.

“불이 꺼질 만하면 외부에서 기름을 붓고 불꽃을 튕긴다. 재난 치료를 하려면 먼저 당사자들이 그 상황에서 단절돼야 한다. 하지만 포항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 지진 발생 원인도 자연 지진에서 지열발전으로 인한 촉발지진으로 뒤바뀌지 않았나. 그간 주민들이 의혹을 제기했던 부분들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포항지진 감사결과에서는 관리 소홀이 확인됐다. 지진 특별법 제정을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 커진다. 당연히 피해보상에 대해서도 불만이 쌓인다. 더 많이 받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정부가 보상금 배분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주민들은 피곤하지만 지진 이슈를 계속 따라가야 한다. 정부와 포항시가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다 보니 놀란 신경이 가라앉지 않는다. 여기에서 불안함과 분노, 무력감, 우울감이 생겨난다. 이런 분들은 지나간 지진에 매몰돼 현재를 살지 못한다.”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제공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제공

-큰 피해도 없는 지진을 너무 오래 끌고 간다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흥해체육관에 아직 이재민이 있다고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잘못된 관점이다. 지진은 포항시민이 만든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만든 것이다. 재난 수습 과정에서 곪아 터진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포항지진의 본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사안을 재단하고 재난 피해자를 삐딱하게 바라본다. 동일본 대지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을 끌고 와서 ‘저 정도 피해면 몰라도 포항지진 피해가 얼마나 된다고 유난을 떠느냐. 아직도 힘들다고 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보상 더 받으려고 쇼한다’는 식으로 공격하는데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행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섭섭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까’라고 묻는다. 물론 트라우마 치료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이다. ‘센터에 가고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는다고 나아지겠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있다가 떠밀려서 센터에 오는 분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기대 없이 왔는데 도움이 되네요’라고 한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정서가 있는데 시간은 트라우마를 해결할 수 없다. 어떻게든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움직여야 한다.”

-포항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지금도 매일매일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재난을 뜻하는 영어 단어 ‘Disaster’는 북극성처럼 방향을 알려주는 ‘별’을 잃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길을 밝혀주는 별이 사라져 막막한 게 재난이란 얘기다.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은 칠흑 같은 어둠에 홀로 놓인 것과 같다. 비장애인이 느끼는 감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공포를 느낀다. 포항에서 상담했던 장애인 한 분은 지진이 일어난 뒤 9층 아파트에서 기어서 내려왔다고 얘기했다. 그 경험이 얼마나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겠나. 비장애인의 지진 후유증은 재난 복구 과정에서 생긴 피로감이 주요 원인이지만 장애인의 지진 트라우마는 지진 그 자체에서 온 것이다.”

-이분들은 트라우마 치료를 받을 기회도 없는 것 아닌가.

“현실이 그렇다. 장애인은 트라우마센터를 방문하기가 힘들다. 상담도 어렵고 트라우마 치료 장비도 사용하지 못한다. 아마 대부분이 트라우마를 그냥 떠안고 살고 있을 것이다. 당장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어렵다면 재난 이후에라도 케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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