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불러온 ‘군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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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 문제 알릴 수 있는 통로 생겨… “간부와 병사 간 불신 팽배 우려도”

“편지를 써본 기억은 신병교육대 시절 말고는 거의 없죠. 자대 가서 바로 휴대폰 쓸 수 있었으니까.”

육군의 한 전방사단 소속 ㄱ병장에겐 스마트폰 없는 군생활이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휴가를 나와 서울역에서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던 그의 손에는 이등병 때부터 써왔던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전군의 의무복무 장병들이 전면적으로 영내에서 스마트폰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지난해 4월부터였다. ㄱ병장 역시 자대 배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을 쓸 수 있게 된다는 소식을 접했고, 당시 까마득한 고참들에게서 “이제 군대 거꾸로 돌아가겠네” 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염려했던 대로 ‘군기 빠진’ 장병들이 사고를 치는 일은 오히려 드물어졌다. 반대로 군기를 내세우던 상관들이 이른바 ‘갑질’ 논란을 일으킨 일들만 더 빠르게 알려지게 됐다.

육군의 한 부대 생활관에서 일과를 마친 병사들이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육군의 한 부대 생활관에서 일과를 마친 병사들이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여단장 폭언’과 ‘황제 복무’ 논란

최근 불거진 육군 1군단사령부 1공병여단의 여단장 갑질 의혹은 청와대 국민청원과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를 통해 빠르게 알려졌다. 직접 폭로에 나선 것은 해당 부대의 일병이었다. 지휘관인 1공병여단장이 훈련 과정에서 해당 병사에게 폭언을 내뱉었다고 주장한 글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에 퍼지면서 이틀 만에 육군본부에서도 “감찰조사를 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며 감찰 결과에 따라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 예하 3여단에서 금융기관 부회장 아들의 ‘황제 복무’ 의혹에 이어 부대장 갑질 의혹이 연달아 나오던 시점이어서 아직도 군 내부 부조리가 만연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6월 24일 공군은 ‘황제 복무’ 의혹이 제기된 병사의 복무실태에 대한 감찰 결과를 발표했다. 공군은 감찰 결과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지휘·감독이 소홀했던 사실이 일부 확인됐지만 제기된 의혹의 대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발표했다. 부사관을 통해 해당 병사의 빨래와 음용수를 배달했고, 병원 진료차 외출한 뒤 집에 들러 근무지를 이탈한 데 대해서만 일부 사실관계가 확인됐을 뿐 나머지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공군의 감찰 결과대로 제기된 의혹 중 일부는 과장되거나 허위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군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갑질이나 부조리로 피해를 입은 장병이 내부의 지휘·보고계통을 통하지 않고 국민청원이나 SNS를 이용해 직접 제보나 폭로에 나선 자체가 상급부대에서 투명하게 의혹을 풀어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을 밑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육군 1공병여단장 관련 의혹을 제보받아 공개한 운영자 김주원씨(27)는 “해당 사건 외에도 한 부대에서 벌어진 사고를 내부적으로 무마했다는 제보가 들어와 공개할 예정”이라며 “군대의 분위기가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제보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해진 덕에 일선 장병들은 병영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게 됐지만 한계도 있다. 국민청원을 통해 비리나 부조리를 폭로해도 현재로선 공익신고자로서 보호받기가 쉽지 않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공익침해 행위를 지도 감독·조사할 수 있는 감독기관 및 수사기관’으로 신고할 때에만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을 통한 청원은 공익신고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이다.

면회와 외출 줄어 주변 상권은 울상

병영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투명하게 알릴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는 점 외에도 스마트폰 도입이 불러온 변화는 다방면에 걸쳐 있다. 일과시간 중에는 스마트폰을 반납한 뒤 일과 후 휴식·개인 정비 시간에만 쓸 수 있기 때문에 기밀사항이 외부로 알려지는 등 우려했던 보안문제는 아직까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2018년 시범운영 기간 동안 스마트폰 사용실태를 분석한 한국국방연구원의 ‘병 휴대전화 사용 시범운영 결과 분석’ 보고서에서도 휴대전화 사용이 군 생활 적응(79.1%)과 만족(70.4%) 정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야전부대에 배치된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가운데 79%가 긍정적 변화를 체감했으며, 병영생활 고충상담이나 징계, 폭언·폭력·가혹행위 등의 범죄 모두 감소했다는 결과도 나왔다.

물론 긍정적인 변화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일부 장병들에게서 인터넷 도박에 빠진 사례가 발견됐고, 성착취물 영상을 공유하는 범죄에 현역 장병이 연루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군 내부 문제를 외부 경로를 통해 알리는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았거나 일방적인 주장만 담은 의혹이 유포될 위험도 없지는 않다. 현재 복무 중인 한 공군 장교는 “간부 입장에서는 다른 사고를 치는 대신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면 사실 병력 관리 측면에서는 편한 점이 많다”면서도 “윗선의 잘못을 알리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점도 있겠지만 오히려 간부와 병사가 서로 불신하는 문화가 심해질까 걱정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무복무 기간 동안 영내에서 계속 생활해야 하는 장병들의 입장을 반영해 스마트폰 사용 외에도 이전부터 병영문화 개선 조치를 실시한 덕에 인명사고 등 심각한 사건·사고 발생 건수는 꾸준히 줄었다. 국방부의 인명사고 집계 자료를 보면 군무이탈(탈영) 사건은 2013년 643건에서 2018년 122건 등으로 5년 새 급격한 감소세를 보였고, 자살사고 역시 2013년 45건에서 2018년 21건으로 줄어들었다.

다만 인근에 군부대를 끼고 있는 접경지역 주민들 가운데선 장병 휴대전화 사용시간을 줄여달라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국방개혁 2.0 계획의 일환으로 부대 개편 및 축소가 이어지면서 군인을 대상으로 한 상권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데다 스마트폰 사용 때문에 장병들의 면회와 외출도 줄어 상권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주민단체들은 “장병들이 영상통화를 하게 되면서 면회객 발길도 끊겨 매출이 40% 이상 급감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강원 지역에선 부대 개편으로 화천군과 양구군에 있는 2개 사단이 해체되고 철원군의 1개 사단이 경기도로 이전한다. 부대가 몰려 있던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에선 전체 주민이 약 15만 명인 데 비해 주둔 중인 군 장병 규모는 약 10만 명에 달했다. 그동안 일부 상인들이 장병들을 상대로 비싼 물가를 적용해 비판 여론도 일었지만 그마저도 과거의 일이 될 형편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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