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아이에 대한 정서학대도 아동학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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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는 아이를 때리고 꼬집는 신체학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언어폭력, 차별행위, 잠을 재우지 않거나 아동을 시설 등에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행위 같은 정서학대도 포함한다. 어디까지가 아동학대일까.

필자에게도 군대 동기보다 더 끈끈하다는 ‘조리원 동기’ 모임이 있다. 며칠 전 조리원 동기 모임을 가지면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워킹맘인 동기 A가 최근에 어린이집에서 겪었던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A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어머님,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팔을 잘못 짚어서 2시간 동안 팔이 아프다고 하는데, 팔이 빠진 것 같아요. 지금 오셔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주세요.” A는 어린이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A는 아이가 팔이 빠진 상태로 어린이집에 2시간이 넘게 방치되어 있었던 것 같아 미안했다. 예정된 회의도 참석하지 못해 상사에게 찍혔다.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것도 아동학대다

이야기를 듣던 조리원 동기 B가 말한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는데 병원 이송도 하지 않고 계속 방치하고 그러면 아동학대 아니야? 다른 엄마였으면 이미 아동학대로 고소했을 것 같은데?” B는 어린이집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A는 어린이집에서 때린 것도 아닌데 무슨 아동학대냐고 되물었다. B는 A에게 영유아보육법 제31조 제2항에 따르면 “어린이집의 원장은 영유아에게 질병·사고 또는 재해 등으로 인하여 위급 상태가 발생한 경우 즉시 응급의료기관에 이송하여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 부과 규정도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상황에서는 어린이집에서 즉시 병원으로 이송했어야 하는 것이지 늦게 소식을 들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즉 방임 행위(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불결한 환경이나 위험한 상태에 아동을 방치하는 행위 등)도 아동학대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실제 법률 규정도 그렇게 돼 있다. 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에서는 아동학대를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아동복지법상 아동은 만 18세 미만인 사람을 말하고, 보호자는 친권자(일반적으로 부모)·후견인뿐만이 아니라 아동을 보호·양육·교육하거나 그 의무가 있는 자 또는 업무·고용 등의 관계로 사실상 아동을 보호·감독하는 자도 포함된다. 즉 어린이집 교사도 보호자에 해당한다. 이 규정에 의하면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가 다친 상황을 인지했는데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고 장시간 방치했다면 아동학대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아동학대에 관한 사례를 살펴보자. 아이 돌보미가 생후 10개월의 아동에게 “미쳤네, 미쳤어. 돌았나. 제정신이 아니제. 미친놈 아니가 진짜. 쯧 또라이 아니가 울고 지랄이고”라고 큰 소리로 욕설을 한 뒤에도 피해 아동의 울음을 그치도록 조치를 하지 않은 채 TV를 봤다. 법원은 피해 아동이 아이 돌보미의 말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목소리의 크기·억양 등이 충분히 위협적으로 들릴 만했다고 보고 정서적으로 학대했다고 인정했다. 또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낮잠을 자기 위해 누워 있던 원아에게 휴대전화로 무서운 영상을 틀어줘 원아가 다리가 떨릴 정도의 공포심을 느껴 울게 한 사안도 법원은 정서적 학대를 인정했다.

학대가 의심된다면

아이를 낳은 후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조리원 동기 C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사실 며칠 전부터 우리 첫째가 어린이집을 극도로 싫어하기 시작했거든. 그 전에는 어린이집에 즐겁게 다녔는데, 최근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바뀌고 나서부터 어린이집 가는 것을 너무 싫어하네. 평소에 하지 않았던 폭력적인 행동도 나타나고, 심지어 욕설까지 하고, 이미 기저귀도 뗐는데 밤에 이불에 실수까지 했어.” 혹시 몸에 상처 같은 것은 없었는지 묻자 “몸에 상처 같은 것은 없었는데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되어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C가 말한 행동들은 아동학대로 의심된다고 이야기해줬다. C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고 먼저 소아과 진단 및 소아 정신과 상담 조치를 하는 것이 좋다. 병원 진단서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이후 어린이집에 CCTV 열람을 요청해 영상을 확인한다. 영상에서 아동학대 정황이 확인되면 증거자료를 가지고 수사기관(경찰서·검찰청)에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고소할 수 있다. 혼자서 판단하기 어려우면 아동학대를 의심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상담할 수 있다. 수사 시작 전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시작 후에는 수사기관에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을 요청할 수 있으니 고소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변호사가 수사단계에서부터 재판단계까지 피해자를 지원해주며 무료이다.

종종 어린이집 원장이 교사의 아동학대 사실을 인지했는데도 일이 크게 번질 것이 두려워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법률에는 보육교직원·교사·의료인·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등 아동학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신고의무자로 지정해놨다. 신고의무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신고하지 않은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 또한 어린이집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아동학대 행위가 의심되는 경우 조사·검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어린이집 원장 또는 보육교사의 자격정지·취소, 어린이집 운영 정지·폐쇄를 명할 수 있다. 따라서 아동학대가 의심될 때 어린이집 관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해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

C는 조용히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기려고 했지 적극적으로 대응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필자는 어린이집에서 CCTV 영상을 열람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속 한편으로는 영상 속에 아무런 일도 없었기를 바랐다.

<양세원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법률위원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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