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변비와 가슴답답증엔 살구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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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제철 과일 살구는 상큼하면서 달고, 식감이 좋아 인기가 많다. 살구의 씨앗인 행인(杏仁)은 필자에게는 귀한 약재다. 노폐물을 잘 배출시키지만 거칠지 않은 부드러운 신사 같아 환자의 기력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장미과에 속한 살구나무의 씨앗이며, 아몬드처럼 생겼다. 약성이 따뜻하고, 맛이 달고 쓰면서 독이 있다. 기가 위로 올라 기침이 나고 호흡이 고르지 못한 것을 치료한다.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키고 땀을 내는 효과를 낸다. 대장의 연동운동이 느려져서 오는 배변 장애에 효과가 좋다.

살구씨는 한의학에서 행인(杏仁)이라 불린다. <본초강목>과 <동의보감> 등에 살구씨를 이용한 치료 방법이 200가지나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쓰임새가 많다./위키피디아

살구씨는 한의학에서 행인(杏仁)이라 불린다. <본초강목>과 <동의보감> 등에 살구씨를 이용한 치료 방법이 200가지나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쓰임새가 많다./위키피디아

‘살구(殺狗)’라는 글자는 ‘개를 죽인다’는 뜻이다. 은행 열매와 같이 아미그달린이라는 독소를 함유하고 있어 함부로 주워 먹은 동물이 죽을 수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미그달린을 가수분해하면 호흡중추를 억제하게 되고, 이로 인해 과격한 호흡이 안정되면서 기침과 천식 같은 호흡기질환에 효과를 보인다. 독이 있다고 겁낼 건 없다. 2~3돈 정도는 매일 복약해도 된다고 했는데, 이는 하루 20알 가까운 양이다.

배변 횟수가 짧게는 3~5일, 길게는 7~10일에 한 번 정도로 지나치게 적을 때 변비라고 한다. 횟수는 정상인데 상태가 너무 단단해 배출이 어려울 때도 변비라 할 수 있다. 횟수와 상태 모두 정상인데도 기혈이 허약하거나 소아들이 복부에 힘을 주는 방법을 모를 때 변비가 오기도 한다.

진료실에서는 환자가 불편한 것을 병으로 여긴다. 정상범위에 있더라도 환자가 힘들다고 한다면 주의 깊게 살핀다. 무엇이 힘든 것인지, 왜 그렇게 여기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환자가 안 불편하다고 해도 치료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50대 성악가 ㄱ씨는 오랜 복통과 가슴답답증, 만성기침을 호소했다. 진맥을 하니 대장 맥이 꽉 막혀 있고, 하복부가 냉한 맥이 잡혔다. 복진을 하니 아랫배에 몽글몽글 돌처럼 잡힌다. “변비 없으세요” 하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일주일에 몇 번 변을 보세요”라고 물으니 “주일마다 봐요” 하고 답한다. “얼마나 되셨어요” 물으니 “교복 입기 시작하면서요”라고 답한다. 마치 평생 냉대하를 겪은 자궁근종 환자와 같은 격이다. 늘 그래왔으니 무엇이 정상이고 병인지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분에게는 치료해야 할 변비 증상이라고 알려준다.

권혜진 청효대동한의원 원장

권혜진 청효대동한의원 원장

몸에서 버려야 할 것은 규칙적으로 버려야 한다. 오랜 변비로 대·소장은 거의 마비된 듯 움직임이 없고 냉해졌다. 늘 아랫배는 돌처럼 딱딱하고, 생리통도 극심했다고 한다. 당연히 대장이 있는 허리 부위는 뻐근하고 다리는 저리다. 등 근육까지 긴장감이 이어지고 승모근도 딱딱하다. 가스도 차올라 횡격막을 누르니 호흡이 편치 않고 기침이 난다. 근이완제, 기침약으로 해결을 못 한 이유가 설명된다. 늘 이렇게 갑갑하니 인내심이 없고, 조금만 기분이 나빠도 짜증을 확 내면서 소리를 지른다.

한의학에서는 배변 활동과 정신 활동의 연관성을 중요시한다. 과격하거나 결벽증이 있는 정신과 처방에 변을 시원하게 빼주는 약재를 더한다. 이런 만성 변비와 가슴답답증, 기침에 애용하는 약재 중 하나가 행인이다. 성질이 따뜻해 열성 변비에는 맞지 않으니 반드시 전문가 상담 후 처방받기를 바란다.

<권혜진 청효대동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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