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워터-산소통 남은 공기는 15분, 바닷속 자매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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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딥워터(Breaking Surface)

제작연도 2020

제작국 스웨덴

상영시간 81분

장르 극한 탈출 액션

감독 요아힘 헤덴

주연 모아 감멜, 매들린 마틴, 트린 위그겐 외

개봉 2020년 7월 9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찬란

찬란

알고리즘 때문일까. 유튜브에서 바위틈 지하 계곡 잠수 영상 같은 걸 한번 봤더니 끈질기게 수심 30m 용소계곡 이런 영상을 추천한다. 싫다. 전생이란 걸 믿지 않지만 전전생 언제쯤 물에 빠져 죽은 경험이라도 있는 걸까. 싫은데도 계속 보게 된다.

영화 <딥워터>를 보다 보면 거대한 자연에 비해 인간은 나약한 존재,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어이없는 죽음, 실제로 너무 많다. 고작 33m다. 그 깊이의 바닷속에서 자매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다.

많은 설명을 하지 않지만, 전후 맥락으로 보아 노르웨이의 해안가 마을에서 자란 언니 이다는 스웨덴으로 시집을 가서 살고 있다. 결혼생활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 그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어린 시절 같이 잠수를 하며 놀던 여동생 투바가 죽을 뻔한 일이다. 개가 짖고, 무슨 일이 생긴 걸 알고 달려온 엄마는 이다를 책망한다. “얘가 잘못되면 네 책임이야.” 그의 무의식을 짓누르는 것은 죄책감과 원망이다. 다행히 동생은 잘못되지 않았다.

한없이 나약한 존재를 극복해내는 삶의 의지

동생은 여전히 노르웨이에서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자라서도 산업 잠수사를 하는 투바는 유조선 프로펠러에 감긴 그물을 자르다가 엔진이 가동되는 바람에 위험에 처한다. 어쨌든 오랜만에 노르웨이에 놀러 와 엄마와 동생과 해후한 언니는 동생과 함께 즐겨 찾던 다이빙 스폿으로 차를 몰고 간다. 그런데 기후변화 때문인지 돌덩어리가 주변에 굴러 내린다. 바닷속으로 잠수한 그들 위로 큰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동생은 그 바위 밑에 깔려 나오지 못한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산소통에 남은 공기 분량은 15분. 제한된 시간 내에 바닷속에서 탈출하기 위한 자매의 사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므로 자세한 결말을 언급하지는 않겠다. 영화에는 군데군데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 있다. 앞서 유조선 프로펠러 사건도 위험에 처하는 것이 동생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볼 수 있지만, 스킨스쿠버를 하러 떠나는 그들이 도로에서 고장 난 차와 조우하는 장면 역시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암시한다. 긴급출동을 요청했다지만 동생 투바는 고장 난 차에 가서 도와주려 한다. 고장 난 차의 트렁크를 열어 ‘플로어 잭’을 꺼내 차체를 들어 올리는 중 긴급출동 서비스가 도착한다. 동생의 오지랖 넓은 성격을 묘사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후 바위에 깔렸을 때 그들에게 절실했던 것은 타고 온 차 트렁크에 있어야 할 ‘플로어 잭’이었다는 걸 강조하는 영화적 장치다. 이 복선에서 눈여겨볼 것은 또 있다. 차량운전자는 통상적인 가족 구성과 다르게 엄마와 뒷좌석의 딸이다. 즉 ‘남편’의 부재다.

여기엔 어머니를 매개로 맺어진 이다와 투바 자매 관계가 투사되어 있다. 자매는 엄마는 같지만 아버지는 다르다. 이다는 자신의 결혼생활도 불안하지만 깨진 가부장제의 삼각형에서 한 모서리, 그러니까 부재한 아버지의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하고 있다. 동생을 지켜줄 사람은 이다 자신뿐이다.

영화의 후일담이 궁금하다

그런데 낙석사고가 일어난 뒤 침착성을 유지하는 것은 동생 투바다. 언니는 당황한다. 동생은 차량 트렁크의 플로어 잭을 가져다 달라고 하지만, 언니의 판단으론 1.6㎞ 떨어진 민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답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판단에서 그 판단은 옳았을까. 결국 민가를 찾아갔지만 아무도 없다. 설령 누가 산다고 하더라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스킨스쿠버 장비를 갖추거나 잠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보장도 없다. 전화는 안 터지고, 마침 켜져 있는 컴퓨터의 스카이프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려 하지만 접속도 잘 안 된다. 우여곡절 끝에 연 트렁크에 플로어 잭이 없었다는 설정은 언니의 판단을 정당화한다. 어차피 민가로 가지 않고 있는 수단 없는 수단을 다해 트렁크를 열었어도 당장은 동생의 판단대로 해피한 결론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영화는 암묵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더 이상 방법이 없어 포기해야 하는 순간, 마지막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언니다. 어쩌면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녀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니까.

영화의 후일담이 궁금하기는 하다. ‘안전정지’를 하지 않았던 언니는 바닷속에서 의식을 잃었고, 동생은 어찌어찌해 그를 물가로 끌어냈다. 구조헬기가 나타난 것은 그 순간이다. 영화의 엔딩은 동생이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과거의 기억을 담은 시작 장면과 조율한다. 그는 자신을 희생해 평생을 지배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위태로웠던 그의 스웨덴 가정엔 사고를 계기로 평화가 찾아왔을까. 부디 그리되었기를.

<딥워터>도 <127시간>처럼 실화기반 영화일까

영화를 보며 내내 떠올린 것은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127시간>(2011)이다. 스킨스쿠버든 산악 트래킹이든 절대적으로 안전한 아웃도어 운동이란 없다(영화의 교훈으로 하기엔 당연한 거 아닌가). 산악인 애런 랠스턴이 겪은 실화를 각색해 만든 영화인데, 2003년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넌에서 남들은 가지 않는 코스로 등반하던 애런이 떨어져 자신의 오른팔이 바위에 깔린 사고다. 127시간은 아무도 오가지 않는 그 암벽 틈 길에서 오른팔이 낀 채로 그가 버텨야 했던 시간이다.

영화 <127시간>의 실제 모델인 산악인 애런 랠스턴 / 위키피디아

영화 <127시간>의 실제 모델인 산악인 애런 랠스턴 / 위키피디아


데뷔작 <쉘로우 그레이브>(1994)나 <트레인스포팅>(1996), <28일 후>(2002) 같은 영화에서 화면분할기법에 재미 들린 이 감독은 <127시간>에서도 애런의 등반 준비 장면이라던가, 결국 그 암벽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런이 선택하는 장면에서 같은 기법을 동원한다. 애런이 집을 나설 때 수도꼭지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던 물을 클로즈업하는데, 이 장면은 나중에 127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해 고립되는 애런의 처지와 대비된다.

<127시간> 이야기만 계속하기는 그렇지만, 결국 애런의 선택은 싸구려 중국제 칼로 바위틈에 낀 손을 스스로 잘라내는 것이다. 대니 보일이 그 순간의 주관적 고통을 영상으로 표현해낸 것은 너무나 훌륭해 영화를 본 지 근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딥워터>도 실화기반 이야기일까. 해외 영화 관련 사이트에서 올해 개봉할 <딥워터>를 찾으면 <야곱의 사다리>(1990), <플래시댄스>(1983)의 메가폰을 잡은 노장 아드리안 레인이 오랜만에 만든 동명의 영화만 뜰 뿐이다. 한국에서 <딥 워터>라는 제목으로 개봉하는 영화의 원제는 <Breaking Surface>다. 지난 2월 스웨덴에서 전 세계 최초 개봉한 걸로 되어 있지만, 아직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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