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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직 상담사, 응대에 상처받고 처우에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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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서비스는 365일 24시간 활짝 열려 있습니다.” “복지에서 일자리 정보까지 언제든 가깝고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2020 나에게 힘이 되는 복지서비스> 안내 책자에 나오는 문구다. 책자에는 각종 생계·교육·보육·보건의료 지원 정책에 더해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부 지원제도까지 담겼다. 이 책자는 보건복지부가 만들었다.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가 입주해 있는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2동 전경 / 김원진 기자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가 입주해 있는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2동 전경 / 김원진 기자

복지부는 ‘365일 열려 있는’ 복지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24시 전화 상담센터를 운영한다. 책자 표지 하단에는 ‘위험할 땐 129, 힘겨울 땐 129’라고 쓰여 있다. ‘129’는 보건복지상담센터(이하 129 상담센터)로 연결되는 대표전화다. 복지부 안내 책자에 129는 문의처로 395번 등장한다. 거의 모든 복지정책 안내를 129에서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129 상담센터는 2005년 문을 열었다. 현재 상담사 140명이 근무한다. 각 상담사는 3000쪽이 넘는 정부 지침을 숙지해야 한다. 민원인에게 설명해야 하는 복지제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 24시간 운영하는 위기대응팀 직원 39명은 자살예방 상담을 주로 맡는다. 이들은 모두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서 채용한 무기계약직을 뜻하는 공무직이다. 공무직은 채용 기간의 정함은 없지만 공무원 신분은 아니다. 복지나 수당체계도 공무원과 다르게 적용받는다. 근속 연수는 5년 안팎이다.

<주간경향>이 요청해 받은 공무직 상담사의 최근 업무일지에는 고된 노동이 담겨 있었다. 상담센터 상담사들은 스스로를 ‘최전선의 총알받이’, ‘감정의 하수구’라고도 했다.

129 상담센터는 경기 정부과천청사 2동 7층에 입주해 있다. 129 상담센터 외에도 기상청 기상콜센터, 교육부 민원콜센터, 외교부 영사콜센터 등이 ‘ㅁ’자 모양으로 들어서 있다.

“보도자료도 미리 못 받아”

이달 초 찾은 상담센터에서 이뤄진 상담 내용은 다양했다. “암 종류를 따지진 않습니다. 어르신, 항암치료를 하시면…”, “주소가 어떻게 되십니까, 어르신?”, “열은 이제 없으시고 목이 따끔거리는 증상은 없으신 거죠?”라는 상담 내용이 간혹 복도까지 들렸다.

이슈가 터지면 상담센터 업무도 증가한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퍼진 지난 2~5월에는 전화 건수가 하루 평균 2만 건이 넘었다. 2019년 11월 기준 일일 평균 전화 건수는 7955건이었다. 긴급복지지원 문의만 여전히 하루 1000건을 넘는다. 상담사들은 비상근무를 5개월째 이어가고 있다.

상담센터의 상담사들에게 가장 고된 일은 ‘자습’과 ‘독학’의 반복이다. 상담사들은 정부의 복지정책 발표 전 보도자료를 받지 못한다고 했다. 복지부에 수차례 발표 전 자료 배포를 요청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상담사 ㄱ씨는 “정부가 발표하면 우리도 뉴스를 검색해본다. 발표가 끝나면 바로 민원전화가 쏟아지는데 응대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상담사들이 정책을 100% 숙지하지 못한 채 민원인을 맞으면 불만이 나온다. 시민의 정책 불신도 쌓인다. 상담사 ㄴ씨는 “최소한의 정보가 담긴 보도자료조차 미리 받아보지 못하니 대응할 틈이 없다. 민원인에게서 ‘그것도 모르고 있느냐’는 핀잔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공무원들이 새겨듣는 청와대 지시사항일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청와대는 지난 3월 12일 자녀 돌봄·양육 문제는 ‘원스톱 서비스’를 지시했다. 자녀 돌봄·양육은 복지부·여성가족부·교육부·고용노동부가 함께 정책에 관여한다.

상담사들은 이때도 ‘정책 Q&A’ 자료 하나를 받고 1시간 자체 학습을 했다. 상담사 ㄷ씨는 “원스톱 서비스는 민원인에겐 최적의 서비스다. 서비스의 질이 담보되려면 상담사들에게 최소한의 교육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그는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하고 상담을 해가면서 내용을 숙지했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도 불안감이 매번 크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 상담사들이 습득해야 하는 보건복지부 지침 / 김원진 기자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 상담사들이 습득해야 하는 보건복지부 지침 / 김원진 기자

상담센터에는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문의도 이어진다. 새로 도입된 제도의 세부 내용이나 담당 부서를 묻는다고 한다. 공무원들 사이 담당자를 찾지 못하고 이쪽저쪽 ‘뺑뺑이’를 돌다 129를 찾은 민원인도 적지 않다. 상담사 ㄷ씨는 “일부 공무원들은 하대하듯이 ‘확인해서 연락주세요’라고 하고 끊기도 한다”며 “‘돌고 돌다 마지막으로 전화했다’는 민원인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고 말했다.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정부의 안일함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80㎝ 높이 투명 칸막이 설치도 지난 5월 16일에야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집에서 근무할 여건이 안 되는 상담사들에게도 재택근무를 강제한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는 예외적 상황이다. 교육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필요한 만큼 교육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상담센터에는 위기대응팀 상담사 39명이 24시간 교대 근무를 한다. 주로 자살예방 상담을 맡고, 긴급복지지원 등 복지정책 안내도 한다. 사회복지사·심리상담사 자격증 등을 소지하고 있다. 근무는 오전 7시~오후 2시, 오후 2시~밤 10시, 밤 10시~오전 7시 3개조로 나뉜다. 오전·오후 근무조는 4일 일하고 하루 쉰다. 야간 근무를 하면 이틀을 쉴 수 있다.

매 순간 일촉즉발인데 ‘콜수’ 압박

자살예방 상담은 정책 상담보다 통화시간이 길다. 2019년 11월 기준 평균 일반 상담시간은 204초다. 반면 자살예방 상담시간은 평균 556초다. 자살예방 상담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일 평균 32건에 그쳤다. 일반 상담(73건)의 절반에 못 미쳤다.

상담사 ㄹ씨가 지난 5월 중순부터 작성한 3주치 일기형식의 업무일지를 보면 “옥상처럼 위험한 장소에서 전화를 주거나, 약물을 과다복용하는 등 자살시도를 한 상황에서 전화가 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쓰여 있다.

민원인을 설득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경찰이나 소방당국과 연결해 구조를 시도하면 상담시간은 더 늘어난다. 상담사 ㅁ씨는 “자살을 시도하려는 민원인과 심리적 유대감을 형성하려면 상담시간 10분을 넘기는 게 다반사”라고 했다. 자살예방 전담 상담사들은 스트레스가 심해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상담시간을 줄이고 전화를 더 받으라는 압박은 상담사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상담사 ㄹ씨 업무일지에는 콜수 압박에 따른 불안감이 드러난다. ㄹ씨는 업무일지에 “상황은 매일 급박한데 자꾸 ‘콜수(전화 응대 건수)’ 압박이 들어온다. 팀장(관리자)이 복지부 공무원들과 회의를 하고 오면 ‘다음에는 처리시간이 너무 길어지게끔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한다”고 썼다.

지난해 11월 기준 응대율을 보면 자살예방 상담은 49.5%다. 총 22만3715건의 전화가 왔는데, 응대는 11만764건만 이뤄졌다. 상담사 ㅂ씨는 “들어오는 전화량이 많고 사람이 부족해서인데 무조건 콜수를 늘리라는 건, 자살위기에 처한 사람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라고 했다.

자살예방 상담사들만 콜수 압박을 겪는 것은 아니다. 복지정책 상담사들도 콜수 압박을 받는다고 했다. 상담사 ㅂ씨는 “질보다는 양을 늘리라는 주문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상담이 심층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는 단순 안내로 변질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상담사 ㅅ씨는 “일부 팀은 정해진 콜수가 있어 단답 위주의 상담만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에 있는 다섯 개 팀 안내판 / 김원진 기자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에 있는 다섯 개 팀 안내판 / 김원진 기자

압박은 민원인에게서도 들어온다. 지난 2월 코로나19 확산 이후 상담건수가 늘어나면서 민원인들의 불만 수위가 높아졌다. 상담사 ㄹ씨 업무일지를 보면 “코로나19 민원에 대응하느라 자살위험에 처한 민원인과 상담이 지연돼 마음이 조급해졌다. 대상자들은 ‘연결이 지연되는 동안 다 죽어나가겠다’거나, ‘노느라고 전화를 받지 않느냐’며 폭력에 가까운 불만을 호소하곤 한다”고 나와 있다.

“최소한의 처우 보장을”

그는 “어떤 민원인은 5000만 인구를 상담하라면서 상담인력을 얼마나 배치한 것이냐며 장관을 바꿔달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이해를 청하고 나면, 상담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허무해지곤 한다”고도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가 커버하는 정책 범위가 넓어 걸려오는 전화가 워낙 많은 상황이었다. 이때 빨리 전화를 당겨받으라는 지시 등을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보경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보건복지부 지부 사무국장은 “지난 3월부터 팀당 일평균 상담건수 달성도를 상담사 관리자 점수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직·간접적인 콜수 압박의 대표적인 예”라고 했다. 그는 “복지부 관계자들이 응대율이 낮으면 기재부가 예산을 삭감할 수 있다고 상담사들에게 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상담센터의 상담사에 대한 전반적인 처우는 낮은 편이다.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호봉제도 적용받지 못해 연차에 따른 임금상승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복지정책 상담사는 4~5년차 기준으로 세전 210만~220만원을 받는다. 자살예방 상담사는 4~5년차 기준으로 세전 월급 240만~250만원을 받는다. 야간 근무에 따른 수당이 더 붙은 액수다.

자살예방 상담사 32명은 복지부 측과 휴일근로수당·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문제로 다투고 있다. 복지부는 포괄임금계약을 맺어 자살예방 상담사들의 기본급에 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상담사들은 포괄임금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상담사들은 2019년 11월 복지부가 근로기준법상 휴일근로수당·연장근로수당 지급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며 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냈다. 노동부는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상담사들의 업무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 인프라 개선, 상담사 확충, 시스템 개선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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