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관리받지 못하는 렌털 제품 관리 인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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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 보장 못 받아

렌털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제품을 관리하는 인력도 덩달아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작 우리는 관리를 못 받고 있다”고 하소연하며 노동조합 설립 등 자구책을 위해 나서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이다. 특수고용직은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자영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 등의 보장을 받지 못한다.

LG전자 케어솔루션 광고/LG전자 제공

LG전자 케어솔루션 광고/LG전자 제공

기본급은 없고 건당 수수료가 수입

지난 5월 14일, 코웨이 제품을 관리하는 코디·코닥들이 노조를 설립했다. 코디는 여성 매니저, 코닥은 남성 매니저를 의미한다. 가전제품 방문점검원 노조가 법적으로 공식 인정받은 건 이 사례가 처음이다.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이 있어야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데, 노동청은 3개월 고심 끝에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5월 25일에는 LG전자 케어솔루션 매니저들이 노조를 설립했다. 매니저는 LG전자 케어솔루션 광고에서 “어떡하기는 어떡해요. 어떡해요 할 땐 케어솔루션하세요~” 라고 말하는 배우 이정은씨, 바로 그 역할이다. 이들은 LG전자의 서비스와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자회사 하이엠솔루텍 소속이다. 현재 매니저는 전국 4000명 정도다.

김정원씨(56)도 약 4000명에 이르는 매니저 중 한 명이다. 노조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LG케어솔루션 지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6월 17일, 김씨가 일하는 서울 양천구를 찾았다. 김씨가 “차가 지저분하다”며 차 앞좌석에 있던 물건을 뒷좌석으로 옮겼다. 뒷좌석은 이미 각종 필터와 청소도구 등으로 꽉 차 있었다. 앞 좌석이 뒤로 젖혀지지 않을 정도였다.

첫 일정은 오전 9시, 얼음정수기 필터를 교체하고 살균세척, 외관 클리닝을 하는 작업이다. 김씨가 차에서 필터와 청소도구 등을 꺼내 양손 가득 들었다. “LG가 다른 렌털업체들보다 챙길 게 많아요. 고객들은 좋아하지만 매니저는 그만큼 힘들죠.” 정수기를 거의 분해하다시피 하는 관 교체 작업이 있을 때는 근육이완제를 먹으며 일한다.

“어휴, 더워라.” 가정 방문을 마칠 때마다 김씨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30~40분을 내리 일하다 보니 얼굴이 땀범벅이다. “우리는 아예 한여름이 나아요. 한여름엔 집마다 에어컨을 틀어두니까요.” 이날 김씨는 이렇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11곳을 방문했다. 일이 많으면 14곳까지도 방문한다.

전업주부이던 김씨가 일을 시작한 건 2년 전이다. 친구가 별로 어렵지 않다며 권했다. 구인공고를 보니 ‘자유로운 시간 관리로 일과 가사를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월 200만원에서 400만원을 보장한다고도 했다. “육아와 경력단절이라는 어려운 현실 앞에 용기를 내 LG의 문을 두드렸습니다”라는 후기를 보고 마음을 굳혔다.

“‘공주스타일’인 친구가 하는 걸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걔는 몇 달 하더니 더 못 하겠다며 관뒀어요.” 일을 하다 보니 친구가 그만둔 이유를 알게 됐다. 먼저 월급이다. 개인사업자 신분이라 기본급은 없고 건당 수수료에 의지한다. 평균적으로 한 곳을 방문하면 9000원~1만원 수준이다. 200만원을 받으려면 한 달에 200곳, 하루 10곳 이상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온전한 월급은 아니다.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식대나 유류비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김씨의 경우 한 달 유류비는 15만~20만원 정도 든다. 개인 차량을 사용해야 하는 일이지만 차량 감가상각비도 보전해주지 않는다. 평일 저녁과 주말 근무가 잦지만 이에 따른 추가 수당은 건당 1000원에 불과하다. 개인사업자가 아니라면 8시간 이내의 휴일근로는 통상임금의 50%, 8시간을 초과한 휴일근로는 100%를 보장받는다.

김정원 케어솔루션 매니저가 관리에 필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이하늬 기자

김정원 케어솔루션 매니저가 관리에 필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이하늬 기자

김씨는 “주요 업무는 관리지만 관리만 해서는 최저임금도 벌기 어렵다. 결국 영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를 비롯한 많은 매니저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이다. 문제는 영업이 등급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등급은 S부터 D까지 나뉘는데 등급당 300원씩 수수료 차이가 난다. 같은 일을 해도 S등급과 D등급은 건당 1000원 이상 차이가 난다. 한 달로 따지면 20만원이 넘는다.

관리뿐 아니라 영업을 해야 하는 구조

따라서 매니저들은 고객을 방문해 다른 제품도 렌털로 사용해보라며 권한다. 매니저도, 고객도 난감하다. 이 영업실적은 개인등급, 팀 점수, 팀장의 점수에도 영향을 미친다. 황수진 금속노조 미조직사업부장은 “개인사업자라면서 회사가 영업 목표를 정하고 전국 사무소에 목표량(할당량)이 떨어진다. 그게 팀별로 나뉘고 또 개인별로 나눠진다”며 “가짜 개인사업자”라고 말했다.

‘보호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개인사업자는 말 그대로 ‘사업자’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아무런 보호도 해주지 않는다. 일하다가 다쳐도 개인 탓, 이동 중에 교통사고가 나도 개인 탓이다. 이들이 개인사업자 신분이 아니라면 모두 산업재해에 해당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해 가을, 사건이 터졌다. 정수기에 곰팡이가 발견돼 대거 관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가 수수료를 3000원으로 책정한 것이다. 매니저들에 따르면 이는 정수기를 거의 분해하다시피 해야 해 작업 시간이 1시간가량 걸렸다. ‘네이버 밴드’에 케어솔루션 매니저 모임이 만들어졌고, 1500명 가까운 이들이 가입했다. 김씨는 “회사가 우리를 신경 쓰지 않으니 우리 스스로 보호장치를 만들어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수수료는 1만원으로 올랐다.

이처럼 렌털 제품을 관리하는 이들의 지위는 LG전자뿐 아니라 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 렌털 업계마다 비슷한 방식으로 노조가 결성됐고, 또 다양한 통로로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상황에 대해 LG전자 관계자는 “케어솔루션 매니저들은 자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다”며 “하지만 업계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 매니저 다수가 만족해하며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LG전자에 앞서 비슷한 상황을 겪은 청호나이스는 2018년 ‘나이스엔지니어링’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특수고용 신분이던 서비스 기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코웨이도 지난 2월, CS닥터(설치·수리기사) 1750명 전원을 본사가 직접 고용했다. 코웨이 관계자는 “고객에게 더 책임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황수진 부장은 “관리 인력이 없으면 렌털 사업은 불가능하다. 사업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일하는 사람에 대한 책임 역시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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