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렌털 생활은 슬기로우십니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이용 계정수 1천200만 건 넘어… 일부 제품은 사실상 ‘고금리 장기할부 매매’

코로나19 여파로 경기침체가 우려됐지만, 오히려 큰 폭으로 성장한 시장이 있다. 바로 렌털시장이다.

렌털 업계 1위인 코웨이는 올해 1분기 매출액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 늘었다. SK매직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지난해 동기보다 28.7%나 증가했다. 올해 1월 내놓은 트리플케어 식기세척기 덕분이다. 이 식기세척기는 출시 두 달도 되기 전에 1만 대 판매를 돌파했다.

렌털 업계 1위인 코웨이의 정수기 광고 / 광고화면 캡처

렌털 업계 1위인 코웨이의 정수기 광고 / 광고화면 캡처

렌털시장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렌털시장 규모는 2012년 4조6000억원에서 2019년 12조원까지 성장했다. 연구소는 2020년에는 18조50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 간 렌털시장까지 합하면 시장 규모는 40조원 수준이다. 계정수도 1천200만이 넘는다. 단순 계산하면 국민 4명당 1명이 렌털을 이용하고 있다는 답이 나온다.

이처럼 ‘렌털’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많은 이들이 ‘낮은 초기 비용’을 우선으로 꼽았다. 100만원이 훌쩍 넘는 가전을 일시불 또는 몇 개월 할부로 구입하는 건 부담이 된다는 것. 직장인 박모씨(47)는 정수기·의류청정기·비데·공기청정기 등 다양한 가전제품을 렌털로 이용하고 있다. 그 역시 렌털 가전을 이용하는 이유를 묻자 ‘초기 비용’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냈다.

초기 비용 부담 덜고 관리에서 이점

또 다른 이유는 관리 때문이다. 정수기와 비데 같은 가전은 일반인이 관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구입보다는 렌털이 유리한 제품이다. 실제로 직장인 김수정씨(33)는 정수기를 ‘구입’했지만 고장난 이후 제대로 된 수리를 받지 못했다. 그는 “렌털이었으면 교체를 해줬을 것”이라며 “정수기와 비데는 렌털을 해야 한다는 말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정수기와 비데 정도를 제외한 가전제품의 관리는 크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씨는 “어설프게 내가 하는 것보다 전문가가 와서 해주는 게 위생이나 편의 면에서 낫다고 생각한다”며 “총비용을 따졌을 때 렌털이 구입보다 비싸다는 걸 알지만 관리 비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씨가 가장 만족하는 렌털 가전은 관리가 크게 어렵지 않은 의류청정기다.

1인 가구의 증가와 불황, 위생관념의 변화도 이유로 꼽힌다. 1인 가구는 한꺼번에 큰돈을 지불하기 어렵고, 경기가 나빠질수록 소비자는 일시불보다 할부를 선호한다. 코웨이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에 깨끗한 물, 깨끗한 공기 등 위생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며 “이런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의 말처럼 렌털 가전은 구매와 비교했을 때 저렴하지 않다. 가령 SK매직의 얼음 냉정수기를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110만원 수준이다. 3년 렌털은 158만원, 5년 렌털은 239만원 수준이다. 코웨이 살균비데 역시 일시불로 사면 74만원을 줘야 하지만, 3년 렌털은 92만원, 소유권이 소비자에게 이전되는 5년 렌털은 147만원 수준이다. 물론 렌털을 하면 해당 기간 동안 무료로 관리를 받을 수 있다.

비데나 정수기와 달리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은 제품은 어떨까. 온라인에서 110만원대에 팔리고 있는 LG전자의 의류청정기는 3년 약정, 5년 렌털로 사용할 경우 230만원이 넘는다. 5년이 지나면 이 제품은 소비자가 소유하게 된다. 최근 떠오른 미용가전 역시 큰 관리가 필요 없다. 바디프랜드의 백투더네이처 GLED 마스크의 일시불가는 119만원, 5년 렌털 비용은 137만원 수준이다.

이런 제품은 ‘렌털’을 표방하지만 ‘고금리 장기 할부 매매’ 개념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서 안마의자나 전기레인지, 미용기기 등은 청소와 소독이 관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제품은 굳이 렌털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이런 제품들은 서비스에 비해 비용이 과도하게 책정된 것은 아닌지 따져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계약해지 과도한 위약금 불만 많아

코로나19로 인해 기업들이 ‘비대면 케어’를 도입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비대면 케어는 화상으로 설명을 해주거나 AI 챗봇이 24시간 상담을 해주는 식이다. 김수정씨는 “비대면 케어라는 말은 모순이다. 챗봇이든 화상이든 결국은 내 손으로 해야 하는 건데, 포털사이트만 찾아봐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럴 바에는 사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G전자 관계자는 “렌털 고객들은 단순히 소유를 원한다기보다 새로운 제품을 경험하고 싶어한다”며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저렴한 초기 비용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소유권 이전이 되기 전에 신제품 렌털로 바꾸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렌털 서비스와 관련해 가장 큰 불만은 위약금이다. 계약을 해지했을 경우 과도한 위약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한 사례를 보자. 가슴확대 기기를 렌털한 한 소비자는 기기를 사용하던 중 가슴 부분에 피부트러블이 생겨 부작용으로 인한 중도해지를 요구했다. 업체는 계약서에 명시한 대로 남은 렌털요금의 50%에 상응하는 위약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소비자분쟁 해결 기준에 따르면 의무사용 기간이 1년이 넘는 렌털의 경우, 업체에서 받을 수 있는 위약금은 남은 기간 렌털요금의 10%이다. 의무사용 기간이 1년이 안 되면 위약금을 더 많이 떼지만 보통 1년 이하 계약은 없다. 이 사건과 관련해 소비자원은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하는 약관에 해당할 수 있어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멤버십 등록비·설치비·수거비 등 명목의 돈도 마찬가지다. 정지연 사무총장은 “이름만 다를 뿐 실제로 위약금이기 때문에 모든 비용을 다 합쳐도 남은 기간 렌털비용의 10%를 넘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남은 기간 렌탈비용이 200만원이면 소비자는 각종 비용을 다 포함해 20만원을 위약금으로 내면 된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 소비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소비자는 관리가 지연된 기간만큼 렌털 서비스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다. 관리 부실이 2번 이상 반복되면 위약금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다만 소비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해 관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