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서는 향기가 날까 냄새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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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하철 타다 보면 나는 냄새 있어.”

지난해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과 함께 개봉한 영화 <기생충>에서 성공한 IT기업의 사장 박동익(이선균 분)은 ‘냄새’를 언급한다. 운전기사로 채용한 김기택(송강호 분)에게서 묘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 냄새의 근원을 두고 기택의 가족은 설전을 벌이다 ‘반지하 냄새’라는 딸의 일갈에 모두 입을 다문다. 영화는 억누를 수도 없이 계층 사이의 선을 넘어 퍼져나가는 냄새를 통해 끝내 화해하지 못한 서로 다른 두 계층의 현실을 꼬집었다.

서울 중구 농업박물관 체험농장에서 전통방식으로 밭에 거름을 뿌리는 체험을 한 초등학생들이 거름 냄새에 코를 막고 있다./김정근 기자

서울 중구 농업박물관 체험농장에서 전통방식으로 밭에 거름을 뿌리는 체험을 한 초등학생들이 거름 냄새에 코를 막고 있다./김정근 기자

냄새는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런 특성이 미치는 범위도 생각보다 넓다. 향수는 물론 온갖 향료를 첨가한 비누와 샴푸, 체취를 가리기 위한 데오도란트처럼 인공적인 냄새로 온몸을 감싼 채 생활하는 문명인에게서 기술 문명과 동떨어진 삶을 유지하는 부족보다 더 많은 체취가 난다는 연구도 있다. 한편으로는 냄새를 멀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후각에 탐닉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현대 인류문명 한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꼭 반지하 주택만은 아니지만 취약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는 1인 가구의 주택을 대상으로 ‘반지하 냄새’의 근원인 곰팡이가 얼마나 발생해 어떤 냄새를 내뿜는지를 연구한 결과는 있다. 김대근 서울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 등 연구진이 2017년 발표한 ‘1인 가구 주거공간 실내공기 중 부유 곰팡이와 곰팡이 유래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발생특성’ 논문을 보면 특히 환기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구에서 곰팡이 발생농도와 냄새를 유발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 농도가 모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위에 돌아보는 ‘냄새’의 문화인류학

쉽게 말하면 반지하처럼 지표면과 창문이 가까워 바깥에서 오는 물질에 노출이 쉬운 집일수록 더 곰팡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곰팡이 외에도 냄새를 유발하는 물질은 모두 최대 62종까지 채취됐는데, 이 가운데 19종이 곰팡이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연구진은 “실내면적이 작은 1인 가구의 특성상 실내 곰팡이 생장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부유 곰팡이와 휘발성 유기화합물 농도 증가의 원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냄새란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사람의 콧속에 많이 분포하는 후각세포를 자극해 뇌로 전달하는 일종의 신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냄새는 때로 문학적일 때도 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냄새를 맡으며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프루스트 현상’은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를 통해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문학·심리학·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가 얽힌 이 현상에 착안해 냄새를 저장하거나 재생하려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사진이나 영상, 녹음 매체를 통해 시각과 청각에 기반을 둔 기억은 처음에 가깝게 재생할 수 있게 됐으나 다양한 화합물에서 발생하는 냄새에 바탕을 둔 후각적인 기억은 저장과 재생이 어려웠던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다.

영국 런던대 연구진이 세워진 지 400년이 넘는 세인트폴대성당 등 역사적 장소 속 냄새를 기록하는 방법은 탄소섬유 물질 등을 통해 유기화합물을 흡착하는 식이다. 오래된 성당의 제대와 낡은 가구, 책 같은 소장품에서 나오는 물질들을 모아 일일이 어떤 성분이 어떤 냄새를 내는지 분석한다. 그 결과 오래된 책 냄새는 식초 냄새의 주성분인 아세테이트 성분에서 나오고, 아몬드·계피향은 벤즈알데하이드 성분에서, 바닐라향은 바닐린, 잔디 냄새는 헥산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같은 맥락에서 ‘전자코’와 같은 후각 감지 센서를 개발하려는 노력도 점차 성과를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갈 길은 멀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을 활용해 복잡한 냄새를 분류하려는 시도가 향후 성과를 보일 수도 있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게다가 사람 몸에서 나는 체취는 인체 안팎에 살고 있는 각종 미생물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또 달라지므로 더욱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인류의 평균수명을 늘려준 비누

영국의 동물학자 앨러나 콜렌 박사가 쓴 <10퍼센트 인간>에는 이 체취가 문명에 따라 달라져 왔음을 연구현장에서 체험한 대목이 나온다. 동아프리카의 오지 부족을 연구한 연구자들이 서구문화와 접점이 거의 없었던 부족을 관찰했는데 비누조차 쓰지 않고 정기적으로 목욕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서는 아무런 체취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비누와 세제를 사용하는 목욕과 세탁문화를 접한 부족민 사이에서는 체취가 강했다. 이미 비누를 사용한 부족민 중에서는 더 많이 씻을수록 체취가 덜했지만 그래도 아예 비누를 쓰지 않는 부족민들보다는 체취가 더 났다. 이에 대해 콜렌 박사는 “비누와 데오도란트가 인체의 암모니아 산화균을 죽여서 변화된 박테리아 조성 때문에 인체에서 나오는 땀이 불쾌한 냄새를 가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체취가 덜한 집단이긴 하다. 땀냄새를 유발하는 요인 중 겨드랑이 아포크린샘에서 액취가 나게 하는 특정 유전자를 가진 비율이 2%에 불과해 국가별로 따졌을 때 가장 낮았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 한국인도 냄새를 아예 지우거나 덮으려는 근대 서구문명의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간접적으로 유입된 위생에 대한 강요가 체취는 물론, 발효음식이나 강한 향신료에서 나는 냄새, 변소 등 생활공간에서 나는 냄새를 몰아내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후각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특정 물질을 회피하기 위해 발달해온 인류의 역사 속에서 향료가 들어간 제품을 쉽게 만날 수 있는 현대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났다고도 볼 수 있다. 인류의 평균수명을 급격하게 늘린 요인 중 손꼽히는 발명품이 바로 비누였다는 점, 그리고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손쉽고 강력한 예방책이 비누로 손 씻기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런 셈이다. 하지만 강한 향수 냄새가 일부 사람들에게는 두통 등 부작용을 유발하기 때문에 ‘무향’ 제품이 인기를 끌고 ‘금향(禁香)구역’까지 설치하는 움직임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냄새와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모넬화학감각연구소의 연구결과는 눈길을 끈다. 타인의 체취를 통해 그 체취의 주인공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고 나온 연구나, 냄새를 통해 상품 구매욕구를 높이는 등 기분을 조절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등의 연구들이다. 미국의 박물학자 다이앤 애커먼은 이 연구소의 연구를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던 일부였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냄새를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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