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의 시위를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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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늬 기자

이하늬 기자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뀌게 했습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코로나19를 틈타 ‘홍콩 국가보안법’ 초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지난해 송환법을 추진할 당시 200만 명이 거리로 나온 걸 생각하면, 친중파가 대부분인 홍콩 입법회 입장에서는 지금이 아주 좋은 시기입니다. 현재 홍콩 당국은 코로나19를 이유로 8명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홍콩 시민 입장에서 국가보안법은 송환법보다 절망적입니다. 홍콩 현지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갈 수 없습니다. 한국 기자들만이 아닙니다. 이 역시 중국 정부와 홍콩 입법회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일 겁니다. 세계 각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홍콩 시민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으니까요.

<주간경향> 칼럼 필자이기도 한 홍명교 동아시아 연구활동가의 도움으로 홍콩의 다큐멘터리 감독 에이미를 섭외했습니다. 무리한 부탁인 걸 알면서도 에이미에게 매일 일기를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에이미는 흔쾌히 응하는 걸 넘어 “홍콩 상황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2주 동안 에이미와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에이미는 매일 거리로 나가 현장을 기록했습니다. 일기에는 상상하지 못한 내용이 가득했습니다. 최루탄이 바로 옆에 떨어졌다거나, ‘NOT MADE in China’라는 라벨이 달린 마스크를 팔았다는 이유로 체포되거나, 죽은 사람의 이름이 정부를 지지하는 서명에 올라가 있다거나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몇백 명이 체포됐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일기 앞에서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몸조심하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의 글이 더 울림이 컸던 이유는 무작정 현실을 낙관하지 않아서입니다. 일기에는 ‘희망이 없다’, ‘모든 게 헛수고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이 배(홍콩)가 가라앉을 것이라는 걸 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늘 그는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나는 계속 기록하겠다’, ‘그래도 나는 홍콩에 남겠다.’

지난해 여름휴가, 터키의 버스정류장에서 한 홍콩인을 만났습니다. 나란히 앉아 버스를 기다리던 중 딱히 할 말도 없어 “홍콩 시민의 시위를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해 저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동양인 여성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던 그와 제가 연결된 순간이었습니다. 에이미와 연락을 주고받는 동안 그 친구가 계속 생각났습니다. 에이미와 그 친구, 모두 잘 싸우고 잘 견뎌내길 바랍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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