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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하기 힘든 발달장애인 지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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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국가책임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질적 서비스 뒷받침돼야

머리를 깎고 삼보일배를 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바람은 하나, 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의미 있는 낮시간 활동 지원, 노동할 권리 보장, 자립할 수 있는 토대 마련, 당사자의 독립적 결정을 지원하는 환경 조성, 가족 지원체계 수립 등을 요구했다. 여기에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정부는 응답했다. 2018년 9월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내놨다. 영·유아기 조기진단·관리체계 구축부터 중·노년기 지역사회 돌봄 인프라 확충까지 아울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모들의 지난 움직임을 언급하며 “그런 아픈 마음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따뜻하게 마음을 보여줬는지 반성이 든다”며 울먹였다.

정책은 있지만

각종 정책이 첫 삽을 떴다. 하지만 피부로 와닿는 변화는 미미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모들은 청와대 앞에 섰다. 외형적으로는 요구가 반영됐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였다.

국내에서 ‘발달장애’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건 199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다. 이때는 발달장애의 개념을 ‘자폐성장애’로 한정했다. 2007년 같은 법이 개정되면서 발달장애는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를 아우르게 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등록된 발달장애인은 24만1614명이다. 전체 등록장애인 중 발달장애인 비율은 2010년 7.0%, 2015년 8.5%, 2019년 9.2%로 꾸준히 느는 추세다.

발달장애인의 지원정책은 호소와 투쟁의 결과였다. 8년 전인 2012년 2월 전국장애인부모연대·한국장애인부모회 등 4개 단체는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를 출범했다. 한겨울 출범식에 참여한 한 부모는 말했다. “많은 장애부모는 돈도 없고 빽도 없어서 우리 아이를 끝까지 책임져줄 방법이 없다. 아무리 말로 떠들면 뭐하겠나. 이런 법밖에 믿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발달장애인법 제정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였다. 같은 해 5월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은 제19대 국회 제1호 법안으로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2년 뒤인 2014년 4월에야 통과됐다. 용어가 생기고 법이 만들어진다고 삶이 나아지진 않았다. 약속했던 사업은 예산 부족으로 제자리를 맴돌았다. 후속계획도 마땅치 않았다.

정권이 바뀌었다.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209명은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이던 2018년 4월 2일 청와대 인근에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삭발농성에 들어갔다. 다섯 달 뒤 정부가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부모들은 또 한 번 기대를 걸었다.

지난해부터 만 18~65세의 성인 발달장애인이 낮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주간활동서비스가 시작됐다. 그동안 고등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인이 갈 수 있는 곳은 주간보호시설과 직업재활시설 정도밖에 없었다. 주간보호는 돌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간활동은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번에도 실질적 이행을 위한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지난해 시작한 주간활동서비스의 경우 발달장애인 1500명이 하루 4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출발했다. 올해는 4000명, 하루 4.5시간 수준으로 늘긴 했다. 상황에 따라 일일 2.5시간의 단축형, 6시간의 확장형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부모들이 바라는 ‘하루 8시간 보편적 시행’과는 거리가 멀다. 주간활동에 참여하면 가사·이동 등 일상생활을 돕는 지원활동서비스 시간이 일부 차감되는 것도 문제로 거론된다.

발달장애인법이 생기면서 17개 시·도에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생겼다. 법에 명시된 센터의 핵심 업무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개인별 지원계획의 수립’이다. 하지만 전담 인력이 부족하고 고용도 불안정하다. 개인별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실정이다. 가장 지원이 절실한 최중증 발달장애인에 특화된 개별 서비스도 찾아보기 어렵다. 기관에선 개별 서비스를 할 여력이 없고, 중증 장애인은 배제되기 쉽다. 이들이 향할 곳은 집밖에 남지 않는다. 가족의 돌봄조차 받기 힘든 발달장애인은 외딴 시설로 간다. 노동이나 자립은 먼 얘기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 방향도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같은 방향”이라며 “점차 지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발달장애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많은 이들이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힘을 실으려고 하지만, 그것이 실제 발달장애인의 삶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장애인복지학회 회장인 백은령 총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발달장애인 지원정책이 확장되고 있지만,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토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나라가 다 키워주니 좋겠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속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동기와 학령기에 집중된 발달장애인 지원체계를 성인기까지 확대해야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백 교수는 말한다. 가족에게 휴식을 지원하고 응급상황에서는 긴급보호의 기능으로 전환할 수 있는 단기적 돌봄서비스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가족이 지원하기 힘든 중·장년의 중증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살아가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발달장애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어떻게 하면 발달장애인 입장에서 그들의 요구를 잘 파악하고, 그에 맞춰 지원할 수 있을 것인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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