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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가족의 극단적 선택, 다시는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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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끼가 많았다. 지인들은 그를 발랄하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자작시를 읽어내려가는 그의 목소리가 녹음파일 속에 남아 있다. 차분하고 맑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6월 1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최근 사망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추모하고 내실 있는 지원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6월 1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최근 사망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추모하고 내실 있는 지원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우리 집 현관엔 항상 신발 두 켤레가 놓여 있다./ 아들 신발과 내 신발./ OO의 신발이 내 것의 두 배가 된 지도 오래./ 언제까지 내가 함께해 줄 수 있을까./ 아프지 말아야지. 아프지 말아야지. / 오늘은 든든한 보디가드 OO이와 단풍 구경이라도 가야겠다.”

스물다섯 살인 아들은 중증 발달장애인이었다. 언니는 ‘선물’이라는 장애인 부모들의 창작모임에서 활동했다. 시를 짓고, 자신과 자녀의 이야기로 연극을 올렸다. 아들은 늘 엄마 곁에 있었다. 함께 무대에 올랐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광주지부장 김유선씨는 “아이는 연습실에서, 극장에서 연기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2018년 4월 209명의 부모가 삭발하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할 때, 언니도 1박2일 동안 상경해 힘을 보탰다.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앞까지 삼보일배에도 참여했다.

한 지인은 “언니는 청와대 앞에서 시위할 때 더 힘이 난다는 말을 했다”고 떠올린다. 지난 5월의 마지막 날, 언니는 텃밭에서 딴 상추와 완두콩, 머윗대, 고사리를 그에게 싸줬다. 아들이 좋아하는 바지락칼국수를 한 그릇 먹고 헤어졌다. 언니와 그 아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두 사람을 더는 볼 수 없어서다.

지난 5월 18일 광주장애인부모연대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언니’ ㄱ씨의 전화였다. 3개월째 정신병원에 있는 아들을 데려와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아들 ㄴ씨는 지난해까지 주간 보호시설에 다녔다. 코로나19로 2월부터 광주지역 복지시설이 모두 문을 닫았다. ㄴ씨는 집에 있는 걸 답답해했다. 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미래가 없다”

코로나19 이전에도 ㄱ씨의 돌봄 부담은 컸다. 특수학교를 마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지원체계가 턱없이 부족했다. 엄마는 우울증을 앓았다. 올해 초 ㄱ씨는 “아들이 이전에는 안 보였던 모습을 보인다”고 지인들에게 털어놨다. 감염병이 도는 상황에서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돌봐줄 복지시설은 없었다. 한계를 느낀 ㄱ씨는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ㄴ씨는 개인에게 맞는 지원을 받지 못했다. 몸무게가 10㎏이나 빠졌다. ㄱ씨는 통화에서 “아들을 데려온 다음 일이 걱정된다”고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튿날, ㄱ씨와 연대 관계자들이 만났다. 지부장 김유선씨는 “정신병원은 자녀의 장애특성에 맞는 공간이 아니다. 지역사회로 다시 데리고 오자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낮시간 지역사회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주간활동 서비스를 권유했다. 주간활동 서비스는 ‘돌봄’ 위주의 주간보호 서비스와는 차이가 있다. 연대는 지역 내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연락해 긴급 지원계획을 수립해달라고 요청했다. 6월부터 주간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5월 25일 ㄴ씨가 퇴원했다. 6일간 ㄱ씨는 집에서 아들을 돌봤다. 6월 1일과 2일 ㄴ씨는 주간활동에 참여했다. 3일 오전 그가 주간활동에 나오지 않았다. 이날 ㄱ씨와 ㄴ씨는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ㄱ씨가 다시 아들을 정신병원에 보내기로 한 날이었다고 한다.

인권 이해 교육을 하기 위해 모여 있던 엄마들이 소식을 접했다. 전날 오후 주간활동이 끝난 뒤 “잘 가”라고 인사하던 ㄱ씨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황망했다. 벼랑 끝에 서 있던 사람을 잡고 있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김씨가 말했다. “어떤 장애 유형이든 학령기에는 학교에 가지만 성인이 되면 갈 곳이 없다. 비장애인은 때가 되면 대학도 가고, 진로도 찾고, 결혼도 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차 끌고 가서 먹기도 하지만 장애 성인은 힘든 게 현실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꿈꿀 수 있는 미래가 없다. 센터에 한 번 들어가면 문제행동이 일어나서 내쫓지 않는 이상 붙박이처럼 이용하며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제주 서귀포시에서도 40대 여성과 발달장애를 가진 고교생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은 대부분 가족,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감당해야 했다. 매년 비슷한 죽음이 있었다. 자녀의 생명권은 부모에게 있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가 자녀의 목숨을 앗아갈 권리는 없다. ‘안타깝다’고 넘길 일이 아니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 바로 뒤에 국가의 책임 방기가 있다.

졸업하면 갈 곳이 없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이용할 수 있는 시설도 한정적인데다 그마저도 중증이면 마땅한 지원을 받기 힘들다. 부모도 나이가 든다. 성인 자녀를 돌보는데 신체·정신적 부담이 커진다. 발달장애인 부모 정순임씨는 “ㄴ씨가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말한다. “최중증이었던 ㄴ씨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직업활동에서 배제당하기도 하고, 주간활동을 하기까지도 오래 걸렸다. 사회적 안전망이 있다고 하면, 발달장애 영역 속에서도 최중증만을 위한 시스템이 가동됐어야 한다.”

장애가 있는 두 자녀와 사는 최수정씨가 말을 보탰다. “주간활동·주간보호·복지관 일자리사업 정도다. 취업으로 나간다 해도 비장애인이 가서 일할 수 있는 만큼의 환경이나 급여 모든 것이 미치지 않는다. 주간활동 시범사업 때는 중증장애인에게 일 대 일 서비스를 했는데, 본사업으로 오면서 강사 한 명이 두세 명을 맡게 됐다. 지원하는 분도 힘들고 당사자도 본인의 역량을 제대로 못 펴게 된다. 최중증인 경우에는 강사 한 명이 당사자 한 명을 지원하는 것도 어렵다. 주간보호는 직원 한 명이 최대 10여 명까지 보기도 한다. 중증장애인에게 오롯이 손이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머지 사람을 위해 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건비·인력 같은 여러 가지 문제로 중증 장애인은 거부당한다.”

최씨는 나이 서른을 바라보는 자녀를 보면서 ‘언젠가 독립을 시켜야 할 텐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제 아이는 혼자서 씻고, 먹고, 자는 건 할 수 있는데 이동이 불편하다. 활동지원을 하는 분이 아침에 주간활동이나 주간보호, 일자리활동에 갈 때, 활동 마치고 다시 집으로 올 때 도와주신다면 독립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주간활동을 이용하면 활동지원 시간이 줄어든다. 아침에 주간활동을 가려면 도움이 필요한데 활동지원은 받기 어렵다. 밖에서 볼 땐 엄청난 지원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 밑돌 빼서 위로 괴는 거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6월 1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최근 사망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추모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6월 1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최근 사망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추모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그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늘 듣지만, 그때마다 상처로 박힌다. 최씨는 “장애에 대한 이해도나 지원이 전무할 때 (부모 운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다. 후배들의, 동생들의 아이들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시선으로 보지 않는 세상에서 살길 바란다.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뿐 아닌 실질적인 대책을

부모들은 모든 것을 나라에서 책임져 달라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다시 집으로, 가족에게 기대야 하는 현실에서 자녀가 동네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지역사회가 토대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정씨는 “앞으로 지원체계가 잘 정비돼 자녀가 부모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하든, 혼자 자립생활을 하든, 친구와 같이 살든 어떤 방식으로든 평화롭게 놓아줄 수 있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부모들은 지난 6월 1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 모였다. 검은 옷을 입고 검정 실루엣으로 처리한 영정사진을 들었다. 세상을 떠난 발달장애인과 가족을 추모하고, 정부에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반복적으로 발생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은 코로나19에 따른 천재(天災)가 아닌 장애인과 가족을 방치한 정부의 인재(人災)”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필요를 고려한 돌봄 지원체계가 있었다면, 필요할 때 자녀를 돌보거나 보호해줄 수 있는 기관이 있었다면, 자녀의 불확실한 미래에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죽음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일주일 전 세상을 떠난 발달장애인 청년 ㄴ씨의 이름을 외쳤다. 얼굴 없는 영정 앞에 국화꽃이 쌓였다.

이날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청와대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2018년 9월 정부가 마련한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도록 민·관 협의체 구성을 요청했다. 광주시는 지자체 차원의 한층 더 강화된 발달장애인 지원정책을 수립해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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