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협상 난항, 메이저리그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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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야구를 보고 싶어한다. 선수들도 야구를 하고 싶어한다. 구단들도 어서 시즌이 시작돼 야구 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야구가 열리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늦춰진 메이저리그가 시즌 재개를 위한 노사협상에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선수도, 구단도 야구를 원하는데, 정작 협상은 꼬일 대로 꼬였다. 이대로라면 2020시즌 메이저리그가 아예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로고/AP연합뉴스

미국 메이저리그(MLB) 로고/AP연합뉴스

서로 수정안 제시하며 팽팽히 맞서

메이저리그는 지난 3월 12일(현지시간) 스프링캠프가 전면 중단되며 시즌이 멈췄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다. 대부분의 선수는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애리조나와 플로리다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류현진(33·토론토)은 캐나다가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바람에 플로리다에 발이 묶였다. 러셀 마틴의 플로리다 집에 살면서 몸을 만들고 있고, 그 사이 아빠가 됐다.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역시 자가격리 기간 때문에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플로리다에 남았다. 추신수(38·텍사스)는 애리조나 캠프에서 텍사스 집으로 돌아가 언제일지 모를 시즌 개막에 대비했다. 최지만(29·탬파베이)은 시즌 중단이 길어지자 코로나19에서 비교적 안전한 한국으로 돌아와 개인 훈련에 애썼다.

KBO리그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세에 접어들면서 5월 5일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조건으로 개막했다. 미국 역시 코로나19 감염 확산세가 완화된 가운데 프로스포츠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는 오는 7월부터 훈련에 돌입해 8월 1일 개막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코로나19에 대비해 플로리다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를 중심으로 팀들이 한데 모여 남은 시즌과 포스트시즌을 치른다는 계획이다. 미국프로풋볼(NFL)도 9월로 예정된 개막 일정을 소화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국의 내셔널 패스타임이라 불리는 야구는 손발이 묶였다. 메이저리그 노사협상이 풀리지 않는 것은 ‘돈’ 때문이다. 구단들은 선수들의 연봉 추가 삭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선수들은 지난 3월 합의된 내용을 이행하라고 맞서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스프링캠프를 중단시키면서 구단과 선수노조는 향후 연봉 지급 방향을 두고 합의한 바 있다. 스프링캠프 포함 두 달치 연봉으로 30개 구단이 총액 1억7000만 달러만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메이저리그 보장 선수는 28만6500달러씩을 받는다. 연봉 2000만 달러를 받는 류현진은 이를 10개월로 나눠 받기 때문에 두 달치면 400만 달러가 돼야 하지만, 28만6500달러로 줄어든 셈이다. 남은 연봉은 경기수에 비례해 받기로 합의했다. 경기수의 70%인 113경기를 치르면 70%의 연봉을 받는 셈이다.

대신 선수들은 시즌이 열리지 않더라도 2019년을 뛴 선수라면 FA 연수에 해당하는 서비스 타임 1년을 인정하기로 했다. FA 자격이 늦춰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구단들이 이 합의를 깨고 싶어하는 건 코로나19가 사상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2020시즌이 열리더라도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백신이 없기 때문에 ‘무관중 경기’로 열려야 한다. 구단들은 관중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연봉의 추가 삭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2020시즌 총수입을 구단과 선수들이 50 대 50으로 나눠 갖는 안을 제시했다. 일단 문을 열고 돈을 번 뒤 이를 나누자는 뜻이었다. 이에 반발하자 이번에는 82경기를 치르되 고액 연봉 선수들의 연봉을 많이 깎는 누진 삭감안을 제안했다. 선수들의 114경기를 치르고 포스트시즌 참가팀을 늘리는 안을 내놓으며 ‘더블헤더도 감수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구단들이 거부했다.

구단이 다시 내놓은 76경기 안에 대해 선수들은 89경기 안으로 받았다. 둘 사이의 경기수 차이는 줄어드는 것 같지만 여전히 선수들은 연봉의 비율 삭감안을 고수하고 있고, 구단들은 수입 감소에 따른 추가 삭감을 고집하고 있다.

합의 안 되면 공은 커미셔너 손에

별 차이 나지 않는데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면 쉽게 풀릴 듯한데도 양측이 이렇게 팽팽하게 부딪히는 건 1994년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1994시즌 선수노조의 파업에 구단들이 직장폐쇄로 맞섰다. 구단들이 선수들의 치솟는 연봉 부담을 막기 위해 ‘샐러리캡’ 도입을 추진하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샐러리캡은 구단 총연봉을 제한하는 제도로 농구 등에서 사용된다. 선수들은 26년 전 샐러리캡에 반대하며 파업을 했고, 구단들도 직장폐쇄에 이어 1995년 스프링캠프를 비노조 선수들로 꾸리려 할 정도로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미 연방정부가 중재에 나섰지만 잘 풀리지 않던 문제는 1995시즌 개막에 앞서 극적인 합의를 이루며 리그가 재개됐다.

선수들은 샐러리캡을 저지했지만, 팬들에게 상처를 준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메이저리그의 인기는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1990년대 후반 ‘홈런 열풍’이 불고 나서야 리그 관중수·시청률 등이 회복됐다.

이번 갈등 역시 ‘샐러리캡’을 골자로 한다. 샐러리캡은 기본적으로 리그 수입과 선수 연봉이 연동되는 시스템이다. 리그 수입이 늘면 샐러리캡 상한선도 높아진다. 구단들이 ‘수입 감소’를 이유로 추가 연봉 삭감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샐러리캡’의 논리라는 게 선수노조의 해석이다. 샐러리캡은 일종의 마지노선이다. 여기서 밀리면 선배들이 파업으로 지킨 성과를 모두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투수 션 두리틀이 트위터에 “우리는 양보할 수 있고, 야구를 하기 원한다. 하지만 후배들, 미래의 메이저리거들이 우리의 양보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야구를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적은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반면 구단들은 과거 파업에 따른 팬들의 비난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중이다. 구단들은 82경기 안에 누진삭감제를 포함했는데, 이는 고액 연봉 선수들의 돈을 더 많이 깎는 방식이다. 2000만 달러를 받는 류현진의 연봉은 이 방식이라면 515만 달러로 줄어든다. 거의 25%만 받는 셈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두 힘든 가운데 고액 연봉 선수들의 희생을 교묘하게 부각했다. 정치적·윤리적으로 선수노조를 압박하는 방식이다.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마지막 선택은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가 한다. 현재 3월의 합의를 유지한 채 손실도 최소화하는 안은 ‘50경기’ 정도만 치르는 것이다. 이래저래 메이저리그가 위기에 빠졌다.

<이용균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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