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도 배달음식업도 공유주방이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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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는 자동차나 주거공간 등을 공유해 활용도는 높이고 불필요한 소비는 줄이는 장점을 내세워 생활 속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비대면’이 코로나19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모르는 이와 공간이나 자원을 함께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빠르게 확산됐다. 그럼에도 오히려 비대면 추세가 확산되며 성장한 배달음식업 시장과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혼밥’의 일상화 흐름에 힘입어 더 많은 수요를 예고하는 영역도 나타났다. 바로 공유주방이다.

한 공유주방 서비스 업체 지점에서 직원들이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 위쿡 제공

한 공유주방 서비스 업체 지점에서 직원들이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 위쿡 제공

반년 전부터 음식점 창업을 계획하던 최현진씨(40)는 목이 좋은 매장 자리를 알아보던 일을 그만뒀다. 대신 한 공유주방 제공 업체와 계약하고 배달음식을 전문으로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멀쩡하던 식당도 문 닫는 모습을 봤고, 반대로 배달에 특화된 메뉴를 파는 식당은 돈을 쓸어 담는다는 얘기도 들으니 답이 분명해졌다.” 최씨는 공유주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업체를 비교하면서 자신처럼 창업에 처음 뛰어드는 자영업자들을 위한 지원책이 잘 마련된 곳을 골랐다. 진출하려고 하는 지역의 상권분석과 식단 구성, 재료 수급 같은 어려운 문제도 꼼꼼히 함께 고민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공유주방은 주방 공간을 여러 사업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게 제공해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 각종 도구와 자재 구매 등에 들어가는 초기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현재로선 코로나19 특수를 타고 성장한 배달음식업 시장을 겨냥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업종이다. 하지만 영업 목적으로만 공유주방이 활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혼자서는 요리 비용과 시간 부담이 크기 때문에 공동으로 밥상을 차려 식사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유대를 기대하는 1인 가구에도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각되는 모습이다.

성남 은행골마을 공유주방 운영

경기 성남에서는 관내 은행골마을에 있는 마을공동체 공간 ‘은행골어울터’에서 공유주방을 운영한다. 공동체 차원에서 주방을 공유하는 사업 역시 공유주방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유주방과 구분하기 위해 ‘공유부엌’이라는 이름을 따로 붙이기도 한다. 은행골어울터에서 6월 한 달 동안 진행하는 ‘어울부엌 온라인 나눔밥상’이란 이름의 프로그램은 현재 유지되고 있는 생활 속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된다. 요리 전문 강사가 온라인으로 음식 만드는 방법을 지도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이 각자 음식을 만든 뒤 이 음식들을 모아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 이웃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주방을 공유하며 조리와 식사까지 같이하던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의 모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은 공백을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메우려 나선 것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 김모씨(45)는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밥 한 끼를 같이하면서 나누던 정을 더욱 그리워하실 거라 생각했다”며 “상황이 나아지면 얼굴 모르던 이웃들도 한데 모여 날마다 돌아오는 반찬 걱정도 좀 덜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공동체형 공유부엌은 대체로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하거나 공익을 우선하는 사회단체·사회적협동조합 등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돈벌이와 거리가 있다고 해서 수요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젊은 1인 가구는 혼밥이 익숙하다고 해도 ‘집밥’의 온기를 나누며 둘러앉아 식사할 수 있는 소셜다이닝을 찾고, 고령층 1인 가구 역시 부실한 식사 대신 반찬을 풍성하게 나눌 수 있는 공유부엌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신선한 식재료를 공급하는 농민들까지 요리와 식사 자리에 함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공유부엌은 서울에만 현재 400곳이 넘고, 전국 각 지역 자치센터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최근 몇 달 동안은 성남 은행골어울터처럼 다중이용시설이 문을 닫은 경우가 많아 공유부엌별로 각기 대안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업체들이 운영하는 공유주방도 기본적인 원리는 공유부엌과 비슷한 점이 많다. 공유부엌이 대체로 공적으로 마련된 주방 공간을 활용해 지역주민 개인의 참여로 굴러간다고 한다면, 공유주방은 업체에서 보다 큰 규모로 주방 공간을 준비해 대여하고, 사업성을 생각한 중소규모 음식업자들이 참여하며 경쟁과 협력을 지속하는 방식이다. 현재로선 ‘위쿡’·‘고스트키친’·‘클라우드키친’ 같은 3개 업체가 자본과 규모로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지만 여러 다양한 업체들이 속속 서비스를 시작하며 각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공유주방 서비스업체의 영업이 활성화된 데는 배달음식 주문이 크게 늘어난 것과 함께 정부가 공유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6월 이전까지만 해도 식당은 한 영업소에서 한 사업자만 신고·영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부터 규제 샌드박스 정책으로 주방 공유영업이 한시 허용됐고, 지난 5월에는 아예 다수의 창업자가 1개 주방을 공유해 영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왔다. 코로나19로 가중된 영세·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에서다.

지자체도 주민공동체 공유부엌 지원

공유주방이 한시적으로 허용된 기간 동안 정부는 고속도로 휴게소 15곳 등에서 1개 주방을 주·야간으로 구분해 2개 사업자가 영업할 수 있게 제도를 시범 운용한 바 있다. 그 결과 기준을 지키면 안전성 확보도 가능하며 고속도로 휴게소를 기준으로 했을 때 1곳당 창업비용을 약 5000만원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왔다.

하지만 소자본 창업자들의 진출이 쉬워진 반면 몇몇 공유주방 업체가 시장을 장악할 경우 반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우려도 없지는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유주방 업계 내부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끌어오는 자본 규모에 따라 선도적 기업 몇 곳만 남을 가능성도 분명 있다”고 말했다.

KDB미래전략연구소의 강준희 연구원이 쓴 ‘국내 공유주방 산업 동향 및 전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준 온라인을 통한 전체 음식 서비스 거래금액은 9조700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시장은 성장했다. 2017년과 비교하면 2년 만에 시장이 3배 이상 커진 셈이다. 강 연구원은 “공유주방을 이용하면 일반 음식점 대비 약 20% 수준의 비용으로 창업이 가능하며 업종 변경 또는 사업실패 시에도 매몰 비용이 적게 발생한다”며 “공유주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역시 과거 축적된 수요·판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외식업자를 직접 고용하는 형태까지 일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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