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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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공격하는 쪽의 논리는 일견 솔깃하게 들릴 때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려졌으므로 정확하지도 않을 뿐더러 평범한 개인이 겪은 일이기에 ‘관’에서 공식적으로 추진한 정책이나 사업과는 무관하게 진행됐다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나치 독일이 점령한 국가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를 히틀러가 지시했다는 문건이 있느냐는 반박은 일제가 일본군 ‘위안부’를 모집했다는 점을 입증할 공식 문서가 발견된 적 없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5·18 당시 전두환씨가 발포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은 있지만, 그들은 죽어서 더 이상 증언하지 못하고, 남은 기억을 가진 유족들이 흐릿하거나 전해 들은 기억을 바탕으로 역사를 조각조각 이어붙여야 하는 사건에서 이런 공격이 흔하지요.

희생자와 피해자, 유족들이 각기 파편처럼 지니고 있는 기억들을 이어붙이는 작업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죽은 이들은 이미 사라졌지만,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엄연히 존재했던 학살과 폭력의 고통을 지금 세대가 되풀이하지 않을 의무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경찰관이 평범한 시민 조지 플로이드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만 해도 이전까지 숱하게 벌어진 비슷한 사건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다시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리로 뛰쳐나온 일부 시위대가 도를 넘는 약탈과 폭력을 자행하는 모습과 그 반대편의 진압부대가 역시 과잉진압을 반복하는 모습만 보고 특정 인종·계층·집단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는 움직임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을 여러 무리로 단순하게 구분 짓는 기준만을 따라서 피해와 가해의 경계를 예리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점만 기억했어도 서로를 향한 적개심이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니 임지현 교수가 말한 대로 ‘기억의 책임’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이미 벌어진 과거의 사건과 그 배경이 된 사회적 편견, 구조적 갈등 모두를 시민 각자가 책임질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현재까지 남아 있어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책임은 있습니다. 그 책임을 외면하지 못해 거대한 폭력에 희생된 선조들이 있었듯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역시 다음에 나타날 더 후대의 세대를 위해 짊어져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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