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변론’ 마친 전교조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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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서 열린 전교조 법외노조 공개변론, 세 가지 쟁점 놓고 팽팽

4시간이 훌쩍 지났다. 지난 5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진행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공개변론. 양측의 팽팽한 논쟁이 오갔다.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한 지 6년 7개월,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간 지 4년 3개월 만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과 대법관들이 5월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과 대법관들이 5월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2013년 10월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하는 팩스 한 장을 보냈다. 노동부는 해직 교원이 조합원에 포함됐다는 점과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문제삼았다. 전체 조합원 6만 명 중 해직 교원은 9명이었다. 조합원들은 총투표를 통해 해직 교원들과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지만 1·2심 모두 노동부의 손을 들어줬다.

쟁점은 세 가지다. ①법외노조 통보의 근거가 된 노동조합법 시행령 조항이 위헌·위법적인지 ②해직 교원이 가입돼 있긴 하지만 자주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노동조합으로 볼 수 있는지 ③법외노조 통보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조치였는지다.

형식과 실질, 해석의 충돌

노조법 제2조 4호는 노동조합을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라고 규정한다. 주체성·자주성·목적성 등이 노동조합의 적극적 요건이다. 결격사유가 되는 소극적 요건은 단서로 달았다. 그중 하나가 “교원이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조항이다.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는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에 있다.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반려할 만한 사유가 생겼을 때 행정청이 노조에 시정을 요구하고, 노조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노동조합 아님’을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전교조 측은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가 법률이 아닌 시행령이기 때문에 위법하다고 봤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 제한해야 한다는 헌법상 법률유보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원고 측 신인수 변호사는 노조법 제2조가 노조를 정의한 규정일 뿐이라며 “정의규정의 해석과 적용은 사법부의 몫이지 행정부의 행정명령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노조의 적격성, 권리 유무는 사법부가 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시행령은 1987년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폐기된 구 노조법상 노조해산명령권이 이듬해 밀실에서 부활한 결과물이라고도 했다. 처음부터 법률을 잠탈할 의도로 만들어졌고, 법률에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위법하다는 것이다.

노동부 측은 정당한 법 집행 선언이라고 맞섰다. 노동부 측은 해직 교원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노조법에 의해 곧바로 노조로 보지 않는 법률적 효과가 생긴다고 봤다. 법외노조 통보는 ‘노조 아님’ 효과가 발생한 상황에서 새롭게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닌 공표 행위였다는 것이다. 피고 측 김재학 변호사는 “원고가 위법한 규약을 고쳐 법률을 준수하고 재차 설립신고를 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법적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외노조 통보의 효과는 잠정적이고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2010년 3월부터 3년 7개월 동안 3차례 규약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전교조가 규약을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지금까지 이르게 됐다고 했다.

두 번째 쟁점은 법외노조 통보를 할 사유가 있었냐는 것이다. 노동부 측은 노조가 실질적으로 자주성을 갖추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결격사유가 있으면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원고 측 설동근 변호사는 “노조 설립신고는 형식심사로 자주성을 심사하지 않고, 법외노조 통보를 할 땐 실질적 심사를 해야 한다는 건 법 규정에도 없고 일관적이지 않은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전교조 측은 설립 후 노조에 대한 심사는 엄격해야 한다고 봤다. 노동조합의 모든 요건은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결격사유도 이런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식적으로는 결격사유가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주체성·자주성 등을 갖췄다면 노조 지위를 부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원고 측 강영구 변호사는 “수천, 수만 명이 있는 노조에서 퇴직·사직·해고 등으로 조합원들의 근로관계가 종료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근로자 아닌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허용할 경우 지위를 박탈한다고 하면 상당수 노조가 법외노조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며 “국가가 자주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주성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전교조 조합원들이 5월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교조 조합원들이 5월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단하지 않은 사건
전교조 측은 “0.015%의 자격 없는 조합원이 있다는 이유로 나머지 99.985% 조합원의 단결권을 박탈한 것”이라며 노동부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전에도 해직 교원이 조합원이었지만 10년 넘게 합법노조로 활동했다는 점 등을 비춰봤을 때 법외노조 통보는 노동부의 재량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봤다.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둔 다른 노조들은 문제삼지 않고 오로지 전교조에만 법외노조를 통보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신인수 변호사는 “설립 후 노조의 기본권 제한은 필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기계적 권리 박탈보다는 과잉 금지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법외노조 통보는 반헌법적 노조파괴 국가공작의 일환”라고도 했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기획하고 전교조 비난 여론 형성을 위해 보수단체에 자금을 댄 사실을 언급했다. 이는 최근 국정원의 ‘노조 와해 공작’ 국고손실 재판기록을 통해 드러났다.

노동부 측은 법외노조 통보가 재량의 여지가 없는 ‘기속행위’라고 맞섰다. 법이 정한 행위를 따라야 했다는 것이다. 설동근 변호사는 “원고가 규약을 시정하고 다시 설립신고를 제출하면 3일 이내에 신고증을 교부받을 수 있다”라며 “원고의 시정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국정원 개입에 대해서는 “노동부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이 문제는 법원 판단까지 구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정부가 직권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취소하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 전교조 법외노조에 대해 “집권하면 우선적으로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집권 3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법 개정만을 해결책으로 내놨다. 지난해 해직 교원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교원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해놓고 한편에선 법외노조 통보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대법관들도 공개변론에서 정부의 문제해결 방식에 의문을 표했다. 노동부 측은 “입법을 통해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게 옳은 방향일 것”이라고 했다.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 변론을 하였습니다. 그만큼 이 사건 쟁점이 간단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은 오늘 변론에서 심리된 내용과 그동안 제출된 자료들을 모두 참작하여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폐정 선언으로 변론은 끝났다. 보통 공개변론 후 3~6개월 안에 선고가 나오는 만큼 이 문제는 올해 안에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정권 교체 3년 지났는데도 여전히 안타깝고 분노”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1989년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55)은 울산의 고교 새내기 교사였다. 교편을 잡은 지 4개월 만인 그해 7월 해직됐다. 1994년 복직 때까지 5년간 교단을 떠나 있었다.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1987년 군 훈련소에서 6월항쟁을 겪었다. 시내에서 넘어오는 최루탄 가스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도 개인 의지대로 안 될 수 있겠다”는 걸 깨닫게 했다. 1986년 1월 한 중학생의 죽음도 기억한다. 우등생이던 학생은 1등만 강요하는 부모를 원망하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이 사건은 1989년 전교조 결성 배경인 ‘참교육 운동’의 모태가 됐다.

“무수의 교사들이 정말 가슴 아파했거든요. 시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교사들이 단체를 만들고 학교를 바꾸려 했던 거죠. 하지만 지난 7년은 발목의 족쇄를 풀기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학교를 바꾸는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 제일 큰 피해입니다.”

2013년 10월 해직자 9명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로부터 ‘노조 아님’ 통보를 받은 지 7년. 전교조는 통보 직후 법원에 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5월 19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만난 권 위원장은 “정권이 교체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미완의 과제라는 게 안타깝고 분노스럽다”며 “대법원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고법원이라고 스스로 자랑하듯 그에 부합하는 판단을 내려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는 2016년 울산지부장으로 법외노조화에 저항하다 두 번째로 해직됐다.

최근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를 기획하고 보수단체를 적극 활용하며 자금을 댄 사실이 상세히 드러났다. 양승태 대법원은 법외노조 사건을 놓고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권 위원장은 “어떻게 국가기관이 하나의 노동조합을 해산하기 위해 공작을 펼칠 수 있나. 그 정도로 민주적 가치에 무지한 사람들이 대통령이었고,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에 절망감이 든다”고 했다.

전교조 등장 이후 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던 체벌과 촌지가 사라졌다. 땡볕 운동장 애국조회 같은 낡은 관행도 없앴다. 교사·학생·학부모라는 ‘교육 3주체’ 개념을 세우고 국가와 교육행정기관이 쥐고 있던 권한을 확장했다. 무상교육·무상급식 확대를 추진했다. 혁신교육 실험은 교육정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30년 전 전교조의 상상력이 현실이 됐죠. 그런 자부심으로 법외노조 투쟁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교육’ 이미지는 옅어졌다. 조직 몸집이 커지고 극우보수 세력의 색깔론 공세가 잇따르면서 시민의 지지를 잃어갔다. 법외노조 투쟁에 주력한 채 교육 현안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권 위원장은 “그간 교육의 3주체인 학부모·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그들의 공감 위에서 활동하려는 자세가 부족했다”고 봤다. 지지 회복과 젊은 교사들의 참여 등이 과제로 남았다. 7개월가량 남은 임기에는 법외노조 문제 해결과 함께 교원노조법 개정, 교육권 보호를 위한 입법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교육체제도 고민하고 있다.

“지난 30년이 ‘교육의 민주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미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 ‘삶을 위한 교육’을 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노력을 지속한다면 전교조가 새롭게 다가가는 노동조합으로 변모할 수 있지 않을까요.”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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