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 훼손 대신 사과한 목사 교수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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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은 3년이 넘게 비어 있다. 법원에서 ‘교수직 파면이 무효’라는 판결을 받은 지 7개월이 지났지만 대학 측은 묵묵부답이다. 당사자인 손원영 서울기독대 교수(54)는 자신을 ‘이단’으로 지목하고 복직을 반대한다며 현수막을 내건 대학 정문까지 갔다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 여러 차례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한 개신교인이 종교 간의 평화를 깨뜨린 배타적인 행위에 대해 목사이자 신학 교수로서 대신 사과하고 모금을 벌이겠다고 나섰을 때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서울 은평구 서울기독대 정문에 손원영 교수의 복직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김태훈 기자

서울 은평구 서울기독대 정문에 손원영 교수의 복직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김태훈 기자

발단은 2016년 1월 한 60대 개신교인이 경북 김천의 불교 사찰인 개운사에 난입해 불상과 법구 등을 훼손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남성은 경찰에 붙잡힌 뒤 “길을 지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계시에 따라 이같이 행동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찰에 들어가기 전에는 인근의 천주교 성당에도 들어가 성모상을 훼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의 뜻을 담은 글을 올리고 법당 복구를 위한 온라인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런데 손 교수가 몸담고 있던 서울기독대의 설립 주체인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에서 대학 측에 공문을 보내 손 교수의 신앙을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손 교수는 2016년 12월 대학 징계위에 회부됐고, 이듬해인 2017년 2월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의 신앙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은 언행과 약속한 사항에 대한 불이행 등 성실성 위반’을 이유로 파면되기에 이르렀다.

법정서 승소해도 대학 측은 묵묵부답

조용히 사직하는 대신 파면 처분에 맞서 법정 소송에 들어간 손 교수는 2018년 8월 1심과 지난해 10월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대학 측이 상고를 포기해 원심이 확정됐고, 결국 올해 4월 교원 재임용 여부를 결정하는 서울기독대 이사회에서도 손 교수의 복직을 가결해 손 교수는 강단에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서울기독대의 학교법인인 환원학원의 2020년도 제7차 이사회 회의록에서도 신조광 이사장은 “이사회가 최종의결기관이기 때문에 임용이 가결된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손 교수는 여전히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사회에서는 결정이 났는데 대학본부 측에서는 가타부타 아무런 조치도, 언급도 없다”며 “출근하려고 해도 길을 막으며 실력행사로 복직을 철회시키겠다는 교내 일부 구성원들이 있어서 당당히 들어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서울기독대 정문에는 실제로 교목실 명의의 복직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는가 하면 교내·외 보수 개신교 단체가 나서서 복직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게다가 손 교수로서는 당장 연구실로 출근을 강행하더라도 배정된 수업이나 보직에 따른 교무행정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손 교수가 법원으로부터 파면이 무효라는 최종 판결을 받은 지난해 10월 사태의 근원이었던 김천 개운사는 3년 만에 훼손된 법당을 복구하는 점안법회를 열었다.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새로 봉안한 이 법회에는 훼손사건 당시 함께 피해를 입었던 김천 황금성당의 성직자들과 손 교수가 함께 참석해 종교 간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개운사 주지 일균 스님은 “다종교 사회에서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해 줄 때 좀 더 조화롭고 아름다운 행복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개운사 훼불사건에서 시작해 손 교수의 파면과 복직 저지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는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보다 진전된 종교 간 평화와 상호존중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환기시켰다. 손 교수 파면 직후 만들어진 ‘불법파면시민대책위원회’가 최근 이 사태를 종교평화운동 역사의 차원에서 조명한 백서 성격의 책 <연꽃 십자가>를 펴낸 것도 이러한 취지에서다. 시민대책위 상임대표를 맡은 박경양 전 동덕여대 이사장은 “책을 출판한 이유는 특히 이웃종교에 배타적이고 종교 갈등을 조장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며 “불교의 언어를 통해 가급적 기독교를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고자 한 손 교수의 설교도 실었다”고 밝혔다.

보수 개신교 단체, 복직 반대 시위

석가탄신일에 성당에서 축하 현수막을 내걸고, 반대로 성탄절이나 부활절에 사찰에서 기념 설법을 행하는 불교와 천주교의 분위기와는 달리 국내의 개신교에서는 이웃종교의 가르침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 아닌 금기’처럼 되고 말았다. 종교 간의 대화와 평화를 주장하기에 앞서 천주교와 정교회 그리고 수많은 교파로 나뉜 개신교 등 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화합을 시도하는 ‘에큐메니컬 운동’도 숱한 반대에 부딪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개신교계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백안시하는 보수적 교단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손 교수의 복직에 반대하고 나선 보수 개신교 단체들이 ‘이단성’을 들먹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2018년 12월 서울 열린선원에서 성탄절을 축하하고 종교화합을 지향하는 뜻으로 개최한 법회에 손 교수가 참석해서 한 설교가 또 다른 빌미가 됐다. ‘예수님은 육바라밀을 실천한 보살이었다’는 주제로 두 종교의 가르침이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교한 대목을 두고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가 이단성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보수성향 개신교 단체 한국교회수호결사대도 서울기독대 정문 앞에서 손 교수의 설교가 “한국교회 전체에 위협이 되는 ‘배도(背道) 사건’”이라며 복직 반대 운동에 나선 것이다.

개신교 내부에서 타 종교와의 대화와 화합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력은 짧지 않다. 대형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가 1992년 당시 교단 신학교인 감리교신학대학 학장을 지낸 신학자 변선환 교수에 대해 가장 높은 등급의 징계인 ‘출교’ 처분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 개신교회의 토착화를 주창하며 불교 등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의미를 부각한 변 교수의 연구를 두고 교단 내 대형교회를 위시한 ‘부흥사’ 목사들이 이단이라고 비판하면서 촉발된 논쟁의 결과였다. 국내는 물론 세계 그리스도교 신학계에서 주목받던 신학자가 한순간에 교단에서 축출되자 ‘현대판 종교재판’이라는 교계 안팎의 비판이 들끓었다.

손 교수 파면 사태는 법정 분쟁이 마무리됐지만 실질적 해결까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서울기독대 이사회에서 결의한 손 교수의 임용기간이 2027년까지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보수성향의 한 개신교 교단 관계자는 “교단 신학교는 학문의 자유보다는 신앙 정체성을 더 무겁게 보는 곳이기 때문에 손 교수가 떳떳한 입장과는 별개로 당장 학교와 교단 모두로부터 더 오랜 핍박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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