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비대면 경제생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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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6일 마흔두 살 택배노동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숨진 택배노동자는 5월 4일 자택에서 의식을 잃었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사인은 심정지로 인한 돌연사입니다. 유족들은 그가 과로에 시달리다 숨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배송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그는 쉼 없이 일했다고 합니다. 3월 1만1330개, 4월에는 1만288개를 물량을 배송했습니다. 물량을 맞추기 위해 새벽 6시에 출근해서 밤 9시까지 꼬박 15시간을 일했습니다.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탈이 났습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택배기사는 코로나19가 앞당긴 언택트(비대면) 시대 최전선에 서 있는 노동자입니다. 감염 우려가 없는 언택트 소비는 트렌드가 됐고, 쇼핑시장의 주도권은 온라인이 쥐게 됐습니다. 택배기사의 노동강도가 높아질수록 온라인 쇼핑몰과 택배·물류회사의 매출은 올라갑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배송시스템 속에 배송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는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국토교통부는 택배기사 충원과 적정 근무체계 마련과 같은 권고안을 내놨는데, 노동 현장으로 파고들지 못했습니다.

반면 언택트 호황 덕분에 택배·물류회사는 직접 물류창고를 건설하거나 투자해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투자금이 물류창고로 몰립니다. 경기 이천 등 수도권에는 물류창고 건설 붐이 일고 있습니다. 부동산 자본은 시장에 더 빨리, 더 많은 물류창고를 지을 것을 요구합니다. 물류창고를 짓는 건설노동자들은 단축된 공기(工期)를 맞추기 위해 강도 높은 노동을 합니다. 건설현장에 설치된 안전 설비는 미흡하고 허술합니다. 위험한 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쉽게 목숨을 잃습니다.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참사도 같은 이유로 벌어졌습니다. 언택트를 통해 자본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반면 노동자는 많은 것을 잃고 있습니다.

언택트는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기도 합니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기업들은 대형마트와 같은 오프라인 매장을 서둘러 철수하고 있습니다. 폐점 과정에서 직원들은 해고 아닌 해고를 당합니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단순 노동부터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언택트 물결에 떠밀리지 않은 노동자들은 ‘과로’라는 밧줄을 쥐고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비대면 경제로의 전환은 이전보다 더 심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불러올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비대면 경제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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