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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의료’ 의료계 반발 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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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뉴딜 놓고 정부와 의견차…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부터”

정부는 5월 7일 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회의에서 ‘한국판 뉴딜’의 추진 방향을 확정했다. 디지털 인프라 구축, 사회 기반시설의 디지털화와 함께 비대면 산업 육성을 핵심 프로젝트로 꼽았다.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 화상연계 건강 방문관리 시범사업 확대 등 의료 분야와 관련해 정부는 줄곧 ‘원격의료’라는 말 대신 ‘비대면 의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2차 중대본 회의 결과를 설명하면서도 비대면 서비스는 원격의료 제도화가 아니라 “이미 하던 의료 취약지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과 상담 중심으로 시범사업 대상을 한시적으로 조금 확대하고 인프라를 보강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대병원 의료진(오른쪽)이 4월 26일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KT 관계자들과 함께 ‘가상현실(VR) 원격 재활훈련 솔루션’ 공동 개발을 논의하고 있다. / KT 제공

부산대병원 의료진(오른쪽)이 4월 26일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KT 관계자들과 함께 ‘가상현실(VR) 원격 재활훈련 솔루션’ 공동 개발을 논의하고 있다. / KT 제공

하지만 보건의료계는 이런 움직임을 사실상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고 있다. “의료계의 반발이 심하니 원격의료라는 단어를 빼고 비슷한 단어(비대면 의료)를 넣은 것에 불과하다”(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의사)는 것이다. 보건의료계는 코로나19로 한시적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은 있지만, 이것이 원격의료 장비나 의료 정보기업들의 이권을 위해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구실이 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19 틈탄 원격의료 전면 도입 반대”

정부는 지난 2월 24일부터 대면진료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국민과 의료진의 감염을 막기 위해 환자가 의사의 전화 상담을 받아 약을 처방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한시적으로 전화진료를 허용한 것인데 원격의료는 이보다 넓은 의미다. 원격의료는 전화·화상진료와 타 기관의 진료기록·영상을 전송받아 진단하는 원격진료에 더해, 환자 개인 의료 기기에서 측정한 건강정보를 이용한 원격 모니터링까지 포함한다.

전문가들이 볼 때 이런 넓은 의미의 원격의료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 것은 전화 상담뿐이다. 정형준 부위원장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집에 몇천만원짜리 장비를 들여와도 대면진료의 보완적 수준밖에 안 된다”며 “화상진료를 마치 대단한 혁신처럼 포장하는 것은 경제 관료들이 얼마나 현장 전문가인 의사들의 의견을 무시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보건의료계가 원격의료에 반대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원격진료 시 진단 오류 가능성이 높고, 원격의료 장비의 정확성과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 의료기관 접근성이 뛰어난 국내 특성상 원격의료를 전면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거론된다. 또 원격 의료장비 구입이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할 수 있는데다 동네 의원이 아닌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의료 정보 유출 가능성도 우려된다.

변혜진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은 “당뇨나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를 대면진료하면서 규칙적으로 약을 먹는지 전화로 확인하는 방식이면 기존보다 훨씬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원격으로 환자 증상을 보고 진단하는 것은 의사가 눈으로 문진해서 얻는 정보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에서 ‘최소 진료’나 진단의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의 홍보이사도 “원양어선이나 격오지, 군부대 등에서 환자가 발생하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원격진료에는 협회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현장 의사들은 일반적인 경우에도 화상진료가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의 경우 의료기관 접근성이 좋고, 방문진료(왕진)도 수가만 현실화하면 얼마든지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료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한국판 뉴딜의 하나로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들고나온 것 자체가 뉴딜의 정의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기술을 활용한 효율화 기술이 인력을 줄이면 줄였지 고용창출에 기여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형준 부위원장은 “만성질환자나 이동이 불편한 이들은 전화처방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면서 “이들이 진료를 받도록 도와줄 돌봄노동자를 확충하는 방식으로 사회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뉴딜의 의미에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격의료를 위한 시범사업 역시 지난 10년간 전화 상담 외엔 어떤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꾸 산업체의 요구대로 시범사업을 하면서 연구개발비만 눈먼 돈처럼 쓰고 있다”며 “원격의료 담론은 재난을 틈타 산업체의 숙원을 해결하려는 ‘재난 자본주의’”라고 지적했다.

의료 뉴딜은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이어야

보건의료계는 코로나바이러스 2차 대유행을 막으려면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공립 감염병전문병원을 설립하고 2013년 폐업한 진주의료원을 재개원하는 등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보건의료인들 5월 7일 긴급토론회를 열고 “정부가 생활방역이라는 이름으로 방역 완화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의료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계획과 준비 상황은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팬데믹 2차 유행과 확산을 대비해 공공병상 확충, 중환자 병상 확보, 의료인력 충원, 의료장비 및 개인보호장구(PPE)의 공적 생산과 공급을 시급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017년 기준 병상 수가 인구 1000명당 12.3개로 일본(13.1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하지만 정작 공공병상은 부족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을 때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대기하다 숨진 사례가 여럿 발생했다.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는 2.3명(한의사 포함)으로 OECD(평균 3.4명)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속한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시골에 있는 노령층이 원격 의료장비를 조작하는 법을 배우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공공의료 인력을 확충해 방문진료 등으로 접근성을 높여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 위원장은 한국판 의료 뉴딜은 의료인력 확충, 공공의대 설립 등 공공성을 강화하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우리가 방역 모범국가라고 하지만 공공의료 인프라와 인력이 부족했다는 허술한 점도 많이 드러났다”면서 “유럽과 미국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금융위기를 이유로 보건의료 예산을 줄이고, 의료민영화를 확대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협회는 원격의료에는 반대했지만 ‘의료 뉴딜’의 방향에 대해선 시각차를 보였다. 김대하 이사는 “코로나19 사태로 환자 내원 수가 급감해서 중소병원이나 일반 의원급 의료기관은 매출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면서 “공공의료 인력 확충보다 기존 기관이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지원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정부가 건강보험 선지급 제도를 확대 시행하고, 4000억원 규모의 융자지원 사업도 벌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출금 성격에 그치는 한계가 있고, 지원금도 실제 기관당 신청 액수의 3분의 1밖에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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