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현 정부 임기 내 성과 분야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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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뉴딜’ 뜯어보니… 기후변화나 노동·복지구조 등 장기 과제는 빠져

“‘뉴딜’이란 이름에 방점을 찍었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2~3년간의 경기부양책임을 고려하면 바람직하다.”

5월 7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의 추진 방향은 이렇게 평가할 수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 5월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 5월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판 뉴딜’은 혁신성장정책의 연장으로, 디지털 경제에 무게를 실은 산업 및 일자리 정책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창조경제’, 현 정부에서는 ‘혁신성장’의 이름으로 추진했지만 각계 이해관계와 부작용 우려에 막혀 지지부진했던 신산업 육성 정책을 ‘코로나19’ 확산과 방역 과정에서 생겨난 공감대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를 벗어나는 미래까지 포괄한 기후변화, 노동·분배 체계에 관한 논의는 포함되지 않았다.

교통 등 공공부문 데이터 플랫폼 구축

정부는 ‘한국판 뉴딜’의 3대 과제로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를 내세웠다. 앞으로 일자리는 데이터를 활용·가공하는 산업에서 보고 관련한 기반시설과 인력 양성 방안을 향후 2~3년 안에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디지털 산업’이라는 주력산업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디지털 인프라 구축은 데이터의 수집과 거래를 활성화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내용이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으로 제도적 기틀은 마련됐다. 정부는 이번 추진계획에서 금융·의료·교통·공공·산업·소상공인을 데이터 활용 활성화에 방점을 둘 6대 분야로 선정했다. ‘마이 데이터 서비스’를 통해 개인의 건강·신용·소비 이력을 관리하고, 기업들이 이를 거래해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각 부처에서 앞으로 2주간 규제 및 제도 마련에 나선다.

교통 등은 공공부문에서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한다. 제조공정을 디지털화하는 스마트팩토리 사업이나, 차세대 기간산업으로서 5세대 이동통신(5G)망 구축에 대한 투자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비대면 산업은 ‘코로나 모멘텀’을 맞아 진입장벽을 허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화상통신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보건소 등의 원격진료, 의료기관의 방문 건강관리 서비스, 인공지능(AI) 원격교육 플랫폼, 블록체인을 활용한 사이버 보안 등을 비대면 산업의 예로 들었다.

노후 도로와 철도를 전산으로 관리하고 첨단 물류센터를 확충하는 SOC 디지털화는 공공부문에서 중점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도로에서의 데이터 인프라 구축은 향후 자율주행차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

기존 혁신성장 정책에서 추진해오던 것들이 이번 ‘한국판 뉴딜’에 담긴 내용의 바탕이 됐다. 8대 선도사업, 12대 선도사업 등 다소 중구난방으로 추진되던 혁신성장의 분야가 데이터와 디지털로 정리됐다는 점이 차이다. 디지털 관련 학과 위주로 대학 구조조정도 뒤따를 전망이다.

[표지 이야기]현 정부 임기 내 성과 분야에 집중

기존 주력산업에서의 고용창출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2분기 이후 코로나19의 영향이 세계경제에 본격적으로 반영돼 경기침체가 올 것이란 예측이 정부가 이번 정책을 마련한 배경이다. 자동차 등 무게감이 있는 제조업은 2010년대 중반부터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대표적인 고용감소 분야가 됐다. 반도체는 세계 경기변동에 밀접한 영향을 받아 한국경제의 변동성을 크게 하는 원인이 됐다. 항공 등 기간산업과 내수경제를 지탱해온 관광산업은 코로나19로 쑥대밭이 됐다.

반면 ‘뉴딜’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기후변화나 노동·복지구조의 개편 등 장기적 개혁 프로그램은 담겨 있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2~3년 현 정부 임기 내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됐다. 기후 분야는 탈원전 논란에 휘말리는 것과 이명박 정부 시절의 ‘녹색성장’과 유사하다는 점을 피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분야에서의 밑그림이 내년도 경제정책에 추가되려면 정치권의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뉴딜 성과 대기업 집중 우려도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는 “디지털 산업의 전환은 궁극적으로 탈고용이 목표지만 전환과정에서는 단기적으로는 고용이 크게 늘어난다. 데이터 입력 등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는 단순노동이 매우 큰 규모로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해 임시일용직과 청년층 고용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바꿔서 말하면 사람 없는 경제, 탈고용 경제는 이번 정책으로 앞당겨진다.

추진 과정에서 사회적 논쟁은 피할 수 없다. 데이터 3법과 마찬가지로 민감한 정보의 거래 허용범위, 가명 정보화의 부작용 방지를 위한 세밀한 대응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공공기관이 실적을 위해 데이터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면 뱅크샐러드 등 기존의 데이터 산업을 해오던 민간 분야가 위축되거나 효율성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산업계 디지털화 완성 단계에서의 고용, 산업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한국판 뉴딜’의 성과가 기존 대기업에 돌아가 경제력 집중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5G망 사업은 SK와 LG유플러스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삼성도 원격의료의 수혜주로 꼽힌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코로나 이후에도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의 시장지배력이 커지는 현상이 일어났고, 디지털 뉴딜에서도 유념해야 한다”며 “중소기업 지원을 명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부는 5월 11일부터 한국판 뉴딜 사업의 세부 계획을 다듬는 작업에 돌입해 일부 내용은 6월 초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한국판 뉴딜의 전체적인 청사진은 오는 8월 2021년 예산안 제출 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올해 가능한 사업은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담길 전망이다. 3차 추경은 약 25조원 이상 규모로 예상된다. 고용대책·기간산업 등에 들어가는 18조원가량의 추경을 제외한 6조~7조원 수준이 디지털 뉴딜 예산으로 잡힐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 미세먼지 추경 예산과 비슷한 액수다.

<박은하 경제부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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