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이들은 어떻게 차별받고 처벌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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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한 역사는 길다. 1975년 만들어진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일정한 주거 없이 사회질서를 해치는 모든 사람을 ‘부랑인’으로 규정했다. 경찰업무지침(내무부 훈령 815호)도 돈을 구걸하는 부랑인, 주거부정(住居不定)인 자를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500명 넘게 숨진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내무부 훈령에서 촉발됐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로비./이상훈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로비./이상훈 기자

<주간경향>과 한국도시연구소는 주거가 일정치 않고 형사처벌을 받은 1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주거부정을 동반한 가난은 여전히 사법체계에서 불리하게 작동했다. 수감과 출소, 노역을 반복하면서 주거와 생활여건은 점점 나빠졌다. 돌아갈 집이나 가족, 직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거부정→처벌 악순환의 반복

응답자 15명의 현재 주거지는 쪽방(3명), 노숙인 시설(4명), 고시원(3명), 거리(3명), 매입임대주택(1명), 여인숙(1명)으로 나뉘었다. 매입임대주택을 제외하면 모두 ‘임시 거처’다. 이들 대부분은 과거에 공장·신문보급소·주유소·중국집 등 일터의 일부 공간을 전전하며 살았다.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응답자 3명 중 2명은 신용불량이었고, 협심증·허리디스크·급성위궤양을 앓는 등 건강이 좋지 않다고 답한 이들(12명)도 많았다.

응답자 15명이 범죄에 이른 경로는 유사하다. 일하다 몸을 다쳐 경제상황이 급격히 악화돼 거처를 잃거나 어린 시절 가정이 불우해 집을 나와 거리를 전전했다. 국가가 사회안전망으로 개개인의 삶을 뒷받침해준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응답자들이 모두 생계형 범죄만으로 처벌받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국가가 최소한의 주거만 제공했다면 이들이 범죄를 반복해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ㄱ씨(59)는 서울에서 방 두 칸짜리 지하 전세방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1990년대 초반 모두 돌아가셨다. 세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지체장애로 서서 하는 일은 할 수 없다. 구두 만드는 기술을 익혀 생계를 이어갔다.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지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거처와 일자리가 동시에 사라진 셈이다. 이후 노숙을 하며 지냈다. 2008년 처음 절도를 저질렀다. 80만원을 훔쳤는데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생계형 절도를 두 차례 더 저질렀다”고 했다.

수십억원을 횡령해도 집행유예로 옥살이를 피하는 재벌총수들과 비교하면 ‘엄벌’이었다. 법원행정처 통계를 보면 2018년 특정범죄가중법상 상습 강도·절도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1587명 중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1명이었다. 특정범죄가중법상 절도죄 양형 하한선(징역 2년)이 유독 가혹하다는 지적은 이미 꾸준히 나왔다.

주거부정이 직접 형사처벌로 이어진 사례도 발견됐다. ㄴ씨(32)는 어릴 적부터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성인이 되어서도 생활 패턴은 달라지지 않았다. 스물여섯 살 때 집에서 나와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먹고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물류센터·공장일·단순 포장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부산에서 자란 ㄴ씨는 대구·대전을 거쳐 경기 수원까지 일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ㄴ씨는 “손이 느려 일을 썩 잘하진 못하고 옮겨 다녔다”고 했다.

ㄴ씨는 2015년부터 네 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혐의는 모두 예비군법 위반이다. 주소지가 없어 예비군 훈련 참석 통지서를 받지 못했다. ㄴ씨는 부과된 벌금형을 모두 노역으로 대신했다. 현재 ㄴ씨는 PC방·여관 등을 옮겨다니며 거주한다.

법원이나 수사기관에서 ‘주거부정’으로 판단하는 대표적인 거처인 고시원(아래)과 만화방 / 한국도시연구소 제공

법원이나 수사기관에서 ‘주거부정’으로 판단하는 대표적인 거처인 고시원(아래)과 만화방 / 한국도시연구소 제공

군복무를 마친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장애가 다리에 생겨 생계가 막막해진 40대 남성도 있었다. ㄷ씨(43)는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텔레마케터로 일하면서 원룸 전세에 살았다. 다리가 불편해 할 수 있는 일에 제약이 생겼다. 국가가 부과한 병역 의무를 하면서 다쳤지만 국가의 보상은 없었다.

재계약 시기에 고정 수입이 없어 월세방으로 옮겼다. 월세도 감당할 수 없어져 고시원·쪽방으로 이동했다. 생계비를 마련하려고 대포통장 개설에 참여했다가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ㄷ씨는 벌금 납부를 사회봉사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받지 못했다. 현행법상 벌금 500만원 선고를 받으면 검사의 납부명령일에서 30일 이내에 사회봉사로 대체 신청이 가능하다. 경찰은 그를 잡아가려 수차례 ㄷ씨가 묵고 있을 만한 곳을 탐문했다. 그는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경찰들이 시설에 수시로 찾아와 주변인들에게 내 동향을 물었다. 자수하고 노역을 살았다”고 했다.

기계적 형사처벌을 넘어

일정한 거처가 없는 이들이 겪는 차가운 현실만큼 사법제도도 차별적으로 작동한다.

형사소송법 제200조2와 제214조를 보면 5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과료에 해당하는 경미한 사건은 현행범 체포나 체포영장 발부가 불가능하다. 노상방뇨 등 경범죄 사건이 해당한다. 경미한 사건이라도 주거가 일정치 않은 현행범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수사기관은 체포영장도 발부받을 수 있다.

구속영장이나 보석제도도 주거가 없는 이들에게 가혹하긴 마찬가지다. 50만원 이하 벌금·구류·과료에 해당하는 사건 피의자는 구속될 수 없다. 다만 주거부정인 피의자는 경미한 사건에서도 예외적으로 기소 전 구속이 가능하다. 형사소송법 제95조는 보석 허가 요건에서 주거부정인 자는 제외한다.

경범죄처벌법에도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이들을 차별하는 조항이 담겨 있다. 범칙금 통고를 받은 이가 일정 기간에 범칙금을 납부하면 범죄 행위에 공소 제기가 이뤄지지 않는다.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면 범칙금 납부를 하지 않으면 벌금·과료 등 형사처벌 절차가 진행된다. 경범죄처벌법상 경찰은 주거가 없는 이들에게 범칙금 통고를 하지 않고 즉결심판을 청구하게 돼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주거부정인 사람은 범칙금 납부로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는 절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며 “법률로 주거빈곤을 형벌화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국가가 복지시스템을 마련해 주거부정과 범죄 사이의 연결고리를 직접 끊어야 한다는 의견은 꾸준히 나온다. 판사 출신인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은 “복지를 강화해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에 발생한 생계형 범죄를 줄이면 잠재적 범죄 피해자인 다수의 시민 입장에서도 이익”이라고 했다.

‘문제해결형 법원’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법원이 형벌 부과에서 나아가 복지시스템과 연계한 시스템을 고안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이 빈곤층이나 홈리스의 삶 재건을 위한 방안을 형벌 제도 속에 결합하는 방향으로 적극 구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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