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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정반대에 고달픈 ‘닭장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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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시대 더 바쁜 콜센터·물류센터 등 밀집도 높아 감염에 취약

‘언택트’ 노동의 정반대에 ‘닭장노동’이 있다. ‘거리 두기’가 강화될수록 닭장노동도 강화되는 역설이 벌어진다. 밀려드는 상담과 주문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7일, 서울의 한 콜센터를 찾았다. 400명 가까운 인원이 근무하는 곳이다. 센터에 들어서자 열기가 느껴졌다. 그날 기온은 17도, 센터 안의 온도계는 2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앉아서 하는 일이라 해도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부대끼며 일을 하니 열기는 당연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참여한 논문 ‘한국 콜센터에서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병’에 소개된 콜센터 건물 11층의 좌석 배치도. 파란색으로 표시된 좌석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직원이 근무했던 곳이다. / 미국질병센터 학술지 홈페이지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참여한 논문 ‘한국 콜센터에서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병’에 소개된 콜센터 건물 11층의 좌석 배치도. 파란색으로 표시된 좌석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직원이 근무했던 곳이다. / 미국질병센터 학술지 홈페이지

한 사람의 업무공간은 가로×세로 110㎝ 정도였다. 정부는 옆 사람과 2m의 거리를 유지하라고 권장하지만 콜센터에서 옆 사람과 유지할 수 있는 거리는 50㎝가 고작이다. 해당 콜센터가 유독 열악한 걸까. 이에 대해 여러 콜센터를 경험한 한 노동자는 “전국 어느 콜센터를 가도 환경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나자 고용노동부는 예방지침을 내놨다. ▲마스크 지급 ▲책상 위치 조정이나 가림막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밀집도 개선 ▲집단감염 예방 위한 근무형태 변경 또는 연차휴가 지급 ▲업무 공간의 주기적인 환기·소독 등이다.

옆 사람과 간격 거리는 고작 50㎝

이중 현장에서 지켜지는 건 가림막 정도로 보였다. 책상 간격을 조정할 수 없으니 가림막으로 앞, 옆 사람과의 접촉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한 노동자는 “안 그래도 공기순환이 안 되는데 가림막까지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A3용지 두 장 크기의 창문은 죄다 닫혀 있었다. 다만 한쪽에서 공기청정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말을 하는 일이라 마스크가 더욱 필요한데, 말을 하는 일이다 보니 마스크를 못 쓴다. 마스크를 쓰고 계속 말하다 보면 두통·어지럼증·호흡곤란 등이 발생한다. 고객의 불만도 만만찮다. 발음이 제대로 안 들린다는 것이다. 불만이 접수되면 실적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 현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상담을 진행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일부 콜센터에서는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기도 했다. 가령 이전에는 100명이 모두 9시에 출근했다면 지금은 50명이 9시, 나머지 50명은 10시에 출근하는 식이다. 하지만 심명숙 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 지부장은 “나머지 7시간은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과연 밀집도가 줄여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콜센터와 동시에 바빠진 곳이 물류센터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과 애플리케이션 주문은 아예 일상이 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단기 아르바이트를 포함한 취업자 수는 도매·소매업 16만8000명, 숙박·음식점업 10만9000명이 줄었지만 운수·창고업은 7만1000명이 늘었다.

4월 마지막 주말, 서울의 한 식품 물류센터에 끊임없이 사람이 드나들었다. 고객이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한 식품을 배달하기 위해서다. 해당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ㄱ씨는 “주문이 증가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늘었다”며 “환기는 안 되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고 모여서 하는 일이 아니라 크게 불안하지 않다”고 말했다.

원래 ㄱ씨는 쿠팡이나 CJ 대한통운과 같은 큰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그러다 코로나19 이후 식품 물류센터로 ‘갈아탔다.’ 출근길부터 불안했기 때문이다. 큰 물류센터는 대부분 도시 외곽에 있어 통근버스로 출퇴근한다. 그런 버스가 서울과 경기도에만 몇십 대, 이들이 한 교대조다. 한꺼번에 출퇴근하는 시스템이다.

대구에 거주하는 허모씨(30)도 ㄱ씨와 비슷한 불안감을 느꼈다. 허씨가 일했던 물류센터는 건물 10층 높이였다. 그만큼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 출퇴근 도장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몇백 명의 사람들을 보면 찝찝함부터 들었다. 게다가 물류센터는 단기 알바나 당일 알바 노동자도 적지 않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특히 불안했던 건 점심시간이었다. 출퇴근 시간에는 마스크라도 쓰고 있지만, 마스크를 쓰고 밥을 먹을 순 없다. 3월 초까지만 해도 해당 물류센터 식당에는 칸막이가 없었다.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수백 명인데 점심시간은 정해져 있다. 관리자는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밥을 빨리 먹고 나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진호 직장갑질119 활동가는 “바이러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밀집도”라며 “콜센터는 그래도 가림막이라도 설치할 수 있다. 물류센터는 사람이 많은데 또 움직임도 많은 곳이라 가림막은 의미가 없고 근무형태를 바꾸는 것 외에는 밀집도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물류센터는 이미 24시간 가동 중이다. 더 이상 교대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것이다. 오 활동가는 “이런 시기에 굳이 물류센터를 24시간 가동하면서 당일 배송을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물류가 조금 늦더라도 최대한 감염을 막을 수 있는 노동환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10~20명씩 함께 생활하는 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는 일하는 업종은 다양하지만 집단생활이 문제로 지적된다. 서비스직을 제외한 제조업·농업·어업 등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사용자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생활한다.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도 쉼터나 원룸에 모여 생활하는 경우가 흔하다. 물리적 거리 두기가 안 되는 환경이다. 실제 싱가포르에서는 이주노동자 기숙사 집단감염이 문제로 떠올랐다.

산업인력공단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출신의 자나카는 “예전처럼 한 방에 5~10명이 지내는 경우는 많이 없다. 보통 2~3명이 한 방을 사용하고 한 숙소에서 10~20명 정도가 생활한다. 화장실이나 샤워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보통의 집에 비하면 여전히 적지 않은 인원이다. 게다가 주거환경도 열악하다. 아파트나 주민센터는 주민들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소독 작업을 벌이지만 이주노동자 숙소는 제외되기 일쑤다. ‘주민’으로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고 주민으로 잡혀 있더라도 소통이 쉽지 않다. 이 같은 주거환경은 감염의 위험을 높인다.

더 큰 문제는 이후에 불거졌다. 기숙사에서 집단감염 우려가 나오자 일부 사용자가 밀집도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닌 감금을 택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에 따르면 경기 여주에서 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ㄴ씨는 현재 2개월째 공장 숙소에 갇혀 있다. 회사는 나가면 해고하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이다. 천안에서 일하는 ㄷ씨 역시 한 달 반째 회사 숙소에서 못 나오고 있다.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인 노동자는 왔다 갔다 하는데 이주노동자만 회사와 기숙사에만 있으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큰 의미가 없다”며 “1차, 2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물리적 거리를 두면서 일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이주노동자는 생활까지 같이해야 하니 더 취약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시대, 일각에서는 재택근무가 바꿔놓을 환경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닭장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적어도 이런 노동환경에서 바이러스의 위험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오지 않는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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