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비상시국 살림살이 타격은 훨씬 크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외환위기·금융위기·카드대란 때 자살 급증… “국가에서 과감하게 돈 써야”

지난 4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예측하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에서는 최고의 성장률을 전망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방역 성과와 과감한 경기 대응 노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라며 각료진을 독려했다.

지난 3월 26일 오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코로나 경기침체로 인한 상가임대차 상생 호소 및 정부ㆍ지자체 임대료 조정 지원행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임대인들과 임차인들의 상생을 호소하며 큰절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3월 26일 오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코로나 경기침체로 인한 상가임대차 상생 호소 및 정부ㆍ지자체 임대료 조정 지원행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임대인들과 임차인들의 상생을 호소하며 큰절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문 대통령은 또 “방역의 성과를 경제로 연결지어 국민의 고통을 줄이고 위기 극복의 시간을 단축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13일에도 “메르스·사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비상 경제시국”이라며 “정부는 전례 없는 대책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고의(?) 마이너스 성장률’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비상한 경제시국에 어울리는, 전례 없이 강력한 대책이 강구되고 있는 것일까? 한국과 OECD 각국의 맥락에 따라 코로나발 경제난의 의미를 짚어본다.

대통령의 언급처럼 최근 IMF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OECD 중 가장 높게 예측했다. -1.2%의 역성장을 하겠지만 여타 국가가 더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기관별로 상이한데 대부분 역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일부 기관은 0%대의 저성장을 점치기도 한다.

여타 국가보다 성장률이 저조한 것보다는 높은 것이 훨씬 낫다. 하지만 한국에는 한국만의 맥락이 있다. 과거 역성장이나 저성장은 심대한 고통을 불러왔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성장률 감소폭이 낮아도 실제 살림살이의 타격은 훨씬 큰 것이 한국이다.

성장률은 선방, 삶은 더 곤궁

경제성장이 위축될 때 그 고난의 정도를 헤아리기 위해 자살률 지표를 참고할 수 있다. 지난 4월 17일에는 경영난에 처한 여행사 대표가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경제난으로 인한 자살자 1명의 배경에는 그에 못지않게 곤경에 처한 이들이 부지기수로 쌓여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기할 것은 경제난과 매우 밀접하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한국의 맥락이다. 과거의 패턴이 이번에도 반복된다면, OECD 중 가장 성장세가 좋을지라도 자살자가 기록적으로 늘게 된다.

한국의 10만 명당 자살률은 1990년 8.8명에서 2016년 24.6명으로 15.8명이 증가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증가폭이다. OECD의 1990년과 2017년을 전후한 최근 수치를 비교하면, 한국 다음으로 높은 자살 증가폭은 칠레의 3.7명이다. 2등과 한국의 차이가 매우 크다. 멕시코 2.0명, 미국 0.8명, 터키 0.6명, 그리스와 네덜란드가 0.5명으로 뒤를 잇는다. 이 7개국 외에는 자살률이 모두 감소했다.

한국의 압도적인 자살 증가는 몇 해에 걸친 기록적인 상승에 기인한다. 해당연도의 OECD 회원국을 기준으로 1년 사이의 자살 증가폭을 보았을 때 한국은 단연 앞서 있는 기록 보유국이다. 역대 2위와 4~6위를 한국이 차지한다. 1997~1998년 한국의 10만 명당 자살률은 6.1명이 늘어 2위다. 2002~2003년은 4위(5.4명), 2008~2009년은 5위(4.8명)였다. 2001~2002년에는 4.7명으로 6위다.

기록적으로 자살자가 늘었던 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성장률과 취업자 수, 신용불량자 수에서 특이점이 나타난다. 1998년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성장률이 -5.5%로 추락했던 때다. 2009년은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0.8%의 저성장에 머물렀다. 그런데 2009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0.8%는 OECD 4위로 아주 양호한 수준이었다. 다섯 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이너스 성장으로 뒷걸음질 쳤다.

한국은 세계경제가 역성장의 침체에 빠졌을 때, 성장률에서 선방하면서도 여타보다 훨씬 높은 자살률 증가를 경험했다. 대부분 OECD 국가가 한국보다 성장률이 훨씬 저조했지만 자살률의 변동은 상승이든 감소이든 미미했다.

[표지 이야기]비상시국 살림살이 타격은 훨씬 크다

코로나발 경제난에 직면해 한국의 경제성장은 비교적 나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마이너스 성장은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다. 침체의 골이 여타보다 깊지 않은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얕은 골이 파여도 훨씬 크게 넘어지고 아팠던 것이 바로 한국이다. 이 점에서 현재 정부와 정치권의 경제난 대처가 상황에 부응하고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02~2003년은 OECD 역대 4번째로 높은 자살 증가폭이 나왔던 때다. 신용카드 대란이 있었던 2003년의 성장률은 3.1%로 나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단, 그 당시로써는 국내적으로 눈에 띄게 낮은 성장률이었다. 2003년의 문제점은 취업자 수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일시휴직자 증가도 역대급

10만 명당 자살률의 증가폭이 6.1명으로 OECD 역대 2위였던 1997~1998년, 5.4명으로 4위였던 2002~2003년, 4.8명으로 5위였던 2008~2009년의 공통점은 전년 같은 달 대비 취업자 수가 수개월 이상 연속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그래프 1> 참고). 90년대 이후 이 같은 취업자 수 감소는 세 번이 있었고, 이때 예외 없이 기록적인 자살률 상승이 나타났다.

4월 17일 발표된 고용동향에 따르면, 3월 취업자 수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9만5000명이 감소했다. 2003년의 최대 감소폭보다 높고 2009년의 그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한동안 경제 여건은 침체를 면키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 코로나 경제난의 심상찮음은 다른 고용지표에서도 드러난다. 1999년부터 통계가 있는 계절조정 취업자 수의 증감을 보면 2020년 3월의 경우 전달에 대비해 68만 명이 감소했다(<그래프 2> 참고). 유례없이 큰 감소폭이다.

잠재적 실업자인 일시휴직자의 증가도 역대급 수치를 찍고 있다(<그래프 3> 참고). 지난 3월의 일시휴직자는 161만 명으로, 전년 같은 달에 비해 무려 126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들이 아직 취업자로 잡히고 있음을 고려하면, 코로나발 고용 쇼크는 앞으로가 더욱 관건이다. 다같이 경제난을 겪더라도 나른 나라보다 혹독했던 시련을 이번에는 피할 수 있을까?

2001~2002년은 10만 명당 자살률이 4.7명 증가해 OECD 역대 6위에 올라 있다. 2002년은 성장률이 좋았고 고용지표도 표면적으로는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2002년은 카드사태가 본격적으로 발화하던 시기였다. 2000년 말 80만 명이던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가 2002년 말에는 149만 명으로 급증했다. 당분간 저소득층과 자영업자의 원리금 부담 해소 조치가 시급함을 말해주는 지난날의 교훈이다.

문 대통령은 ‘전례 없는’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아니다. 국제적으로 ‘전례 있는’ 대책부터 써야 한다. 과감한 적자재정·정부부채 늘리기가 그것이다.

2008~2010년 사이 OECD 각국에서 성장률 침체가 나타난다. 이때 정부부채도 경쟁적으로 증가한다. 90년대 초반 이후로 가장 광범위하게 정부의 빚이 늘어났던 시기다. ‘표’에 잘 나오듯 경제난 시기에 정부의 빚이 대규모로 확대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경제성장 선행국가와 후행국가를 가리지 않고, 평소 정부부채 규모가 어떠한지도 가리지 않으며, 정체불명의 기축통화를 따지지도 않는다. 정부의 빚이 대폭 느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그간 정부부채가 억제돼 여타에 비해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정부부채 확대의 성과는 나라마다 다를 것이나, 경제난에 직면하여 부채 확대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은 어리석고 잔인한 편견이다.

[표지 이야기]비상시국 살림살이 타격은 훨씬 크다

만일 한국에서 GDP의 10%가량 200조원 안팎의 적자재정을 편성한다면, 이는 ‘전례 없는’ 대책이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시행하는 처방전이다. 필요하면 그보다 더 많은 빚도 정부가 내야 하는 시기다.

특히 한국처럼 복지 후진국이라면, 경제난 시기에 여타보다 훨씬 크게 고통받고 훨씬 높게 자살률이 상승하는 나라라면, 살림살이를 지탱해줄 정부의 지원이 보다 전폭적으로 단행돼야 한다. 정부의 빚을 늘리느냐 마느냐로 허송세월할 때가 아니다. 평소 복지가 허약하니만큼 더더욱 신속한 집행이 요구된다.

“전례 없이 돈을 풀어야”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국이 엄중하다는 말에 비해 실천이 미약하다. 독일의 경우 이미 4월 초에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코로나19 지원금(Soforthilfe)을 전격적으로 지급했다. 속도를 위해 복잡한 서류 절차는 생략했다. 신분증과 인적사항, 세금 번호를 온라인으로 입력한 신청자는 대부분 사흘 안에 지원금을 수령했다. 최대 3개월간 9000유로(약 1200만 원)가 지급된다. 파격적인 재정 적자를 선언한 독일 연방정부의 경기부양 대책이 상하원에서 단 이틀 만에 통과된 덕분이다. 여유 계층에 지급된 지원금은 추후 세금 부과 등을 통해 회수한다는 방침이다. 교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느림보 국가’ 독일에서 이처럼 빠른 행정 처리는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캐나다 정부와 의회도 신속한 일처리를 보여주었다. 3월 25일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지원 방안이 즉시 발효되었다. 4월 6일부터 접수가 시작된 긴급지원 프로그램(CERB)에 따라 최대 4개월간 매달 2000캐나다달러(약 170만원)가 지급된다. 작년 연소득 기준 5000캐나다달러 이상이 그 대상이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모든 신청자에게 선지급하고 추후 심사를 통해 돌려받는다는 방침이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성우제 <시사인> 편집위원은 ‘모든 게 느린 캐나다지만 재난 지원은 전광석화’라고 평가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28일 “대책에 시간을 끌수록 피해가 커지고 국민과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된다”고 우려했다. 3차 추경을 비롯하여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국회의 추경 통과 전에라도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향은 옳다. 문제는 속도와 지원 수준이다. 보수 언론과 야당의 집요한 재정 적자 반대를 뚫어낼 정부여당의 지혜를 기대한다.

<장제우 <장제우의 세금수업> 저자>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