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팬데믹 책임론’ 배상금 받을 수 있을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세계가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책임의 화살은 중국과 세계보건기구(WHO)로 향했다. 중국을 향해서는 사태 초기 불투명한 정보 공개로 코로나19를 확산시켰다는 비판이, WHO엔 친중 행보로 늦장 대응을 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팬데믹 이후 다수의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중국의 세계 영향력 확대를 예견하고 있지만, 일단 현재 상황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7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7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AP연합뉴스

트럼프, “중국에 책임 물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책임’을 묻는 대표적인 지도자다. 4월 27일(이하 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또 한 번 팬데믹의 원죄를 중국에 떠안겼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기 전에 중국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현재 중국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들(중국)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고까지 했다.

미국이 독일처럼 중국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독일보다 더 많은 배상금을 요구할 수 있다”며 “배상금의 최종 규모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상당한 액수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최근 독일 일간 <빌트>가 3~4월 독일 관광업계와 소상공인이 입은 피해 등 1490억 유로(약 197조원)를 중국에 청구해야 한다는 사설을 실은 것을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책임론을 제기한 건 이날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18일에도 “중국에서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고의적인 책임이 있다면 그에 따르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중국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도 중국이 바이러스 기원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요구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중국을 향해 바이러스의 기원을 밝힐 것을 압박한 바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2월 28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경을 벗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2월 28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경을 벗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유엔 산하 기구인 WHO의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편향성 등에 따른 WHO의 대응 실패 책임론을 들어 자금 지원 중단 방침을 전격 선언했을 때만 해도 WHO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존재했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WHO 지지 입장을 내놨고, 영국·프랑스도 “지금은 책임을 물을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열흘 새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호주가 먼저 움직임을 보였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4월 21일 “마크롱 대통령, 메르겔 총리와 통화해 WHO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히며 미국이 주도한 WHO 개혁 목소리에 합류했다. 이후 프랑스도 공개적으로 미국·호주와 뜻을 같이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월 26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면서 WHO 개혁 필요성에 동의했다. 두 정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회의를 조만간 소집해 코로나19 대응을 논의할 예정이고, 안보리 상임이사국 회의에서 WHO 개혁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커졌다.

WHO를 향한 개혁 요구

그렇다면 WHO는 어떤 방식으로 개혁될까. 미국은 아예 지원금 일시 중단 차원을 넘어서서 영구적으로 WHO를 무력화할 방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WHO에 3000만 달러(약 369억원)를 추가 지원하기로 하는 등 WHO가 완전히 힘을 잃기는 힘들다. WHO에 더 많은 권한을 주되, 전염병에 대한 데이터 공유를 회원국이 강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부터 전염병 대응을 WHO에만 맡기지 말고, 주요 20개국(G20)·G7·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구·협의체가 함께 나서야 한다는 주장까지 WHO 개혁을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팬데믹의 책임을 세계 각국에 전가했다. 그는 4월 27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지난 1월 말 WHO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선언했을 때 세계는 WHO의 권고 사항을 주의 깊게 들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6일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끝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공동 기자회견 도중 악수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6일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끝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공동 기자회견 도중 악수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전 세계 곳곳에 침투한 ‘차이나머니’를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유럽은 물론 호주·인도 등에서 코로나19로 휘청이고 있는 자국 기업들이 중국의 기업사냥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집단소송 등 민간 차원의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중국 정부를 상대로 코로나19의 책임을 묻는 약 6조 달러(약 7300조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됐다. 이번 소송을 주도하는 마이애미 소재 ‘버먼 로 그룹’은 “(중국이) 바이러스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막는 데 실패했고, 적절하게 알리는 데 실패했다”며 “팬데믹 피해를 겪은 사람들이 중국에 배상금 수십억 달러를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한 학회도 중국이 선진국 G7 국가에 끼친 손실이 3조2000억 파운드(약 4800조원)에 달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인도에서도 변호사협회(AIBA)가 중국을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소하고 20조 달러(약 2경5000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중국은 이 같은 움직임에 발끈하고 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4월 24일 “중국을 상대로 한 각국의 코로나19 피해 소송은 중국 정부는 물론 중국 기업의 적법한 이익과 권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며 “중국 기업들도 이런 피해를 볼 경우 각국 정부에 맞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중국 정부는 “우리도 피해자”라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월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책임론과 관련해 “미국 일부 정객은 사실을 무시하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겅 대변인은 “이들의 목적은 오직 자신들의 코로나19 방역 부족에 대한 책임을 면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라며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방역 업무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미국의 험악한 속셈과 자신의 중대한 문제를 드러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윤정 국제부 기자 yyj@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