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주민들 “우체국 다시 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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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진 셔터는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1989년 문을 연 이래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 서울 망원동우체국은 주민들과 노동조합의 반대에도 결국 폐국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 우정사업본부의 경영합리화 방침에 따라 전국 곳곳의 우체국들도 망원동우체국처럼 정리를 준비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손쉽게 메시지와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가 되면서 전통적인 우편사업에서는 적자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운 우체국이 사라지면서 생기는 불편은 공공서비스 이용률이 높은 주민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4월 27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 앞에서 한 시민이 우체국 폐국을 안내하는 현수막을 보고 있다./김태훈 기자

4월 27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 앞에서 한 시민이 우체국 폐국을 안내하는 현수막을 보고 있다./김태훈 기자

지난달 서울서 올해 첫 문 닫아
망원동우체국은 4월 27일 서울에서 올해 처음으로 문을 닫은 우체국이다. 휴일만 빼고 30년 동안 줄곧 편지와 소포가 오갔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에 바로 앞 교차로와 버스정류장에도 ‘망원우체국’이란 이름이 붙었다. 27일 셔터가 내려진 우체국 건물에 달린 폐국 안내 현수막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주민 황성우씨(63)는 “여기가 딱 목이 좋은 자린데 치킨집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며 “편지·택배도 그렇지만 (우체국이) 가까워서 우체국통장으로 거래하던 동네 사람들이 불편해지겠네”라고 말했다.

이제부터 금융업무는 자동화기기(ATM)나 PC·스마트폰으로 대신해야 한다. 우편업무는 교차로에서 500m가량 더 들어가야 있는 새로 생긴 우편취급국으로 가야 볼 수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우체국 이름이 붙은 교차로 큰길가에 자비를 들여 ‘폐국 반대’ 현수막을 줄줄이 매단 것은 단지 불편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우리 같은 나이 든 노인들한테 컴퓨터 쓰는 법을 가르쳐줘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헤매요. 굳이 창구까지 가서 돈 부치는 게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자신도 폐국 반대 주민 서명운동에 동참했다는 박석순씨(72)는 대면 없이 기계로만 일처리하는 데서 느끼는 고충을 토로했다.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지난 1월부터 경영합리화를 위해 전국의 우체국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본이 직접 운영하는 우체국 1352곳 중 절반에 가까운 677곳을 2023년까지 축소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서울의 망원동우체국이 입주건물 계약 문제로 첫 테이프를 끊었지만, 인구가 집중돼 있고 다른 배송업체나 금융기관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서울과 달리 농어촌 지역의 폐국은 주민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다. 직영국 축소 첫해인 올해에만 전국에서 우체국 171곳이 사라질 예정이다. 서울 24곳을 비롯해 경인 28곳, 충청 25곳, 부산 29곳, 전남 19곳, 경북 22곳, 전북 11곳, 강원 10곳, 제주 3곳 등이다. 이들 직영우체국은 민간위탁 방식인 우편취급국으로 바뀐다.

우편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공공서비스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적자를 이유로 ‘경영합리화’에 나서는 우본의 방침은 반발을 부르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노동조합을 비롯해 주민과 정당, 시민단체의 반대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신명춘 공무원노조 서울지역본부장은 “망원동우체국은 하루 평균 400~500명이 이용해 대기시간이 보통 1시간 가까이 될 정도로 주민 이용률이 높다”며 “이런 직영 우체국도 주민들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폐국 조치했다”고 말했다. 폐국 반대운동에 나선 정의당 마포구위원회도 “우체국 폐국은 지역 내 공공기관 축소에 따른 주민 불편, 민간위탁에 따른 고용불안과 서비스 품질 저하 등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적으로 추진되는 계획이기 때문에 서울뿐 아니라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폐국 대상이 된 지역마다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천에서는 특히 노인 거주 비율이 높은 원도심 지역인 송림·연수·만석·화평·간석·구월우체국 등이 대거 폐국될 위기에 처하자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등 21개 시민사회단체가 한데 모여 저지에 나섰다. 울산 동구와 전북 군산시 등에서는 시·군·구의회 차원에서 결의안을 내고 관내 폐국 방침이 내려진 우체국들을 유지하라고 요구했다. 경북 울릉군에서는 도서지역이라는 특수상황에도 저동우체국이 문 닫을 위기에 처하자 군수가 나서서 존치를 요청하기도 했다.

경영합리화 방침 677곳 폐국 대상

이러한 반발에 대해 우본 측은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적 여건 때문에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나마 흑자를 내는 예금·보험 등의 금융사업 회계가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우정사업 회계와 분리돼 있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금융사업으로 생기는 수익은 국고로 들어가는 반면 창구 유지 및 인건비 등으로 발생하는 연간 2000억원 이상의 적자는 세금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도록 법이 만들어져 있다. 우본 관계자는 “최근 3년 동안에만 우편물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관계 법령도 없이 이대로 버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우본 측의 해명에 따르면 우체국에서 우편취급국으로 전환할 경우 그만큼 적자는 줄이지만 그나마 수익이 나는 금융사업 역시 같이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우편취급국은 민간에 위탁해 3명 이하 소규모로 금융업무 없이 우편물만 취급한다. 우본이 2014년 대학 구내우체국 107곳을 폐국하면서 창구 노동자 1023명을 감원한 것처럼 결국 인건비 문제가 연쇄 폐국 사태의 핵심이다. 노조 측은 앞으로 4년간의 폐국 조치로 우체국 창구 노동자 2000명 이상이 구조조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우본 측은 경영합리화 방침에 포함된 677곳에 달하는 폐국 대상 우체국들을 모두 문 닫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최대한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줄이는 쪽으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충북 옥천의 안남우체국이 2017년 폐국 위기에 처했다가 주민들의 노력과 지자체의 도움 등으로 가까스로 되살아난 사례도 있긴 하다. 안남우체국은 1962년부터 별정우체국으로 운영해오다 사업자가 파산하며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이 살려냈다. 옥천에서도 가장 작은 면 지역이어서 면사무소와 경찰 치안센터, 농협 분소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체국마저 없어지면 안 된다고 주민들이 절박하게 나선 덕택이었다. 다만 노조 관계자는 “안남우체국 같은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의 직영국, 특히 농촌 지역에선 주민수도 줄어들고 고령화되고 있어 지자체의 지원 등 다른 대책이 없이는 쉽게 폐국 방침을 막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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