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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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깨끗합니다. 두 사람 이상이 기다릴 때면 줄을 섭니다. 친절도 몸에 배어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웃는 낯에 상냥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응대합니다. 사회시스템 역시 빈틈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 치안, 사회·의료복지 모두 선진국 수준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본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특파원과 연수 시절 4년간 일본에 살면서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한 것들입니다.

[편집실에서]일본의 민낯

그런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좌충우돌하는 일본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발병 초기부터 그랬습니다. 지난 2월 대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감염자가 나오자 입항을 거부하는 한편, 이들을 확진자 집계에서 제외했습니다. 일본 언론조차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검사는 물론 확진자 수를 축소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올림픽 1년 연기가 확정된 뒤에는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4월 29일 현재 일본의 확진자는 1만4000명에 육박했고, 약 4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모든 가구에 2장씩 무료로 나눠주는 천 마스크는 조악한 품질 탓에 비난의 대상이 됐습니다. ‘아베노믹스’에 빗댄 ‘아베노마스크(아베의 마스크)’는 조롱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아베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고 ‘외출 자제’를 요청했는데도 그의 부인은 도쿄에서 800㎞나 떨어진 오이타현의 한 신궁을 찾아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참배해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한 관료는 SNS에 “감염 확산을 정부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글을 올렸다가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일관성 없는 지도자, 재난 수습보다 자신의 입지만을 우선한 정치인·관료의 뒷북 대응이 이어집니다. 지난 4월 28일 <요미우리신문> 온라인판에는 이런 기사가 나왔습니다. 4월 11일 도쿄 세타가야구의 한 회사 기숙사에서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사후에 코로나19 감염자로 확인됐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이 남성은 4월 3일부터 보건소 상담센터에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엿새가 지난 9일에야 검사를 받았고, 이틀 뒤 사망 후 양성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조차 보름 이상이 지난 27일 세타가야 구청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시민은 잠잠합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총리관저 앞에 나가 촛불이라도 들고 퇴진 시위라도 벌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이런 와중에 치러진 4월 26일 시즈오카현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집권 자민당 후보가 대승을 거뒀다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이해 불가입니다.

이 같은 일본 상황을 보면서 2017년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책이 묘하게 오버랩됐습니다. 이 책은 혐한과 ‘한국 때리기’, 일본인의 우월 의식과 같이 상식에서 벗어난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한술 더 떠 ‘문재인 대통령은 최악의 대통령이며 한국인은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고 주장합니다. 저 역시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아베 총리는 최악의 총리이며 일본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는 사실을.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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