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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인근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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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적 해고 금지하고 특수직·영세사업장 노동자 고용안전망 보완해야

“정부가 기업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주면서 한시적 해고 금지를 조건으로 할 때, 협력사 직원까지 포함해주면 좋겠다. 회사가 현금이 없으면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기보다 아예 직원을 자르고 만다. 직접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혜택이 와야 하는데 돈을 뿌리면 위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가져가고 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달이 안 된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 전북지역 노동사회단체가 4월 23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사회안전망 전면확대,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해고 금지, 생계소득 보장 등을 요구했다. / 연합뉴스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 전북지역 노동사회단체가 4월 23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사회안전망 전면확대,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해고 금지, 생계소득 보장 등을 요구했다. / 연합뉴스

파라다이스시티 카지노의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한 ㄱ씨는 지난 4월 21일 <주간경향>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에 이런 ‘건의’를 했다. ㄱ씨의 주장은 항공·공항업계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이들은 영종도를 비롯한 공항 인근(인천 중구)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고, 한시적 해고 금지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장의 지원 외에도 특수고용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보호할 수 있도록 고용안전망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일시적인 경영난(생산·매출 15% 감소 등 요건 충족 시)으로 고용조정이 불가피하게 된 사업주가 휴업·휴직 등 고용유지조치(총 근로시간의 20% 이상 휴업, 또는 1개월 이상 유급휴직)를 하는 경우 최대 90%까지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상당수 업체가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하지 않고 해고를 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휴업수당의 10%와 4대 보험료 같은 고정비용 때문이다. 실제 2000명 규모의 한 항공사의 지상조업사도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공항상담소의 민현기 노무사는 “지상조업사의 경우 비행기 대수별로 도급계약을 하는데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아예 지상조업사에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무급휴직은 당연하고,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위한 휴업수당 10%를 먼저 줄 돈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위기에도 ‘특단’의 조치 여전히 부족

정부는 4월 22일 발표한 ‘고용안정 특별대책’에서 휴업수당 10%를 마련하기 어려운 기업들에 인건비 융자 사업을 벌이기로 했지만 여기에 더해 4대 보험료의 한시적 면제나 납부 유예,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선지급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사업주가 먼저 지급한 후 지원을 받는 구조라면 여력이 없는 사업주는 신청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서 “기업이 매출 하락을 입증하면 정부가 선지급하고 추후 실제 매출 상황에 따라서 환수하거나 더 지급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유지지원금 선지급은 네덜란드에서 실제 시행하는 제도다.

이 국장은 또 “사업주만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어서 사업주의 선의에 따라 받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이 갈린다”며 “노동자도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300~500명 규모가 되는 인천공항 하청업체들이 사업을 정리하고 철수하면서 싸울 대상도, 요구할 대상도 없어지는 상황이라 한시적 해고 금지 선언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이진 인천고용센터 실업급여팀장은 “요즘은 회계가 투명해져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은 온라인으로 월급을 주고 급여대장이 명확히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가 (급여를 정확히 파악해 상응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근로자에게 직접 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다만 “5인 이하 영세업자들은 경리를 두기 어려워 서류가 복잡하고, 행정 인력도 상당히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천공항에 사업장을 둔 하청업체나 파견 용역업체는 전국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려면 전체 사업장에서 한 달간 신규채용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한재영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팀 조직국장은 “예를 들어 대한항공 지상조업사인 맨파워코리아는 인천공항에 사업장이 있고, 광주광역시에도 사업장이 있는데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해도 광주 사업장에서 추가 채용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구조”라면서 “지금은 특수상황으로 보고 근무 지역을 기준으로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해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현기 노무사는 “상시 근로 5인 미만 사업장은 휴업수당 규정을 적용받지 않아서 무급휴직을 해도 문제 삼을 부분이 많지 않다”며 “근로기준법을 상시 근로자 수에 상관없이 전면 적용할 측면이 있고, 특히 휴업수당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회보험, ‘조세방식’으로 바꿔야

하청업체의 고용이 불안한 것은 원청이 가격을 낮추기 위해 업체를 해마다 바꿔가며 계약하는 관행과도 무관치 않다. 하청업체끼리 가격경쟁을 하다보니 사회보험료와 임금을 부담해야 하는 고용 유지에 소극적이다. 이런 이유로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하청업체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낮은 가격이라면 계약을 거부하겠다는 하청업체가 많아지면 원청도 자발적으로 공정거래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이는 하청업체 노동자와 하청업체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사회는 시장소득 의존도가 높아 단결해 협상에 나서기보다 당장의 생존 노동에 뛰어드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승윤 교수는 “시장소득이 높다는 것은 여러 사회서비스를 돈으로 구입해야 하는, 즉 돈을 조금 더 버는 것의 한계효용이 크다는 뜻”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조직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소득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의 하나로 참여소득을 제안했다. 장애인 돌봄이나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같은 지역공동체에서 하는 자원봉사에 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공공의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잡개런티’의 의미도 있다. 이 교수는 “사회에 유용한 일을 할 경우 소득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개혁적인 제도인데 지금 같은 전환기에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사회보험의 적용 방식을 조세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세방식은 국세청의 세금 납부 정보를 근거로 실업급여 등 사회보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는 고용보험의 취득·상실을 다 사업주가 하게 되어 있어서 사각지대가 많고, 플랫폼 노동자도 플랫폼 기업이 근로자로 인정해 고용보험에 가입시켜주지 않은 이상 실업급여를 타기 어렵다”면서 “조세방식으로 바꾸면 대리기사나 택배기사, 일용직 근로자 등 원천징수로 세금을 내는 사람들도 사회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세방식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줄이는 방안으로 몇 년 전 한국노동연구원의 장지연·이병희 박사가 제안했지만 아직 대중적으로 논의가 활발하진 않다. 홍민기 연구위원은 “조세방식으로 바꾸면 사회보험료가 아니라 세금을 낸 사람이면 누구나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게 된다”며 “형평성도 있고 훨씬 간단하고 많은 사람을 포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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