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전자팔찌는 어불성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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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중 인권의학연구소 이사, 자가격리 이탈자는 극소수 지적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퍼졌을 때 그는 국립의료원에서 감염 환자를 맡았다. 감염병 대처에 열악한 환경이었다. 음압 격리병동도 없었다. 다행히 환자는 3명에 그쳤고 사망자도 없었다. 사스 방역 현장의 한가운데 있었던 그는 “운이 좋아 사스를 넘겼다”고 말했다. 당시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도 “사스 방역에서 보여준 임기응변식 대응으로는 신종 전염병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방역에 실패했다. 불투명한 정보공개가 감염을 확산시켰다.

이준헌 기자

이준헌 기자

코로나19는 달랐다.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뤄졌다. 확진자 행적과 동선이 시간대별로 공개됐다. 효과가 있었다. 한국식 방역은 국제사회의 롤모델로 꼽힌다. 그런데 그는 걱정이 앞선다. 현재 한국의 방역 방침이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고 본다. 특히 격리 이탈자에게 전자팔찌(안심밴드)를 채운다는 정부 방침에는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사스와 메르스 국면에서는 투명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던 그였다. 백재중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녹색병원 내과과장·56)가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터뷰는 4월 21일 녹색병원 진료실에서 했다.

-전에는 투명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정보공개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다. 지금은 방역에 불필요한 정보까지 마구잡이로 뒤섞어공개하고 있다. 시간 경과에 따라 상세하게 동선이 나오는데 개인 신상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다. 남녀 성별은 왜 공개하나. 방역에 성별이 의미가 있나. 확진자가 아니라 확진자가 거쳐 간 장소와 시간만 공개하면 된다. 지금은 어떤가. 사생활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준까지 공개한다. 동선을 보고 사람들은 ‘모텔에는 왜 갔을까’, ‘제주도에 갔다가 왜 당일에 돌아왔을까’ 이런 얘기를 한다. 시간이 흘러 의미없는 동선 정보를 폐기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어떻게 폐기를 하겠다는 방침도 없다. 방역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최단기간 동안만 공개하고 확실히 폐기하는 게 정보공개의 기본 원칙이다.”

-앞으로 동선 공개는 더 빨리 이뤄진다고 하는데.

“걱정된다. 정부가 개인 데이터를 모아 10분 만에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역학조사 지원 시스템을 개발했다. 10분이면 개인 행적을 탈탈 털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이 시스템을 자랑하는데, 솔직히 소름이 끼친다.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 정부든 기관이든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사생활을 통제하고 사찰할 수 있다. 한번 도입한 시스템은 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 국면 속에서 갑자기 디지털 감시 사회가 도래한 것 같다.”

-안심밴드(전자팔찌)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자가격리자 가운데 이탈자는 1% 미만이다. 절대다수가 격리 지침을 스스로 잘 지킨다. 그런데 극소수의 이탈자 때문에 전자팔찌와 같은 강압적인 통제 방식을 택한다? 어불성설이다. 전자팔찌를 채우려면 먼저 이게 왜 필요한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격리 이탈자가 몇 명을 접촉했는지, 그로 인해 감염은 얼마나 일어났는지를 근거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분석한 결과와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팔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공론장에서 다같이 토론하고 고민해볼 여지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객관적인 근거도 없이 ‘이탈자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팔찌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실효성 없는 조치를 시민의 공포심을 악용해 도입하는 셈이다. 반발이 커지니까 강제 착용은 안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는데, 일단 도입하면 다음 감염병 유행할 때는 강제 착용을 의무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 부처 사이에서도 전자팔찌를 두고는 이견이 있다.

“전자팔찌 부착을 강행할 법적 근거가 없다. 당연히 정부도 이 사실을 안다. 처음에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가 반대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지난 3월 말 당정협의회 끝난 뒤에 추진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민주당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 이런 식으로 강행할 사안이 아니다. 법적 근거도 없는 조치를 급하다는 이유로 도입부터 하겠다는 건데. 나중에 법제화 작업을 할 것이다. 이미 도입한 제도니까 더 쉽게 법으로 만들 수 있다.”

-전자팔찌도 악용될 소지가 있나.

“격리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우면 전자팔찌에 대한 인식이 무뎌진다. 전자팔찌에 대한 저항감이 옅어지고 자연스럽게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전자팔찌가 활성화되면 더 많은 곳에 쓰려고 할 것이다. 타깃은 불법체류자·이주노동자·난민·정신질환자와 같은 소수자들이다. 이들을 통제하는 도구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그때 가서는 인권단체에서 반대해도 소용없다. ‘자가격리자도 채웠는데 이 사람들한테 못 채울 이유가 뭐 있나. 공익을 위해서 채우자’, 이런 식의 반인권적인 여론이 득세할 것이다. 여론이 굳어지면 관행과 문화가 된다. 전자팔찌 도입은 한국을 권위주의 사회로 퇴행시키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 코로나19 방역은 성공했다.

“그렇다. 성공적이다. 어떻게 성공했을까.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의식, 공공의식 덕분이다. 정부의 통제와 감시로 성공한 게 아니다. 지금 정부는 방역 성공에 너무 고무돼 있다. 방역이 아니라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에 매달리다 보니 무리수를 둔다. 격리 이탈자를 막는 이유는 방역을 위해서인데 지금은 이탈자 방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됐다. 정부 스스로 성공한 방역의 의미를 훼손시키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한국의 방역은 추적 시스템과 전자팔찌와 같은 디지털 감시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어떻게든 한국을 깎아내리려는 국가에 빌미를 주는 꼴이다. 여기에 IT 자본도 바이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성공했다며 자신들에게 공을 돌릴 것이다. 이들은 성공한 방역의 과실을 돈벌이에 쓸 것이다. 그렇게 가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껏 잘해온 국민을 믿을 필요가 있다. 단계별로 방역 지침을 만들고 캠페인을 벌이는 민주적 방역으로 가야 한다. 정부가 집중해야 할 분야는 따로 있다. 사망자 발생이 많은 요양시설이나 정신병원 같은 감염 취약 시설 점검이 우선이다.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빈틈을 메우는 작업이 시급하다. 디지털 감시 시스템을 만들고 도입할 때가 아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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