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대접 못 받는 ‘노인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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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이상 인구 중 40%가 근로자… 임금은 낮고 해고 위험은 높아

정오가 되자 김정국씨(가명·60)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김씨가 찾은 곳은 아파트 지하실이다.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지하는 깜깜했다. 스위치를 올리자 불이 들어왔다. 머리 위를 지나가는 노란색·파란색·빨간색 배관부터 눈에 들어왔다. 습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지하실 한쪽에 김씨가 마련한 공간이 보였다. 침대와 담요, 책상, 냉장고, 옷장, 선풍기 등 살림살이가 빼곡했다. 지하실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기서 어떻게 밥을 먹고 잠을 자는지 물었다. 김씨의 답은 짧고 명료했다. “어쩌겠어요.” 2000세대가 넘는 거대한 아파트단지에서 김씨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지하실뿐이다.

일하는 노인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에 머물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이준헌 기자

일하는 노인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에 머물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이준헌 기자

김씨는 성실하게 살았다. 20대에는 전국 곳곳 건설현장을 누비며 일했다. 1980년대 중반, 건설 호황이 끝나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30대에는 공무원으로 일했다. 아이 둘을 키웠고 집을 샀다. 40대 중반, 아내가 시작한 식당도 잘됐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중산층의 삶이라 생각했다.

근로시간을 따지면 최저임금 이하

정년퇴직하면 공무원연금을 받을 터.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부부 모두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자식들은 모두 30대 중반, 이미 자기 일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자식들의 결혼자금이 걱정되긴 했지만 집을 팔고 전세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식에게 도움은 못 줘도 부부가 살기엔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중산층이라 생각했던 삶의 토대는 그리 견고하지 않았다. 장인어른이 쓰러진 게 시작이었다. 아내가 식당을 쉬는 날이 잦아졌고 수익이 줄었다. 공무원 월급보다 식당을 유지하는 게 나아 보였다. 김씨는 20년 만에 일을 관뒀다. 돈이 급했던 김씨는 연금 대신 일시금을 택했다. 그 돈은 모두 식당에 들어갔고 1년 뒤 식당은 문을 닫았다.

50대 초반,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무엇’이 없었다. 20년 공무원 경력은 재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건설현장을 찾아 3년을 일했다. 56세, 김씨는 자신이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 노인으로 규정되는 나이도 아니다. 하지만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노인 일자리’밖에 없었다.

김씨는 주차관리원·경비원 등을 전전했다. 모두 2교대 또는 3교대를 해야 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임금은 늘 110만원에서 190만원 사이를 오갔다. 일하는 시간을 따지면 최저임금 이하다. 경비원은 명목상 8시간에서 10시간가량 휴게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에 쉬는 경비원은 없다. 음식물 쓰레기·화단 청소·택배 정리 등 일이 넘쳐난다.

심지어 김씨의 야간 휴게시간은 3시간, 4시간으로 나눠져 있다. 새벽에도 차와 주민은 오가기 때문이다. 각 동의 경비원들이 교대로 한 시간씩 근무한다. 김씨는 “3시간 자고 1시간 일하고 다시 4시간 자는 게 사람 몸으로 가능합니까? 쉬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에는 야간에 일하는 경비원이 있었지만 최저임금이 오르자 해고됐다.

운이 나빴던 걸까. 김씨는 고개를 저었다. 단지 김씨의 의견이 아니다. 숫자가 김씨의 얘기를 뒷받침한다. 60대 이상 인구가 늘어나면서 일하는 노인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통계청의 2020년 2월 고용동향을 보면 60세 이상 인구 1171만 명 중 468만 명(39.9%)이 일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2680만 명) 중 17%가량이 60대 이상인 셈이다.

높은 고용률은 일하는 노인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60대 이상 남성의 고용률은 50.7%에 이른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기는 여가를 중심으로 삶을 재편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노후 소득보장이 불충분한 한국사회에서 고령자에게 노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468만 명에 이르는 노인들은 어디에서 일하고 있을까. 한국노동연구원의 ‘65세 이상 노인 노동시장 동향’ 연구에 따르면 2004년에는 절반 이상의 노인이 농림어업에 종사했다. 2017년 농림어업 종사자 비율은 27.4%까지 떨어졌다. 대신 보건복지업(간병인·요양보호사), 사업관리지원서비스업(경비원·청소부), 공공행정(공공근로)의 취업자 비중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일자리의 상당수는 임금이 낮고 해고 위험은 높다. 노동시간을 따져보면 최저임금도 못 받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최 교수는 “고령자는 주로 재취업자이며 (노인은 노동생산성이 낮을 것이라는) 시각을 고려해 불안정한 일자리에 수용적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5~74세의 연평균 소득은 1275만원이다.

이는 전체빈곤율과 노인빈곤율의 격차에서도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노인빈곤율과 전체빈곤율 격차는 1.1%(2015년) 수준이다. 은퇴 후 계층 이동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의 격차는 34.4%로 나타났다. 이른바 ‘소득절벽’을 겪으면서 보통의 삶을 영위했던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떨어진다는 의미다. 김씨가 바로 이 34.4% 중 한 명인 셈이다.

게다가 한번 빈곤층으로 들어가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김은영 한국고용정보원 책임연구원은 ‘빈곤노인의 은퇴 후 노동시장 재취업’ 연구에서 “하지만 한번 빈곤 상태에 놓인 노인은 노년기를 빈곤하게 보낼 가능성이 높고 빈곤 지속기간이 증가할수록 빈곤 탈출률이 감소한다”며 “빈곤 진입과 탈출에 은퇴가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했다. 지금과 같은 소득절벽을 겪는 방식의 재취업이 아니라 성별·지역·연령별로 맞춤화된 고용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하는 노인이 특별하지 않는 고령사회

일하는 노인은 증가해왔고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다. 노인인구라는 분모 자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 이상)에 진입한 데 이어 2017년 이미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 이상)로 들어섰다. 65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2026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문가들은 대책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먼저 은퇴제도의 강화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년 전까지 기업 안에서 근로시간 단축, 정부의 부분 실업급여 지급 등으로 고용안정을 이루고 이후에는 정년 후 재고용, 파트타임 직무로의 재취업을 통해 고용연장을 도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공공근로를 두고 일각에서는 ‘돈 주고 일자리를 만든다’, ‘쓸데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는 손해가 아니다. 건강하게 일하는 노인이 많을수록 복지와 의료에 들어가는 재정 부담이 줄어든다. 특히 한국처럼 노후 소득보장이 낮은 나라일수록 이런 일자리는 필요하다.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노후 소득보장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모아놓은 재산이 없는 한, 은퇴한 노인들의 주요 소득은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 노인가구의 전체소득에서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로 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은 58.6%이고, 프랑스는 80%가 넘는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고령층의 높은 고용률은 기본적으로 노후소득 부족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한국과 해외의 노후보장은 수준이 다르다”며 “당장 논의가 가능한 것은 국민연금과 달리 1차적 연금 역할을 해주는 기 초연금을 더 광범위하게 지급하는 것이다. 국민연금도 사각지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은퇴제도 조정 등 근본 대책 세워야

얼마 전, 김씨가 일하던 아파트에는 입주자대표회의 공고문이 붙었다. 공고문에는 ‘경비 용역업체 재입찰’이 안건으로 쓰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씨는 용역업체가 바뀔지, 바뀐다면 자신은 고용승계가 되는 것인지, 해고되는 것인지, 몇 명의 경비원이 해고될 것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또 담담하게 답했다.

“나가라면 나가야죠. 노인네가 무슨 힘이 있나요.”

“모든 고령 노동자들이 겪는 보편적인 경험”

<임계장 이야기> 저자 조정진씨가 책을 들고 있다./조정진 제공

<임계장 이야기> 저자 조정진씨가 책을 들고 있다./조정진 제공


60대 노동자가 직접 쓴 노동르포 <임계장 이야기>가 지난달 말 출간됐다. 저자 조정진씨(63)는 공기업에서 38년을 일했다. 퇴직할 무렵, 아들이 3년 과정의 전문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퇴직하자마자 은행에선 신용이 사라졌다며 대출금의 즉시 상환을 요구했다. 거기에 주택담보대출이 남아 있었다. 결국 그는 다시 버스회사·아파트·빌딩·고속버스터미널 등의 일터로 가게 됐다. 그리고 그는 다쳤다는 이유로, 본부장 차에 호루라기를 불었다는 이유로, 아파트 자치회장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각각의 일터에서 해고됐다. 마지막 일터에서는 쓰러져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는 회사에 “지금 직장이 없어지면 건강보험이 안 돼 치료받기가 어려우니 며칠만이라도 질병휴가로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4월 18일과 21일 전화와 서면을 통해 조씨와 인터뷰했다.

-투병 이후,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고 들었습니다.

“7개월간 항생제를 맞았습니다. 항생제 투여로 콩팥이 손상됐고 신장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이 많이 상했어요. 그러나 가족을 부양해야 해서 치료할 시간도 없고 경제적 여건도 못 됩니다. 지금은 한 지역의 주상복합건물에서 경비원 겸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메모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메모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시급노동을 해보니 부당한 지시와 처우, 불법이 일상이었습니다. 공기업에서 노무 업무를 담당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런 상황을 고용노동부에 알리면 금방 개선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이런 상황이 일상이라며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억울함과 설움을 말할 곳이 없어서 메모를 시작했습니다.”

-책에 담긴 내용이 ‘보통의’ 노동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 수첩을 본 동료들은 한결같이 출간을 권했습니다. 동료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글이 짧아서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저 혼자 겪었던 별난 경험담이 아닙니다. 모든 고령 노동자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보편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기업에서 일했던 60대 남성의 선택지가 시급노동밖에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퇴직자들이 다시 일터로 나가는 이유 중 하나가 자녀들의 취업연령 때문입니다. 주변만 봐도 퇴직 전에 자녀가 정규직 취업에 성공한 경우는 드물어요. 자식이 비정규직으로 살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부양하는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요. 특히 지방에서 서울 노량진 고시학원을 보내려면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들은 피눈물이 납니다.”

-최초의 노인노동 르포입니다. 책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많은 분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귀를 기울여야 할 사람, 힘을 가진 사람은 외면하더군요. 마침 총선이라 몇몇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책을 보냈습니다. 노동조합 관계자에게도 책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소속 조합원도 챙기는 게 힘들어 노인노동 문제에 뛰어들 여력이 없다’였어요. 정치인들은 국민의 60%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심기를 거스르기 싫어합니다.”

-60대 이상 인구가 늘어나면서 일하는 노인도 더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간담회에서 시의원이 ‘노인이 일하면 건강에 좋고 용돈까지 벌어서 더 좋다’고 말하더군요. 고령 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이 정도예요. 지금 시대에 용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오는 노인은 없어요.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옵니다. 이런 절박함을 알고도 사람을 쉽게 해고할 수 있을까요. 편견과 선입관부터 없어져야 합니다.”

-제도적 개선도 시급해 보입니다.

“감시단속직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규정을 없애는 게 우선입니다. 이게 무슨 시혜를 주는 게 아니에요. 지금은 법이 현실에 한참 뒤떨어져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면 경비원도 주 52시간 근무, 휴일·야간 근무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을 할수록 지금의 노인노동은 복지를 지향하는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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