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여대의 새 ‘굿즈’ 100주년 기념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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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서울 지하철에선 이런 광고를 쉽게 접한다. 팬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 내건 지하철 광고다. ‘지광 순례(지하철 광고를 찾아 돌아다닌다는 뜻)’의 성지는 단연 지하철 2호선이다. 팬들은 아이돌 광고를 찾아 홍대입구→합정→강남→삼성→잠실역 등을 돌아다닌다. ‘성지’ 잠실역에는 지난해 12월 ‘팬심’이 가득 담긴 특별한 광고가 걸렸다. ‘2020년 덕성여자대학교 정시모집’ 광고다. 학교에서 낸 광고가 아니다. 덕성여대 창학 100주년을 맞아 학생들이 돈을 모아 낸 지하철 광고다.

덕성여대 창학 100주년 기념우표

덕성여대 창학 100주년 기념우표

광고 속에선 짧은 상고머리를 한 안경 쓴 학생이 책을 읽고 있는데 얼굴과 몸매가 드러나지 않도록 붉은빛의 실루엣 처리를 했다. 2년 전부터 10~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퍼져간 ‘탈코(탈코르셋)’를 반영했다. 탈코란 긴머리·화장·제모·브래지어 등을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코르셋’으로 규정하고 이를 거부하는 움직임을 말한다. 광고에는 학교 설립자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페미니스트였던 차미리사 선생(1879~1955)의 사진도 담겼다. 그도 한 세기 전 ‘탈코’를 말했다. “단발은 머리 해방을 얻는 것이다. (…) 쓸데없이 주체스러운 머리를 깎는다 하면 유익할 것은 물론이고, 자기의 심신을 일신하고 생활로나 사상으로나 퍽 새로워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차미리사는 3·1운동 1년 뒤인 1920년 4월 19일 조선여자교육회를 만들고 산하에 여성들을 위한 야학(부인야학강습소)을 세웠다. 지금의 덕성여대(덕성학원)다. 그는 여성이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려면 “무엇보다 여자들의 경제 문제, 빵 문제를 여자들이 해결해야 한다”며 여성 실업교육을 주장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자아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단지 남의 종속물로서 노예의 생활을 해왔다.” “여성들은 남자와 어깨를 견주고 같은 직업선 상에서 활동하도록 힘써야 한다.” 차미리사는 1940년 총독부의 압력으로 교육 일선에서 물러났고 송금선 박사가 뒤를 이었다. ‘후쿠자와 레이코(福澤玲子)’로 창씨개명한 송금선은 청년들의 학병지원을 독려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

덕성학원은 송금선 일가에 세습됐다. 차미리사라는 이름은 잊혔고, 송금선의 후예들은 전횡을 일삼았다. 1997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학생들과 교수들은 비리재단에 맞서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학교의 설립자가 차미리사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섰다.

차미리사에겐 뒤늦게 독립유공자 훈장이 주어졌다. 비리재단 이사들은 일선에서 물러났고, 학교엔 차미리사 동상이 세워졌다. 2004년 덕성여대는 송금선을 기리는 개교기념일(1950년 5월)을 버리고, 차미리사의 창학기념일(1920년 4월)을 따르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을 덕성의 구성원들이 해냈다. 이들이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라는 차미리사의 말이 담긴 학교 굿즈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는 건 자신과 학교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리라.

굿즈가 또 하나 늘었다. 우정사업본부는 덕성여자대학교 창학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우정사업본부는 “차미리사 선생이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설립한, 여성의 손으로 만든 자립적·자생적·자각적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여성들은 지금도 역사를 만든다. 지광 대신 지면을 빌려 존경을 담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20.04.19.’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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