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로데오거리-패션과 유행이 흘러간 젊은이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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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미국 유학생들이 몰려들면서 그들과 함께 묻어온 문화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 로데오거리를 만들었다. 오렌지족과 로데오거리는 그 시절의 수입품이다. 지금은 전국 곳곳에 10여 개가 넘는 로데오거리가 생겼다.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명품 상점들이 줄을 이은 대표적인 유행의 거리다.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명품 상점들이 줄을 이은 대표적인 유행의 거리다.

미국에서 건너온 길 이름이 전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로데오거리. 원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근처 어디쯤 번화가의 이름이라는데 1990년대 초반 미국 유학생들이 몰려들면서 그들과 함께 묻어온 문화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 로데오거리를 만들었다. 오렌지족과 로데오거리는 그 시절의 수입품이다. 이후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거나 패션과 유행이 흐르는 곳에는 로데오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압구정동의 원조 길을 따라 전국 곳곳에 10여 개가 넘는 로데오거리가 생겼다.

거리라고는 하지만 강남 일대의 기준으로 보면 골목길이다. 대로의 이면도로에 작은 상점가가 이어져 있고, 젊은 취향의 식당과 술집들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압구정로를 따라 갤러리아백화점과 청담동 디자인거리의 뒤편 반듯한 골목길엔 명품가게와 맞춤옷집과 고급 음식점이 주로 눈에 띈다. 골목 입구에 한때 ‘로데오거리’라는 큰 간판까지 있었다는데 유행이 지나면서 어느 땐가 없어졌다.

미국 베벌리힐스 번화가의 이름

이 골목길은 옛 명성을 잃었다. “아마 성수대교 붕괴사고 후부터 조금씩 위축됐던 것 같다. 강북에서 오는 길이 끊기면서 젊은이들의 유입도 줄었다. 이곳 클럽과 술집에서 홍대 부근과 이태원으로 유행이 옮겨갔다”는 것이 압구정동에서 30년째 식당을 하는 이의 주장이다.

로데오거리의 몰락에 치명타를 날린 것은 미물인 벌레 떼였다. 2010년 무렵 수년 동안 밤만 되면 떼거리로 출몰해 ‘압구정 벌레’라는 별명이 붙었던 동양하루살이가 있었다. 거리의 가로등과 진열장을 까맣게 덮어 로데오거리의 화려함은 혐오로 옮아갔다. 밤에 모여드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 것도 그 무렵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의 골목길엔 돈 냄새가 짙게 흐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유난히 많은 명품매장. 시계와 최고가 소품류는 기본이고 그 수선 매장들도 줄지어 있다. 기존 업종의 매장들도 다른 곳에 없는 특징들이 보인다. 은행 지점은 VIP 대상의 고급서비스를 간판에 새겨놓고 있다. 유학 송금 상담, 상속 증여 전문, 투자신탁 등을 전면에 내걸어 부촌의 고객층을 목표로 삼았다.

호텔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병원은 화려한 건물을 올렸고 길 안쪽으로 2관, 3관을 지어 성업하고 있다.

이곳에서 노인은 가난하고 병든 존재가 아니라 잘난 자녀를 둔 수백억 재산가들이다. 아침이면 골프채를 들고 운동하러 갔다가 저녁이면 와인바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그 부유한 계층을 겨냥한 가게들이 골목에 줄지어 있다. 독서실은 스터디카페라는 이름의 간판을 달았고, 과외 강습소는 무슨 무슨 아카데미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상표부터가 다른 셈이다.

한때 젊은이들에게 가장 ‘핫’했던 로데오거리는 유행과 열기가 지났다.

한때 젊은이들에게 가장 ‘핫’했던 로데오거리는 유행과 열기가 지났다.

박스 줍는 노인도 수백억대 재산가

골목길 입구부터 골목 안에 몇몇 한 회사 소유의 세련된 건물들이 눈에 띈다. 미술품 경매 전문회사가 골목 곳곳에 전시장과 거래소를 펼쳐놓고 있다. 미술품은 아무나 소유할 만큼 값싼 물건들도 아니고, 안목도 과시하며 허영도 충족할 수 있는 이 동네에 딱 어울리는 상품이다. 사고팔고 뽐내고 덤으로 상속의 수단도 된다고 했다. 과거 부암동과 평창동 일대에 있던 미술품 경매회사들이 압구정동으로 넘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돈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세련됨과 고상함 그리고 우아함을 예술품으로 채우는 것일까. 부자들 사이에서 예술 작품은 내부의 계층을 나누는 경계선이 됐다.

패션상점들 사이로 특색 있는 식당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패션상점들 사이로 특색 있는 식당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그 부유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불안은 숨길 수 없는 것 같다. 대로변엔 정신과 병원들이 눈에 띄고 골목 안에는 낯설게도 점집들이 곳곳에 보인다. 동네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점쟁이들도 이 마을에선 세련된 모습이다. 흔하디흔한 운명감정소나 인생철학을 내건 대신 ‘라이프 컨설턴팅’이라든가 ‘라이프 디자인’이라는 요상하고 거창한 명패도 보인다. 사주·택일·작명·풍수 따위의 전통적인 업무가 아니라 상담내용도 성형 상담, 유학 진로 전공 상담, 성격 고민 등을 내세우고 있다. 풍문에 따르면 성형외과 병원과도 선이 닿아 손님도 보내고 얼굴 모양새도 조언한다고 한다. 얼굴이 운명을 좌우한다나. 점쟁이들도 배워야 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 이곳에선 점 보는 일은 상담이고 점쟁이라는 이름 대신 ‘라이프 플래너’라든가 ‘어드바이저’라고 부른단다. 호박에 줄을 그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거리에도 종이상자를 줍는 노인이 눈에 띈다. 작은 손수레에 편의점에서 나온 종이상자를 싣는 허리 굽은 노인은 어느 골목에서도 마주치는 익숙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곰팡이 피는 쪽방에서 종이상자를 주워 하루 끼니를 이어야 하는 그런 팔자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건물에 임대 표지판을 붙이던 부동산 업자가 “저 노인네가 이 옆 건물 주인이다. 저래 보여도 수백억 재산가”라고 귀띔한다. 이 골목 안에 40년 넘은 2층 주택도 어림잡아 시세가 50억원이 넘고 그나마 팔려고 내놓는 매물은 없다고 했다. 집 한 채만 가져도 대충 재산이 100억원대는 넘는다는 것이다. “돈이 필요해야 매물을 내놓지, 있는 게 돈인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사려고 하지 재산을 처분하려고 하는 법은 없다”고 한다. 경기를 타는 탓에 임대 물건들은 수시로 나온다고 들려줬다.

강남 개발과 함께 구획된 골목은 곧게 정비되어 있다.

강남 개발과 함께 구획된 골목은 곧게 정비되어 있다.

임대 평수 10평으로 붙여두었으나 실제 면적은 그 반쯤이나 될까 말까 한 좁은 매장의 임대료를 물어보자 “4000만원 보증금에 월세 280만원”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대신에 권리금은 없단다. 이 일대에는 권리금 없는 매장이 대세라고 했다. 매장 위치가 썩 좋은 곳도 아니고 골목길 중간 어중간한 자리에 있는 곳인데도 임대료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 좁은 매장에서 월세 내고 인건비 건지려면 웬만해선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아도 건물들은 오래 비어 있지 않고 금방 들어왔다 또 금방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부동산 업자는 “임대보다 매매가 많아야 부동산도 먹고사는데 여기는 매매가 성사되는 경우가 별로다. 대신에 매물 나오면 사달라는 청은 많다”는 사정을 들려준다.

골목 한편에 세련된 건물 하나가 이렇다 할 간판도 없이 서 있다. 물어보니 결혼 관련 업체란다. 넓은 홀에 화려한 웨딩드레스가 보이고 신랑·신부 가족으로 보이는 장년의 귀부인도 보인다. 손님도 아무나 받지 않고 철저히 가려가면서 장사를 한다는데도 압구정동에 건물을 올릴 정도로 성업 중이다. 중매부터 예식 관련 이벤트까지 철저히 입맛에 맞게 꾸려준다고 했다.

미술품 감정 매매 업체와 대규모 경매 업체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미술품 감정 매매 업체와 대규모 경매 업체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고시원·원룸텔은 볼 수 없어

압구정동에서 입주 가정부로 일하는 헤이룽장성 출신의 60대 조선족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막 면접을 보고 왔다는 그는 “큰아이가 열두 살, 그 밑으로 아홉 살, 여덟 살짜리 아이 셋인 집인데 월 240만원을 준다고 해서 거절하고 왔다”고 했다.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등골이 휠 텐데 그 돈으론 어림없다는 것이다. 갓난아이 하나 돌보는 전문직 맞벌이 부부 집의 일자리를 원하는데, 면접 봐달라고 간청해서 억지로 다녀왔다고 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아무나 쓰지 않는다. 믿을 만한 사람 소개를 통해야 한다. 괜찮다는 소문이 나면 스카우트 제안도 많다”고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들의 외모를 꼼꼼히 따지는 것도 특징이라고 했다. 다시 보니 그도 명품 코트에 세련되고 고상하게 꾸미고 있었다. 어딜 봐도 입주 가정부로는 보이지 않았다. 속엣것은 볼 수 없으나 보이는 것은 따진다는 것이 압구정의 율법인가보다.

로데오거리 일대는 한동안 연예업계가 눈독을 들이던 곳이다. 소위 길거리 캐스팅의 시발이 이 지역 인근에서 벌어졌고, 영화사 사무실들이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시절도 있다. 이곳 카페에서 어느 감독의 눈에 띄어 데뷔했다는 연예계 가십 기사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로데오거리 골목골목의 카페들은 그야말로 선남선녀들의 소굴이었다. 카페 주인에게 물어보자 “요즘엔 이 근처에서 캐스팅됐다는 이야길 들어본 적이 없다. 보다시피 근처 직장인들이나 그냥 젊은이들이 모인다. 차라리 가로수길이나 강남역 일대가 그런 소문들이 들리는 편이다”라고 했다.

그래도 미용 관련 업종들이 간간이 눈에 띄고, 맞춤 수제 양복점들도 여럿 보인다. 젊은 양복 디자이너는 “명품 시계나 양복점들은 결혼업체와 연결돼 있는 경우도 있고, 일정 정도 꾸준한 수요가 있어서 유지된다. 옷감도 수입품들에 수제 제작이고 유명 패션 브랜드의 유행을 잘 반영해서 인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 곳곳에 있으나 이 일대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고시원·원룸텔 등이다. 동네 분위기 때문인지 비싼 임대료 덕분인지 도시의 낭인들이 깃들어 사는 공간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묘한 사실이다. 막걸릿집도 있으나 맞춤 수제 양조장이고, 흔하디흔한 치킨집도 독특한 소스를 내세우고 특별한 간판을 내걸었다. 기억하기 힘든 긴 서양이름의 요상한 풀들을 내놓고 있는 꽃집도 있다. 꽃집 대신 ‘플로랄 가든’이란 이름표는 덤이다. 고깃집도 한식집도 세련됨이 흘러넘쳐 가난한 안목에는 부담스럽게 비친다. 다만 한 곳, 돼지고기 불고기백반과 된장찌개 등을 8000원에 파는 오래된 한식집은 골목 분위기에 오히려 역행한다. 주인에게 장사가 어떠냐고 묻자 “점심시간엔 자리가 없다”고 했다. 하긴 직장인들이 매 끼니 스시에 파스타를 먹을 수는 없는 법이다.

로데오거리 골목길은 아주 오래도록 침체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충분히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모습이다. 담을 헐어 뜰을 만든 가게들의 수십 년 된 나무들이 꽃을 피웠다. 골목 안에 바람에 날리는 꽃잎들이 장관이다. 과거에 이 골목에 살았던 이들이 미래의 행인들에게 쓴 연애편지다. 노자는 자연의 이치를 물 흐르고 꽃이 핀다는 수류화개(水流花開)로 표현했다. 활짝 핀 꽃은 반드시 떨어지고 말아 물에 씻겨 흘러가는 낙화유수(落花流水)도 세상의 이치다. 돈이 물처럼 펑펑 흐르는 번영의 모습도, 번성했던 시절이 꽃잎처럼 져서 세월과 함께 흘러가는 흔적도 이 골목에서 함께 읽을 수 있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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