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와 갓이 해외 진출한 인기 한류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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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조선시대 배경의 좀비 드라마 <킹덤>이 전 세계에서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고 있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이야기 구조와 볼거리를 바탕으로 드라마 자체도 인기를 끌었지만 유독 외국인들의 눈길을 끈 소재는 다름 아닌 갓이다. 상황과 신분, 직책에 따라 서로 다른 등장인물들이 여러 종류의 전통 모자를 쓴 모습에 매료된 것이다. 이러한 해외의 열광적인 인기에 대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드라마에서 영의정 조학주로 분한 배우 류승룡이 머리에 쓴 검은색 갓에 손을 대며 “오 마이 갓”이라고 말하는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내금위장이 깃털이 달린 갓을 쓰고 있다. /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내금위장이 깃털이 달린 갓을 쓰고 있다. /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킹덤2> 통해 관심 집중

지난해 1월 공개된 <킹덤> 시즌1에 이어 시즌2가 지난 3월 공개되면서 갓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아마존과 이베이 등 해외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에서 갓이나 전립, 사모 같은 한국 전통 모자 판매량이 늘어나는가 하면, 해외 SNS나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도 갓을 포함한 한국의 전통 복식에 관한 호평과 문의 글이 늘었다. 과거 농기구 호미가 생소한 외국에서 농사에 유용한 도구로 인정받으며 뜻밖의 한류 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전통 복식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킹덤>은 좀비와 멋진 모자에 관한 드라마.”

SNS에서 ‘킹덤 모자(Kingdom hat)’나 ‘한국 전통 모자’ 같은 검색어를 입력하면 외국인들이 이 낯선 모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영화 <19곰 테드>를 제작한 존 제이콥스도 “조선시대 좀비를 다룬 <킹덤>을 즐겁게 감상하고 있는데, 극에 나오는 수많은 모자에 대해 설명해줄 학자는 없을까”라며 관심을 보였다. 보통 영문으로 ‘gat’이라고 표기되는 갓이 신을 뜻하는 god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류승룡처럼 일종의 ‘아재개그’를 선보이는 네티즌들도 있다.

사실 전통 복식 중 갓이나 사모처럼 머리에 쓰는 모자류에 관한 이해는 한국인들도 그리 깊지는 않다. 다양한 모자의 정확한 이름이 무엇이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 쓰는지를 속속들이 아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도 사극을 통해 전통 모자를 보는 데 익숙했던 한국인들과 달리 외국인들의 눈에는 다양한 색깔과 형태의 모자가 신기하고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인식은 서양 열강들에 문호를 개방하며 본격적인 교류가 이뤄지던 개화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1883년 당시 한양에서 석 달가량 체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1885년 펴낸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는 “갓은 서양에서 유행하는 실크 해트와 같은 등급을 매길 만한 훌륭한 발명품”이라는 찬사가 나온다.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부임한 조지 길모어도 조선을 “모자의 첨단을 걷는 나라”라고 표현했다. 격식을 갖춘 복식에 모자를 포함하는 문화는 서양 각국에도 있었다. 하지만 특히 조선은 말총과 비단뿐 아니라 대나무, 삼베, 기름 먹인 종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그보다 더 다양한 모자를 만들어 어디서나 쓰고 다녔던 것이 이색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물론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새로운 문화의 특색에 반응하는 이면에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나온 몰이해도 없지 않았다. 미국인 윌리엄 그리피스는 1882년 펴낸 <조선, 은자의 나라>라는 책을 통해 조선을 서양에 처음 소개한 인물이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 거주하며 한 번도 조선을 찾은 적이 없었던 탓에 모자가 조선의 특색 있는 문화라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과장된 묘사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갓의 너비를 말하자면, 지붕이나 우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름이 매우 크다”며 “아마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때 낙하산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황당한 기록을 남겼다.

돌솥·양은냄비·삼겹살용 불판도 인기

개화기 조선을 방문한 프랑스의 민속학자 샤를 바라가 “조선은 모자의 왕국”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서양인들에게 조선의 모자 문화는 이색적이었다. 집안에서 신발과 겉옷은 벗어도 모자는 썼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현대 한국인이 보기엔 ‘모자’라는 표현이 가장 익숙하지만 모자를 뜻하는 ‘모(帽)’는 전통 ‘쓰개’ 복식의 한 형태에 불과했다. 갓을 뜻하는 ‘립(笠)’만 해도 말총으로 만든 흑립과 새의 깃털이나 돼지털로 만든 무관용 전립, 가는 풀 등을 엮어 만든 초립 등 다양하다. 여기에 실내에서 쓰는 망건·탕건 등의 ‘건(巾)’, 관례나 행사에서 주로 썼던 각종 ‘관(冠)’, 삿갓과 족두리, 남바위 등 실용과 패션을 모두 갖춘 전통 쓰개들은 지금 봐도 고유한 매력을 뽐낸다.

미국의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 아마존과 이베이에서 갓을 비롯해 한국 전통 모자들이 판매되고 있다. / 아마존·이베이

미국의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 아마존과 이베이에서 갓을 비롯해 한국 전통 모자들이 판매되고 있다. / 아마존·이베이

<킹덤> 제작진도 시즌1 이후 점차 늘기 시작했던 갓에 대한 해외의 관심을 드라마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결과 첫 시즌보다 더 많은 종류의 전통 모자가 등장할 정도로 소품에도 많은 공을 들였고, 시즌2 방영 이후 이에 대한 관심도 더 크게 늘었다. 채경화 의상감독은 “첫 시즌에서 한복·갓 등 한국 의복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했다. 시즌2에서는 대나무 갓과 방한용 모자 등 새로운 소품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이나 광장시장처럼 해외 관광객이 자주 방문하는 곳에 갓을 걸어두고 판매하는 기념품 상점도 늘었다.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외국인을 비롯해 찾는 발길은 크게 줄었지만 지난해부터 드라마를 통해 갓을 접한 이들이 많아서인지 전시된 갓을 써보고 사진을 찍거나 구매하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인사동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김모씨(59)는 “지난해부터 전통 모자는 없느냐고 묻는 외국인들이 늘어서 이왕 상품을 구비하는 김에 가장 질 좋은 말총 갓을 들여와 걸어뒀는데, 만져보고 모양과 품질에 감탄하는 관광객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드라마 한 편의 인기로 갓과 전통 모자가 뜻하지 않은 인기 한류 상품이 됐지만 의외의 제품이 해외에서 인기를 끈 경우는 꾸준히 나왔다. 가장 대표적인 품목이 호미다.

밭일을 하며 김을 맬 때 없어서는 안 될 농기구로 국내에서 낯설지 않은 호미가 외국에서는 2015년을 전후해 입소문을 타고 팔리기 시작했다.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는 데 편리하고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각종 농기계 사용에는 익숙해도 사람이 직접 힘을 들이는 농기구는 삽이나 쇠스랑 정도만 생각하던 외국에선 호미가 충격적인 신제품이었던 셈이다.

아마존에서 호미를 판매해 예상치도 못한 매출을 기록한 김태경 리딩트러스트 대표는 2015년 처음으로 호미를 판매하기 시작해 지금은 영주대장간 석노기 장인이 만든 호미를 유통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전통 방식으로 호미를 만드는 장인을 찾아봤지만 예상보다 흔치 않았는데, 그중 전통 제조방식을 고수하는 장인과 계약을 맺고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을 함께 알리며 마케팅을 펼쳤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쓰는 ‘호미(homi)’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 것도 소비자들이 새로운 물건과 한국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한 초기엔 재고가 한 시간 만에 모두 동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모았다. 지금도 아마존에서 하루 평균 300개 정도의 호미를 판매하고 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김 대표는 크기를 다양하게 만들어 제품군도 늘리고, 자루가 긴 서양식 낫에 비해 손잡이가 짧은 전통 낫도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아 판매할 예정이다.

돌솥 역시 예상외로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품목 중 하나다. 쌀로 밥을 지어먹는 문화는 이미 해외에 건너간 교민들의 영향으로 많이 전파됐고, 한국뿐 아니라 일본·중국 등의 전기밥솥도 다용도 조리기구로 알려지기는 했다. 하지만 돌을 소재로 한 조리기구는 쌀 문화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던 제품이었던데다 열을 오랫동안 품고 있는 특유의 장점 덕에 더욱 주목받았다. 조리기구의 성격으로만 보면 정반대지만 양은냄비 역시 해외에서 의외로 인기를 얻는 품목이다. 값이 싸고 빠르게 달아올랐다가 빠르게 식는 특성이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 조리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기름이 빠지는 구멍이 있고 고온에도 재료가 달라붙지 않는 삼겹살용 불판 등도 육류뿐 아니라 다양한 조리과정에 편리하게 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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