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목소리 교육정책에 반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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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우체부’ 참여하는 대학 신입생들이 정치권과 교육당국에 하고 싶은 말

‘잠시 멈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부터 일상을 되찾길 바라는 간절함에서 출발한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한창이다. 초·중·고 개학은 3월 23일로 미뤄졌다. 대부분 대학도 3월 16일 개강을 하고 일정 기간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대학 신입생 7명이 참여하는 ‘생각우체부’ 프로젝트도 잠시 쉬어가고 있다.

‘생각우체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백주희, 이나경, 김재영, 심민기, 김민석씨(왼쪽부터)가 3월 10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정치권·교육당국에 하고 싶은 말을 화이트보드에 쓴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생각우체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백주희, 이나경, 김재영, 심민기, 김민석씨(왼쪽부터)가 3월 10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정치권·교육당국에 하고 싶은 말을 화이트보드에 쓴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생각우체부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교육당국에 또래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꾸려졌다. 만 18세로 첫 투표를 앞두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중랑구의 자율형공립고(일반계 공립고를 대상으로 학교 운영·교육과정 등에 자율성을 부여)를 졸업한 친구 7명이 뭉쳤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계획했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갓 고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생각하는 교육, 이들이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지난 3월 10일 서울 용산구 사걱세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생각우체부 팀원 7명 가운데 ‘사신’ 김민석씨, ‘징징이’ 심민기씨, ‘미신’ 김재영씨, ‘모비딕’ 백주희씨, ‘느경’ 이나경씨 등 5명을 만났다.

틀리라고 내는 문제, 이건 아니잖아요

한국에서 교육은 ‘입시’로 연결된다. 고교의 교육과정 자체가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있다. 대학에 가기 위해선 정시·수시 중 어느 끈 하나라도 놓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내신 준비하는 게 수능 준비하는 거고, 수능 준비하는 게 내신 준비하는 게 되어버렸죠. 고3 때는 교과서로 수업 안 나가요. 문제지로 수업하고, 그걸로 내신 문제도 다 내고요.” 김민석씨가 말했다.

민석씨는 ‘역사광’이다. 국사학과에 진학한 그는 암기 위주의 교육 방식에 불만이 많다. 지난해 6월 수능 모의평가 중 동아시아사 과목의 한 문제를 떠올렸다. 일본이 태양력을 도입한 해에 동아시아에 나타난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답을 고르는 문제였다. ‘중국-상하이에서 <신보(申報)>를 읽는 상인’ 등이 선택지로 제시됐다. 중국 <신보>의 창간연도까지 알아야 했다. 민석씨는 그 문제를 맞추지 못했다. “역사 과목은 흐름을 알고 이해하는 게 중요한데 무조건 외워야 하는 식이죠. 수능 때는 좀 낫겠지 생각했는데 과거 도쿄올림픽이 언제 열렸느냐를 묻더라고요.”

다들 공감한다는 듯 쓴소리를 쏟아냈다. 특히 평가방식의 편협함을 겨냥했다. “틀리라고 내는 문제가 제일 짜증 나죠. ‘알든 모르든, 우리는 속지 않는 놈들만 찾으면 돼’라는 의도니까요”, “속된 말로 문제가 ‘더러워’지는 거죠”, “공부한 만큼 점수가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변별력 가리려고 하니 억울한 문제들이 많이 생기죠.”

재영씨는 왜 배우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어떻게 사회에 활용되는지 알아야 하는데 무작정 배우니까 답답했어요. 그렇게 어려운 영어단어를 쭉 배웠는데 지금 영어를 잘하지 못하잖아요. 차라리 영화 한 편 보면서 배우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암기식·주입식 교육의 근본에는 과도한 경쟁이 있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안다. 주희씨는 “경쟁률이 높다는 건 대학에 가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에서 기인하는데, 경기가 좋아져 대학에 안 가도 먹고살 수 있으면 나아지는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암기 위주의 교육 방식이라도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생활은 만족, 구조가 문제

이들에게 학교에서의 경험은 소중하다. 친구들과 어디에서도 만들기 힘든 추억을 쌓았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좇을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 방과 후 프로그램·동아리 등 다양한 기회가 마련돼 있었다. 생각우체부 팀원들은 고교 3년, 공교육 12년을 통틀어 “다방면으로 성장할 기회였다”고 했다.

이날 만난 5명은 과도한 사교육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교육을 두고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물고기를 낚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잡아주는 꼴이 아닌가”, “주체적으로 활용한다면 더 나은 학교생활을 하도록 돕는다”, “공교육이 그만큼의 빈자리를 메꾸면서 사교육을 완화해가야 한다.”

대학입시가 정시와 수시로 나뉘고, 수시도 학생부종합(학종)·학생부교과·논술·적성 등 갈래가 많기 때문에 개개인의 경험은 달랐다. 민기씨는 “학종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내 캐릭터를 만들어 대학의 인재상에 맞추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소한 활동에도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정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단다.

나경씨의 생각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는 “처음 자기소개서를 쓸 땐 내 얘기가 아닌 것 같았는데 ‘이때 이거 했었지’ 하면서 솔직하게 엮어나갔다. 그런 과정이 자아 성찰을 하고 10대를 매듭짓게 해준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면접을 준비하면서도 ‘진짜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면접 전날 대본을 엎었다. 그렇게 하니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시민이 가장 절실하게 느낀 교육의 문제점은 뭘까. 민기씨는 ‘낙오자가 있어야 승리자가 있는 구조’를 꼽았다. “선생님들이 ‘모두 수능 잘 보기 바랍니다’, ‘원하는 대로 이뤄지길 바랍니다’고 해도 한 반 30명 중 몇 명은 떨어져야 누군가는 붙는 구조다 보니 가혹하게 느껴져요.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할 순 없더라도 제도적으로라도 보완해주면 좋겠습니다.” 재영씨도 “치열하게 경쟁하게 만드는 구조가 가장 문제”라며 “대학에 합격하지 않아도 잘될 수 있다고 하지 않고, 대학은 꼭 가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부터 잘못됐다”고 했다.

주희씨가 한마디 보탰다. “교육이 계층 간 사다리 역할을 못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게 가능했는데, 요즘은 ‘금수저’라고 하듯 부모 재력에 따라 교육을 접할 수 있는 수준의 질이나 양이 다르니까요.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생각우체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백주희, 김재영, 심민기, 김민석, 이나경씨(왼쪽부터)가 3월 10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한국의 교육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생각우체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백주희, 김재영, 심민기, 김민석, 이나경씨(왼쪽부터)가 3월 10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한국의 교육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

생각우체부 팀원들은 정치권과 교육당국을 향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말한다. “교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정작 우리한테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정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사자의 말을 전부 반영하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더 이상 ‘어, 바뀌었네. 어쩔 수 없지’라며 어이없어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요….” 민기씨의 말이다.

민석씨는 “흔히 교육의 주체로 학생·학부모·교사가 있다고 하는데 세 명의 이야기를 안 들어주니 셋 다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1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가 멀다 하고 교육정책이 계속 바뀌니까 학생 입장에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어요. 학생들도 각자 생각이 달라요. 그렇지만 의견이라도 낼 수 있으면 어떤 정책이 나와도 납득은 할 수 있는 거죠. 지금은 ‘아니 왜?’라는 질문이 나와요. 정시 비중 늘린다고 해도, 고교학점제 실시한다고 해도 ‘왜?’라는 말이 따라붙어요. 아무런 설명도 안 해주고 이렇게 정했다고만 얘기해주니까요.”

나경씨는 교육제도에 변화가 있을 땐 최소한 공고를 내거나 설문조사라도 해주길 바란다. 그는 2021학년도 수능 수학 가형 출제범위에서 기하와 벡터가 빠지는 것을 두고 “대학 공부에 필요한 기초소양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 빠진다고 생각한다. 입시제도·출제범위 등이 자꾸 바뀌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취지가 좋은 정책이라도 내실 있게 추진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자유학기제’가 그 예다. 주희씨는 “중학교 때 자유학기제를 체험했는데 직업을 체험한다기보다 구경하고 끝나는 느낌이었다”며 “제도 시행에 필요한 준비 없이 너무 이상향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민석씨도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동생이 자유학기제를 경험했는데 영화 보고 놀이공원 갔다. 이럴 거면 왜 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고 했다.

재영씨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왜 그래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교육 현실에는 ‘어떻게’와 ‘왜’가 빠져 있다. 그는 “학교에서 많은 일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가지고 온 지식이 많지 않다”며 “내가 느낀 허무함이 후배세대에 전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길을 꼬불꼬불하게 만들어놓고 미로를 잘 탈출해나간 사람만이 승리자가 되는 현실, 민기씨가 생각하는 교육의 현주소다. 그는 “정시든, 수시든 가능한 모든 정보를 다 취하고 전략 짜는 걸 필요로 하는 입시를 물려주고 싶진 않다”고 했다.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끝나진 않은 과제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더 이상 당사자는 아니지만 교육문제에 대해 관심을 놓고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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