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유연근무 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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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근무시간·장소 선택… 리모트 워크도 연습 필요

“출·퇴근을 준비하고 차로 이동하는 데 하루 1시간 이상을 씁니다. 지금은 재택근무로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바로 일할 수 있으며, 남는 시간에는 운동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다만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이 한곳에 있다보니 집중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SK이노베이션 직원 ㄱ씨)

슬로워크 직원의 홈오피스 모습. 에스프레소 머신을 두고 카페처럼 공간을 꾸미거나 사무실처럼 느낄 수 있는 포스터를 붙이기도 한다./슬로워크 제공

슬로워크 직원의 홈오피스 모습. 에스프레소 머신을 두고 카페처럼 공간을 꾸미거나 사무실처럼 느낄 수 있는 포스터를 붙이기도 한다./슬로워크 제공

“출근할 때 늘 지하철에서 낀 채로 다녔고, 회사 엘리베이터도 몇 대 걸러야 탈 수 있었는데 이젠 집에서 일어나 PC만 켜면 근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자료를 쓸 땐 오히려 근무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KT 직원 ㄴ씨)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다양한 산업군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염병 확산이 재택근무를 비롯한 원격·유연 근무의 효과를 검증하는 ‘사회 실험’의 기회가 된 것이다. 재택근무를 잘 활용하려면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 전하는 팁이 도움이 된다. <주간경향>은 재택근무나 유연 출·퇴근제를 오래전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와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회사 ‘슬로워크’, 콘텐츠 플랫폼 기업 ‘리디’ 종사자들에게서 재택근무 잘하는 법을 들었다.

나만의 업무 ‘루틴’을 정한다

슬로워크나 빠띠는 코로나 이전부터 유연근무를 택한 곳이다. 직원들은 그날 상황에 따라 집에서 일하거나 오전은 집에서 일하고 오후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식으로 자유롭게 택할 수 있다. 성노들 슬로워크 오렌지랩 팀장(31)은 “원격근무는 ‘책임을 다한다면 내 근무 환경은 언제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철학에서 시작한다”며 “지옥철이라는 말처럼 직장에 가는 길을 고통스럽게 느끼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완전히 끝내자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재택근무를 하면 옆에서 보는 눈이 없어 긴장감이 떨어지고 늘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만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하는 공간을 정해놓거나 평소 출근길에 하던 습관이나 옷차림을 유지하거나 일의 시작과 끝, 휴식시간을 정해놓는 일이다. 성노들 팀장은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씻고 차를 마신 후 향을 피운다. 조용한 상태를 못 견디는 편이라 음악을 켜놓고 아침 10시 전후로 동료들과 업무를 공유한 후 일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적당한 소음이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식당 분위기 소리’를 찾아 틀거나 넷플릭스에서 ‘가상의 따뜻한 벽난로 소리’를 켜두는 사람도 있다.

빠띠의 김금진씨(31)는 일할 때 상의는 외출복을, 하의로 편안한 고무줄 바지를 입는다. 꽉 낀 바지를 입어 소화가 안 되는 일은 없다. 김씨는 강아지를 키우는데 화상회의 때 반려동물이 짖거나, 육아를 하는 직원들의 경우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려도 구성원이 서로를 배려해주는 분위기라고 했다.

퇴근 무렵 빠띠와 슬로워크의 직원들은 ‘항해일지’라는 기록을 남긴다. 하루 업무를 마무리하면서 좋았던 점, 아쉬운 점, 내일 할 일을 적어 공유하는 작업이다. 성 팀장은 “일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 산책하면서 예쁜 강아지를 만났을 때처럼 감정적으로 좋았던 일을 적거나 내일 중요하게 할 일을 정리해 전체가 볼 수 있는 채널에 공유하고 일을 마친다”고 말했다. 이런 활동 덕분에 얼굴을 보지 않아 바로 확인하기 어려운 팀원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함께 고민하고 일한다는 감각을 키울 수 있다.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은 대개 구글 캘린더로 일정을 공유하고, 협업용 메신저인 ‘슬랙’으로 의견을 교환한다. 화상회의가 필요할 때는 구글 미트(Meet)나 줌(ZOOM)을 이용한다. 아사나(asana)나 구글 지스위트(G Suite) 같은 클라우드 기반의 공동작업 도구를 활용해 문서를 작성,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출·퇴근 기록은 슬랙의 애드온 기능을 이용한다.

김씨는 “일주일, 하루 단위로 할 일을 정하고 오늘 협업할 부분도 정한다”며 “구글 캘린더를 공유해 동료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고, 식사 시간은 언제로 정했는지까지 확인해 모두가 가능한 시간을 잡아서 화상회의를 한다”고 말했다.

재택근무에 대한 불만의 하나는 카톡 등 메신저로 끊임없이 날아오는 ‘지시’나 ‘확인 요청’이다. 상사가 식사와 휴식시간까지 간섭하는 ‘마이크로매니징’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김씨는 “리더는 누군가가 과도하게 일을 하거나 협업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을 때 관리해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며 “직원들에게 업무의 주도권과 근무 환경의 자율성을 주지 않으면 재택근무는 정말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마이크로매니징’의 유혹 벗어나려면

일정 공유는 이런 마이크로매니징의 유혹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성 팀장은 “물어보지 않아도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자기 일정을 계속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매일 아침 할 일을 공유하고 리더가 일을 잘 위임하기만 하면 굳이 마이크로매니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이렉트 메시지로 하는 비공개 소통을 최대한 지양하고 투명하고 공개적인 소통을 하는 것도 팀원 간 신뢰를 쌓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업무의 이력을 기록한 ‘히스토리’도 도움이 된다. 인사 이동이나 신규 입사로 낯선 업무를 맡아도 굳이 전임자에게 물어볼 필요 없이 온라인상의 문서로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리디의 최해월 팀장은 “전사 재택근무 기간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직원들도 점점 본인만의 업무 방식과 장소, 시간을 조절해 가는 상황”이라면서 “지난 10년 동안 업무 히스토리 관리 체계가 잘 잡혀 있어서 재택근무로 전환해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바로 시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택근무를 할 경우 감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줄어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재택근무의 핵심을 ‘오버커뮤니케이션’으로 보기도 한다. 성 팀장은 “똑같은 말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반복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내용을 흘려듣기 쉽다”며 “얼굴을 안 보면 같은 말을 해도 상황에 따라 왜곡해 받아들일 수 있어 회의할 때 화상으로 하지 않아도 감정 상태를 알 수 있도록 목소리는 꼭 듣는다”고 말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즉각 필요한 때 답변을 얻기 어렵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재택근무의 비효율성 요인이다. 이것도 소통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메시지를 보낼 때 필요한 모든 내용을 한 번에 전달하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OO님” 하고 상대방이 답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성 팀장은 “‘안녕하세요’라고 보냈는데 답이 없으면 그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해서 다른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며 “한 번에 추가로 묻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로 정보를 정리해 보내고 가능하면 언제까지 해주면 좋겠다고 마감까지 설정하면 서로 일을 덜 방해하는 상태로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협업을 위한 소프트웨어 교육도 필요하다. 화상통화와 클라우드 기반의 메신저, 문서·일정 공유 소프트웨어 등을 막상 쓰기가 쉽진 않기 때문이다. 성 팀장은 “신규·경력 입사자들은 ‘금귤과정’으로 불리는 4주간의 교육을 받으면서 슬랙이나 지스위트, 빠띠 그룹스 같은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배우고 실습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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