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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판매상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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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 참고인 진술로 검찰에 붙잡혀 재판에… 1심에서 무죄 받아

김주호씨(43·가명)는 2019년 6월 18일 오전 11시 10분 대구 수성구의 대구구치소 민원인 주차장에서 체포됐다. 지인의 면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검찰수사관은 그에게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했다. 수사관은 김씨가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 3개와 그의 집에서 나온 마약사범 지인들이 보낸 편지를 가져갔다. 렌터카업체에 보관 중이던 그의 또 다른 차량도 수색했다. 차량 안에서 죄를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에게 적용된 죄명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필로폰을 2명(ㄱ씨·ㄴ씨)의 마약사범에게 판매한 혐의였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2015년 12월 하순 오후쯤 대구 수성구의 한 식당 주차장에서 ㄱ씨로부터 120만원을 받고, 비닐 지퍼백에 든 필로폰 10g을 전달했다. 또 2016년 1월 초 오후 11시쯤 대구 수성구 황금지구대 앞 길에서 또다시 ㄱ씨에게 120만원을 받고 필로폰 10g을 판매했다. ㄱ씨는 참고인 조사에서 “40대 중·후반 정도의 경찰관이 지구대 안에서 필로폰을 들고 나와 김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ㄱ씨의 진술에 따르면 필로폰의 최초 전달자에 해당하는 성명불상의 경찰관은, 그러나 기소되지 않았다.

필로폰 판매 혐의로 체포

마약수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2 대 1’의 원칙이 충족돼야 한다.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진술밖에 없을 때는 적어도 2명 이상의 마약사범이 동일한 진술을 해야 상선(판매상)이든, 하선(매수인)이든 1명을 잡아 유죄판결을 받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진술을 토대로 검거한 피의자의 소변이나 모발 등에서 마약이 검출되면 금상첨화다.

이 사건에서도 ‘2 대 1’의 원칙은 지켜졌다. 집행유예 기간 중 필로폰투약 혐의로 구속된 ㄴ씨가 김씨를 상선으로 지목했고, ㄱ씨도 김씨로부터 마약을 2차례 사들였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ㄱ씨도 ㄴ씨의 진술에 부합하는 얘기를 했다.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두 사람의 참고인 진술조서를 근거로 김씨에 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2명이 동일한 진술을 할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죄판결이 내려지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김씨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진술을 뒷받침할 직접적인 증거가 단 하나도 없었다. 증거라고 내놓는 것들은 오히려 법정에서 이들의 진술이 잘못됐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됐다. 그러나 검찰은 불기소 대신 재판에 넘기는 선택을 했다. 검찰이 왜 그랬는지 알 길은 없다.

ㄱ씨는 2019년 6월 5일 첫 검찰 참고인 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녁 9시쯤 나이트클럽 맞은편 꼬치집에서 둘이 만나 소주 2병을 마시면서 주호 형이 술에 취하니까 ‘니, 돈 갖고 왔나’라고 물어서 확실히 기억이 안 나는데, 거기서 돈을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형님, 돈을 준비해 놓았습니다’라고 말을 했어요. 밤 10시 조금 넘어 꼬치집에서 나와 저한테 ‘차 운전해라’라고 해서 제가 차를 몰고 주호 형이 시키는 대로 가니까 ‘경찰서 지구대 앞에 차를 세워라’고 해서 세우니 형이 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데 ‘히야(형의 대구 사투리) 앞에 왔다’, 이런 식으로 통화를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바로 지구대에서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나왔고, 주호 형은 차에서 내려 ‘히야’ 이러면서 그 경찰관과 이야기를 하더니 저한테 나오라고 손짓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차에서 내리니 주호 형이 그 경찰관한테 동생이라고 하면서 인사를 하라고 해서 제가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ㄱ씨의 진술에는 경찰관이 등장한다. ㄱ씨는 김씨가 자신은 차 안에 들어가라고 한 뒤 경찰로부터 받은 것을 건네줬고, 확인해보니 필로폰이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조서에 적힌 그의 말이다.

점점 드러나는 거짓말

“‘형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 사람 누굽니까?’라고 물으니 ‘동네 히야다’라고 해서 ‘형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전에 히야 직원한테 (마약) 받는다고 말을 안 하더나. 니는 히야(김씨)가 다친다고 걱정했지, 히야는 절대고 그럴 일 없다. 제일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다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형님, 지구대 사람이 어떻게 (필로폰을) 갖고 있습니까? 어디서 나왔습니까?’라고 물으니, ‘마수대 통해서 나왔는 거다’라고 했습니다. ‘저 분이 계속 주머니에 갖고 다닙니까?’라고 물으니 ‘지구대 안에 보관하고 있다. 히야가 안 카더나. 제일 안전한 곳에 있다고 안 하더나’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됩니다.”

검찰수사관은 다시 확인 질문을 한다. “마수대라는 말은 어디를 말하나요.”

ㄱ씨는 “대구시경 마약수사대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김씨가 예전에는 필로폰을 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말도 했다. ㄴ씨 역시 김씨가 대구 중동네거리에서 크레도스 차를 타고 온 사람으로부터 필로폰을 받아 자신에게 10g에 200만원을 받고 팔았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또 크레도스에 타고 있던 사람이 그 경찰관인 것 같다고도 했다. 이들의 진술은 꾸며냈다고 하기에는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김씨는 총 3차례에 걸친 이들의 참고인 조사가 마무리된 지 5일 뒤 검찰에 붙잡혔다.

ㄱ씨와 ㄴ씨의 진술은 얼마 못 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ㄱ씨가 김씨로부터 마약을 받았다는 날짜와 장소가 명확하지 않았다. 처음 마약거래가 이뤄진 날 ㄱ씨는 약속한 식당이 어딘지 헷갈려 다른 장소로 갔고, 그 바람에 오후 2~3시쯤 김씨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고 진술했다. 또 식당에서 김씨의 지인을 만나 김씨가 지인의 밥값까지 계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와 ㄱ씨가 만났다는 날 김씨가 식당에서 카드결제를 한 시각은 ‘늦은’ 점심시간대가 아니었다. 결제액수 역시 지인의 몫까지 샀다고 보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김씨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나온 두 사람의 당일 대화 내용을 봐도 ‘늦은 점심’은 사실과 달랐다. 결정적인 오류는 필로폰 대금 120만원의 출처였다. ㄱ씨는 A은행에서 120만원을 인출해 김씨에게 줬다고 했지만 그 시점 전후 어디에도 거액의 돈이 인출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또 다른 거래은행인 B은행에서도 돈이 인출된 흔적은 없었다. ㄱ씨는 이후 직원이 현금으로 돈을 마련해줬다고 진술을 바꿨지만 해당 직원에 대한 검찰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ㄴ씨는 ㄱ씨가 김씨로부터 사들인 뒤 쓰고 남은 필로폰 일부를 자신이 흡입했다가 쇼크로 응급실에 갔다고 검찰조사 당시 밝혔다. 의료기록만 확인된다면 상당히 신빙성 있는 진술이었다. 그러나 병원기록상 ㄴ씨가 응급실에 간 날짜는 ㄱ씨가 김씨와 마약거래를 했다고 진술한 시점보다 이전이었다.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 심지어 ㄱ씨가 2016년 1월 마약투약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을 당시 상선을 김씨가 아닌 다른 여성으로 진술했던 피의자 진술조서까지 등장했다. 2016년 1월은 ㄱ씨의 진술에 따르면 김씨와 2번째 마약거래가 이뤄진 시점이었다. 그러나 2016년 1월 당시 ㄱ씨의 피의자 진술조서 어디에도 김씨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ㄴ씨는 검찰조사에서 2016년 1월 김씨가 길 건너편에 정차한 크레도스에서 가져온 휴지뭉치를 200만원을 받고 건네줬고, 휴지뭉치를 풀어보니 비닐 지퍼팩 안에 필로폰이 들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200만원은 직원이 현금으로 마련해줬다고 했지만 이 직원에 대한 검찰조사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만났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통화내역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검찰은 김씨가 ㄴ씨에게 필로폰을 판매했다는 혐의를 공소사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최초 제보자인 ㄴ씨의 진술은 모두 빠진 셈이다. 불기소 결정문도 존재하지 않는다.

김씨는 “ㄴ씨가 검찰로부터 공적조서를 받을 목적으로 ㄱ씨와 짜고 자신을 상선으로 둔갑시켰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ㄱ씨와 ㄴ씨가 서로 짜고 일을 꾸몄다는 증거물로 A4용지 2장짜리 편지도 검찰에 제출했다. ㄱ씨의 친구가 ㄱ씨로부터 받은 편지를 찍은 사진파일이었다. 편지에는 “(주호) 형님이 진술하는 조건으로 형님이 사실인정만 하면 약식벌금으로 끝내준다는 거고, 또 OO(ㄴ씨)랑 얘기해서 형님이 렌트 쪽으로 업을 하실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확답도 받았고, 암튼 정말 죄송하고, 일단은 전화기 바꾸고 내 나갈 때까지만 피해다니시라고 바로 전화해서 말씀드려라. (중략) 진술하는 조건에도 내가 검사한테 직접 형님이 인정만 하면 그냥 약식벌금으로 끝내주겠다는 대답도 들었다고 말씀드려라”라고 적혀 있다. 김씨는 “두 사람이 짜고 나를 엮었다”며 이 편지를 증거로 제출했지만 검찰의 해석은 달랐다. 김씨가 마약을 판 사실을 이들이 공적에 활용하게 돼서 미안하다는 내용으로 해석한 것이다.

김씨는 모든 조사에서 일관되게 “마약을 하지 않고, 판 적도 없다”고 진술했지만 검찰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체포 직후 채취해 모발과 소변에서도 마약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김씨는 기자에게 “2차 조사 때는 검사님이 ‘경찰 이름만 대면 당신 풀어줄 수도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님이 당시 배석한 변호사에게도 ‘잘 해결될 수 있도록 해줄 테니 설득해달라’고 말했다”고 했다. 당시 김씨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는 그러나 “그런 말을 검사로부터 들은 적은 없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김씨는 기소된 이후 변호사를 교체했다.

무죄판결에도… 전과자라는 편견

지난 2월 18일 대구지법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무죄였다. 재판부는 “ㄱ씨·ㄴ씨의 진술 등은 일관되지 않는 등으로 믿을 수 없고, 달리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공소사실을 인정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검찰이 유죄의 증거로 제출한 모든 사실관계가 잘못 구성돼 있거나 법정에서 입증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유일한 증거이자 증인인 ㄱ씨는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관이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필로폰을 수수하도록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도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수사과정에서 압수한 마약은 국과수에 검사의뢰를 하는 소량을 제외하고는 전량 검찰에 송치할 때 함께 보내야 하고, 단 1g의 오차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면서 “마약수사대 안에 압수물 보관금고가 있는데 마약을 지구대에 보관하게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것을 판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압수물에 조금이라도 오차가 발생하면 검찰이 경찰을 가만두겠나”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김씨와 ㄱ씨의 대질신문에 등장한 경찰관에 대해 한 차례의 조사도 벌이지 않았다.

김씨는 2019년 12월 19일 재판부가 보석을 허가하기까지 꼬박 6개월간 구속돼 있었다. 김씨의 변호인인 김인석 변호사는 “애초에 영장이 발부된 것도 신기하다”며 “영장 발부 시점에도 참고인 진술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김주호씨는 나중에는 검찰이 계속 다른 증거도 없이 ‘자백하라’고만 하니 조사에 불응했다”고 덧붙였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전과 10범의 한 마약사범의 말이다. 그는 “우리 같은 마약사범들이 조사를 받아보면 검사든, 경찰관이든 ‘이 사람이 마약을 했을 것’이라고 믿어버리면 무죄 증거까지도 유죄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20여 년 전 중범죄로 10년을 복역한 전과자다. 한때는 대구지역의 조직폭력배로 활동하기도 했다. 주변에 마약사범인 친구들도 있었다. “억울하다”는 김씨의 말이 악어의 눈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김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주변에 마약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마약을 하면 끝이 얼마나 처참한지 알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마약을 하거나 거래를 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무죄판결 사흘 뒤인 2월 20일 항소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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