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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세계’ 구치소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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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범들 수용시설에서 판매상들 알게 되고 재범, 마약판매사범으로 이어져

“상선 하나밖에 없던 놈이 거기 한 번 다녀오면 이제 정보망이 뚫리는 거지.”

한 마약사범의 얘기다. 여기서 상선은 ‘마약 판매상’을 말한다. ‘거기’란 구치소 혹은 교도소를 말한다. 정보망은 마약 거래가 가능한 연락처 및 인맥을 뜻한다.

tvN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한 장면 / tvN캡처

tvN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한 장면 / tvN캡처

마약사건의 법 절차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는 누구일까. 강력부 검사일까, 마약수사관일까, 마약사건을 많이 맡은 변호사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변호사 인맥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마약사범이고, 마약의 소지 형태, 구입 마약의 종류 및 수량, 투약 횟수에 따른 형량,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에 대한 분석까지 자유자재로 가능한 사람도 법조인이 아닌 마약사범이다.

단순 투약으로 체포된 마약사범은 초범일 경우 대부분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다. 만약 초범이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형을 선고받았다면 구치소나 교도소에 갈 일은 없다. 이 말은 곧 또 다른 마약사범들을 접할 일은 없다는 말이다. 문제는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 초범의 경우다.

구속상태에서 재판 받는 초범들 경우

구치소의 하루는 단순하면서 길다. 마약사범들의 하루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된다. 대략 오전 5시 40분에서 6시 사이에 기상한다. 이불을 개고 주변 청소를 한 뒤 오전 6시 30분쯤 아침점호를 한다. 오전 7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8시에 또 한 번 점검한다. 이후 재소자들의 일정은 제각각이다. 재판 중인 재소자들은 변호사 접견을 한다. 기소 전 구속상태인 재소자는 검찰수사를 받으러 나가거나 변호사 접견을 한다. 면회신청이 들어오면 면회를 하러 나간다. 그 외 별다른 일정이 없는 재소자들은 종일 방안에 머무른다. 마약전과 10범인 정모씨는 “방안에서 편지를 쓰거나 반성문을 쓴다. 정말 하루종일 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 마약사범은 “할 일이 없으니 주야장천 방안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대화의 주제는 거의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형량을 줄일 수 있을지, 어떤 변호사가 무죄판결을 잘 끌어내는지, 공적조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논의가 이뤄진다. 전과가 많은 마약사범은 자신의 노하우를 여기서 풀어놓는다. 이미 전과가 여러 개 있는 마약사범들은 자신의 ‘무용담(?)’과 함께 수사기관이 적발하지 못한 여죄를 털어놓기도 한다. 이 ‘여죄’가 공적조서 작성용 미끼로 거래되기도 한다. 초범들은 갇혀 있는 몇 개월 동안 구치소 안에서 그동안 몰랐던 다양한 ‘마약의 세계’를 학습하게 되는 셈이다. 구치소마다 한 방에 많게는 16명의 재소자가 함께 생활한다.

“구치소마다 방의 크기는 다른데 우리끼리는 ‘소방(小房)’, ‘중(中)방’, ‘대(大)방’ 이렇게 부릅니다. 인천구치소는 소방은 없고 중방과 대방만 있는데 중방은 수용인원 9명에서 많게는 11~12명까지도 집어넣고, 대방은 14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16명까지도 넣습니다. 수원은 소방에 6명, 대방에 10명 정도 수용하는데 대방에 11명까지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양은 전부 대방인데 16명이 들어갑니다. 재소자 한 명당 1평(3.3㎡)도 못 가져요. 잠잘 때는 다리를 서로 교차해서 잡니다.”

구치소든 교도소든 마약사범은 일반 범죄사범과 분리해 관리한다. 마약사범은 마약사범들끼리 모여 지낸다는 얘기다. 초범부터 재범, 마약판매상, 마약제조업자까지 한 방에 다양한 종류의 마약사범이 모여 있는 경우도 있다. “운동도 할 수 없지, 면회 오는 사람도 없고, 영치금이 없어 우표를 살 수 없으면 편지도 못 쓰지… 그러면 그냥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마약과 관련된 ‘썰’만 풀다가 하루를 보내는 거죠.”

미결수 신분이라 치료교육도 못 받아

대부분의 초범은 ‘다시는 마약을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구치소에 들어온다. 그러나 대부분이 출소 후 또다시 마약에 손을 댄다. 이유는 단순하다.

“수감 기간 동안에는 마약 생각이 전혀 나지 않다가 출소를 하면 슬슬 (마약) 생각이 들어요. 출소하는 순간부터 마약사범으로 낙인찍혀 통장도 만들 수 없고, 변변한 직업도 가질 수 없으니 마약에 또다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만나서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도 대부분 없어요. 고립된 상태에서 구치소에서 ‘형, 동생’하며 지냈던 사람들에게 연락해 상선을 구하죠. 그 전에는 상선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면 이젠 쉽게 구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상선 입장에서도 출소 후 마약 거래를 할 인맥을 쌓게 되는 거고요.”

이런 이유로 마약 초범→재범→마약판매사범으로 가는 루트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초범상태에서 집행유예로 출소해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시 투약하다 적발돼 징역 2~3년의 실형을 선고받는 일은 실제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심지어 일부 상선들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 형량을 덜기 위해 구치소에서 만난 초범을 하선으로 잡아 일종의 ‘함정식’ 판매를 하기도 한다. 공적조서를 받을 의도로 일부러 마약을 넘기고, 그 현장을 경찰이나 검찰에서 적발하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형량 줄이기에 활용한다는 말이다. 이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 초범들이 사회로 복귀할 방법은 점점 더 사라지게 된다. 마약사범의 재범률이 여타 범죄에 비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박영덕 실장은 “마약 초범이 불구속 상태에서 운동본부를 찾아 중독상담을 하고, 치료하면 그나마 ‘골든타임’ 내에 구제가 가능하지만 구속상태에서 재판받는 초범들은 본부가 개입할 방법도 없고, 결국 그 안에서 또 다른 마약을 접할 방법을 배워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마약전과가 있다. 박 실장은 “초범은 구치소에서 예전 같으면 보기도 힘든 전과 10범 이상의 마약사범부터 판매상까지 만나게 되고, 약을 오래 한 사람들은 우월감을 갖고 초범들에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안에서 분위기에 휩싸여버리면 재범을 막을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구치소의 기능상 한계로 마약사범들에 대한 치료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구치소에 있는 마약사범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결수 신분이다. 형이 정해지지 않은, 재판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때문에 형이 확정된 기결수를 대상으로 하는 마약치료교육을 할 수가 없다. 마약사범이 아닌(무죄를 받은) 사람은 교육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결수를 대상으로 한 중독치료교육 역시 전국 교도소 가운데 극히 일부 교도소에서만 실시하고 있다. 8개 교정시설에서 13회의 중독치료 교육(교육대상 기준도 교정시설마다 제각각이다)이 마약사범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전부다. 초범인 마약사범의 경우 처벌보다 치료를 우선적으로 실시해 재범의 고리를 끊어줘야 한다는 지적은 의약계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주장돼 왔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장 등 연구진이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발주로 발표한 ‘마약중독자 관리제도 개선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는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중독치료에서는 재발현상을 치료의 실패가 아니라 매우 정상적인 치료과정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재발은 중독에서 회복하는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회복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현행법상 재발현상은 재범과 구분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보호관찰이나 치료보호 과정에 있는 마약류 중독사범에 의한 재발현상이라 하더라도 재범으로 상습가중위반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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