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배당금당 ‘허경영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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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후보 1000명 돌파… 전국 예비후보 2460명 중 40% 넘어

의문이 들었다. 신인이라니? 1987년 신민당, 1992년 진리평화당 시절엔 기탁금이 없어 대선후보 등록이 사실상 불발됐지만 1999년에는 공화당 후보로, 2007년 대선 때는 경제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던가. “새마을 운동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라며 “기호 8번 찍으면 팔자 핀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대통령 후보 허경영. 그런 그가 정치신인이라니.

3월 8일, 경기 양주의 하늘궁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 총재./정용인 기자

3월 8일, 경기 양주의 하늘궁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 총재./정용인 기자

여의도 국가혁명배당금당 당 사무실에서 만난 열성 지지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신인이 그 ‘신인(新人)’이 아니라 ‘신인(神人)’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박정희 대통령 탄신기념일에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던 어느 지자체장은 있었지만 그건 비유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진짜 하늘에서 인간의 몸을 빌려 내려온 신(神)”이라고 이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정치 빈 공백 치고 들어가기 주효

지난 3월 3일 국가혁명배당금당 예비후보가 1000명을 돌파했다. 전국 등록예비후보 2460명 중 이 당 소속은 3월 5일 현재 1009명이다. 전체의 40%가 넘는다. 공천을 확정한 여·야 주요 정당의 예비후보들은 속속 사퇴하고 있지만 이 당의 예비후보는 여전히 증가세다.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이 당 소속 예비후보가 가장 많은 곳은 세종시로 24명이다. 허경영 당 총재의 본거지인 ‘하늘궁’이 있는 경기 양주로 등록한 예비후보도 20명이다. “우리 당과 다른 당의 차이는 후보등록에 일절 한 푼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당 공천헌금 같은 것도 없습니다.” 송순권 국가혁명배당금당 사무총장의 말이다. 물론 추가적인 비용은 있다. 선관위에 내야 하는 예비후보 기탁금 300만원이다. 후보를 사퇴하면 이 돈은 돌려받는다. 다만 경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에 따르면 예비후보 전원이 출마하는 것이 아니다. 3월 중순까지 당원 자체 여론조사 등을 거쳐 최종후보를 결정한다.

“스펙이나 인물, 이런 것은 솔직히 우리가 볼 것은 없어요.” 기자가 만난 정모씨(58)의 말이다. 이 당의 예비후보‘였다’. 정씨는 자신이 ‘14살 때부터 운전도 하고, 중국집 보이도 했고, 유흥업소 일도 해본’ 서민 출신으로 현재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말했다(선관위의 예비후보자 정보에 그는 국졸로, 건설회사 이사로 표기되어 있다). 그는 허경영 총재의 존재를 15대 대선후보로 출마했을 때부터 알았지만, 본격적으로 안 것은 3년 전 유튜브에서 허 총재의 영상을 접하면서부터라고 했다. “골재사업을 하고 있는데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지난 1년간 사업 자체가 전멸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많이 남아도니 유튜브를 보게 되었고, ‘아, 총재님을 만나러 가야겠다’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이번 총선 자신의 지역구에서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의 당선은 떼 놓은 당상이라고 말했다. “경제는 총재님이 말씀한 대로 20세 이상이면 월 150만원씩 배당금이 만날 나오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총재님이 좋아서 우리가 나오는 거고.”

“허경영당에 전과 10범에 성추행범, 살인 전과가 있는 후보도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 있다. 허경영 총재는 기자에게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자들의 전과자 비율은 24%로, 현재 후보를 낸 정당 중 가장 낮다”고 주장했다(확인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선관위는 정당별 전과자 비율 통계를 공개하지 않는다). 정씨가 등록한 지역구 당 후보들 중에는 전과 9범도 있다. 정씨도 선관위 정보에는 5개의 전과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씨는 “전두환 정권 때 친구와 길을 가다가 잡혀 삼청교육대에 3년간 끌려간 적 있다”라며 “나머지도 젊었을 때 있었던 혈기에 벌어진 사소한 다툼 때문에 생긴 전과들”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그가 이 당의 예비후보‘였다’라고 쓴 것은 당 후보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낙점됐기 때문이다. 낙점받았다고 하는 후보도 성폭력 특례로 2017년도에 200만원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다. 국가혁명배당금당 예비후보들의 전과기록을 보면 대부분 교통사범이 많다. 국회의원 예비후보 등록자 중 가장 흔한 전과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전과기록은 다 없앨 것이다.” 3월 4일 기자를 만난 허경영 총재의 말이다. 그가 거주하고 있는 경기 양주의 ‘하늘궁’에서 1시간 남짓 인터뷰를 진행했다.

앞서 정씨 사례처럼 후보자가 결정되는 방식은 허 총재가 관여한 ‘천사 오링테스트’다. 엄지와 검지로 O자를 만들게 하고, 허 총재가 주관해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천사’에게 “후보자가 되겠습니까”라고 자문하는 방식이다. 손가락이 안 벌어지면 긍정이고, 벌어지면 부정이다. 이날 정씨는 그 ‘오링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해 후보자에서 탈락했다. “내가 우짭니까. 천사가 아니라는데. 우리는 욕심이 없어요.” 정씨가 남긴 말이다. 송 사무총장은 “이 신인(神人) 천사 테스트와는 별도로, 선관위가 요구하는 서류적 절차는 다 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 총재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코로나 정국에서 국회의원에 들어가는 즉시 서민생계지원금을 한 가구당 1억원을 지급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과반보다 1석 많은 151석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에 못 미친다면 전원 사퇴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의 말이다. “무조건 우리를 찍어야 1억원을 받을 거 아니야. 민주당이나 미통당이나 그놈이 그놈이야. 담배 한 개비, 커피 한 잔 안 주잖아. 그러면 국민이 작당을 합니다. 151명만 붙으면 1억을 준대. 이번에 국가혁명배당금당을 밀어주자는 바람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돼 있어.”

‘천사 오링테스트’로 결정될 후보들

2000만 가구에 세대당 1억원을 지급하면 2000조원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허 총재는 “당선되고 나면 양적 완화, 돈을 찍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유동통화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가장 적기 때문에 인플레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허 총재의 주장이다. 1997년 IMF 환란 위기를 일본은 8000조 엔의 양적 완화를 했기 때문에 넘겼는데, 한국은 인플레 우려 때문에 IMF에 돈을 꿔서 서민 고통을 유발했고, 국가 망신을 당했다고도 주장했다. 허 총재의 주장은 팩트가 아니다. 1997년 환란은 외환보유액 고갈 때문에 발생했다. 한국 돈을 찍는 방식이 아니라 통화스와프가 하나의 해법일 수는 있다. 하지만 당시 ‘강 건너 불구경’을 하던 일본은 통화스와프를 거절했다. 허 총재의 주장에 기자 인터뷰에 배석한 열혈 장년층 지지자들은 박수를 쳤다. 믿는 분위기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3월 3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허경영과 1000명에 육박하는 출마자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국가혁명배당금당 출마자들의 나이와 학력, 직업의 다채로운 ‘서민대표성’을 거론하며 “청년 당사자 정치가 유효하다면 이들의 장년 당사자 정치도 유효하고, 노동자 당사자 정치가 유효하다면 이들이야말로 바로 그 노동자 당사자들”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국가혁명배당금당의 ‘당사자 천 명의 예비후보 출마’라는 성과를 아프게 주목한다”며 “이들이 꾸준히 10년간 사람들을 모으는 동안 ‘진짜 정당’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고, 비록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듣기에 구체적인 정책을 피부에 와 닿게 제시하는 동안 ‘진짜 정당’들은 어떤 정책을 개발하고 또 알리고 있었던가”라고 되물었다. 여·야 진영 다툼의 빈 공간을 허경영 포퓰리즘이 치고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허경영 배당금당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국정치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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