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 여성 수상, 갈 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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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올해 사상 최초로 여성 듀오에게 주어졌다. 수상을 주관하는 하얏트재단의 톰 프리츠커 회장은 지난 3월 3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에 기반을 둔 여성 건축가 이본 파렐(69)과 셸리 맥나마라(68)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여성 건축가가 이 상을 받은 게 처음은 아니지만, 성과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건축계 풍토를 또 한 번 바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20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이본 파렐(왼쪽)과 셸리 맥나마라 / 하얏트재단

2020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이본 파렐(왼쪽)과 셸리 맥나마라 / 하얏트재단

심사위원단은 “두 건축가는 기후 등 자연 요소를 민감하게 고려해 건축 공간과 조화시켜 왔다. 언제나 정직한 과정을 고수하는 디자인으로 사려 깊은 공간과 디테일을 빚어냈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파렐과 맥나마라는 더블린대를 졸업하고, 1978년 그래프톤 건축사무소를 함께 설립했다. 유럽 전역에 건축물을 세우고, 남미 페루에까지 대표작을 남겼지만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페루 리마 해변에 세워진 공업기술대(UTEC) / 그래프톤 건축사무소

페루 리마 해변에 세워진 공업기술대(UTEC) / 그래프톤 건축사무소

듀오는 2008년 이탈리아 루이지 보코니대학 밀라노 캠퍼스 건물로 처음 주목받았다. 지하 강당 위에 돌로 덮인 단단한 조개껍데기 모양을 한 이 독특한 구조물로 그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건축축제에서 ‘올해의 세계 건축상’을 수상했다. 이후 2015년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페루 리마 공업기술대(UTEC) 캠퍼스 건물로 다시 한 번 찬사를 받았고, 201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 비엔날레 총괄 큐레이터로 선임됐다.

이들의 작업은 산악지대가 많은 모국 아일랜드 지리와 기후에 영향을 받았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고, 주변 풍광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건축물을 주로 선보였다. 리마 해변의 풍경을 닮은 UTEC 건물이 대표적이다. 건물의 북쪽 외관은 해변의 깎아지른 절벽처럼 우뚝 솟아 있다. 남쪽은 바다를 향해 열린 계단식 정원을 둬 건물 안에서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게 했다.

2000년 지어진 더블린 노스킹스트리트 공동주택에서는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소음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53㎝ 두께로 외벽을 올렸고, 거리를 등진 중정 쪽 외벽은 유리로 만들어 열린 공간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이 여성 듀오의 작품은 자연스럽고 배려가 넘치지만 프리츠커상의 수상자 선정은 그렇지 못했다. 모두 43차례 수상자를 냈지만 여성 건축가는 드물다. 여성 단독 수상자는 2004년 이라크 출신 자하 하디드뿐이다. 2010년 일본의 세지마 가즈요, 2017년 스페인의 카르메 피겜 모두 남성과 공동수상이었다.

프리츠커상은 무엇보다 마땅히 상을 받아야 했을 여성 건축가를 배제했다는 과거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올해 선정위원 중 한 명이었던 중국인 건축과 왕슈는 2012년 수상 이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내 루웬유도 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듬해에는 1991년 수상한 로버트 벤투리 외에 그의 아내 데니스 스콧 브라운도 수상자로 인정돼야 한다고 촉구하는 청원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점차 여성 수상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박효재 국제부 기자 mann616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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