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휘청이는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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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지역 대기업 생산라인 차질… 전자·자동차·정유 등 산업계 전반에 충격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국내로 번지면서 한국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확진자 급증으로 전자·자동차·정유·항공 등 산업계 전반에 충격이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최대 수출처인 중국시장이 마비된 데 이어 국내 소비심리마저 위축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과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보다 장기화될 것을 우려하면서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낄 것으로 전망했다.

객실 승무원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대한항공이 2월 26일 임산부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 대한항공·연합뉴스

객실 승무원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대한항공이 2월 26일 임산부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 대한항공·연합뉴스

공단이 밀집한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 대기업 생산라인이 멈추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월 22일부터 24일 오전까지 휴대전화 생산기지인 구미사업장을 폐쇄했다. 이곳은 신작 폴더블폰 ‘갤럭시Z플립’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곳이다. 현대자동차는 협력업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자 2월 25일 하루 울산공장 포터 생산라인 휴업을 결정했다. 현대차의 경우에는 앞서 중국에서 부품 조달이 어려워지자 임시 휴업도 산발적으로 시행한 바 있다.

여행객 급감에 항공·여행업계도 비상

LG전자는 인천사업장에서 근무 중인 직원의 가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한시적으로 연구동을 폐쇄됐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공장이 완전히 멈추는 ‘셧다운’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초유의 상황이 오게 되면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석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정유업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 정유사들은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높고 그중에서도 중국 수출 비중이 20%에 육박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중국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올해 1분기 글로벌 석유 수요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항공과 여행업계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한·중 항공노선의 70% 이상이 중단 또는 감편된 데 이어 동남아 노선도 축소되고 있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지난해 7월 이후 일본 여행 불매운동 여파로 타격을 입은 뒤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 대체노선을 늘리며 위기 탈출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여행객이 급감하자 LCC들은 거의 ‘개점 휴업’ 상황에 놓여 있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각지에서 한국을 상대로 한 여행경보를 상향하고 동시에 한국인 입국절차도 까다롭게 하고 있다.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뿐 아니라 ‘아웃바운드(한국인의 해외여행)’까지 막히면서 중소 여행사들의 줄도산은 시간 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자료에 따르면 이달 전 산업의 업황 BSI는 한 달 전보다 10포인트 하락한 65를 기록했다. BSI란 기업들이 체감하는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로 부정적으로 응답한 기업이 긍정적으로 본 곳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 미만으로 떨어진다. 이번 결과는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3년 1월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온 2012년 7월이나 금융위기 시기였던 2008년 11월에도 각각 9포인트씩 내리는 데 그쳤다.

2월 자영업자의 가계수입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 역시 87로 한 달 전보다 8포인트 떨어지면서 2009년 3월(7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전파 속도가 가팔라지자 기업들은 속속 재택근무에 돌입하고 있다. SK텔레콤·SK(주) 등 SK그룹 6개사는 계열사별 상황에 맞춰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지난 2월 25일부터 1~2주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가장 먼저 재택근무에 들어간 SK텔레콤은 네트워크 관리 인력 등을 제외한 90%가량의 임직원이 집에서 근무한다.

현대자동차 노사 대표가 코로나19 관련 선제적 비상대응 체계 구축과 지역사회 위기 극복 지원을 위한 회의를 2월 25일 울산공장 아반떼룸에서 진행하고 있다. / 현대차·연합뉴스

현대자동차 노사 대표가 코로나19 관련 선제적 비상대응 체계 구축과 지역사회 위기 극복 지원을 위한 회의를 2월 25일 울산공장 아반떼룸에서 진행하고 있다. / 현대차·연합뉴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도 본사 출근 대신 다른 곳에서 근무하는 원격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제약업계는 다국적 제약사들뿐 아니라 국내 제약사들도 병·의원 접촉이 많은 영업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기업들의 발 빠른 태세 전환은 정부에서 코로나19 사태 관련 위기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뒤 이뤄졌다.

스마트폰 시장 침체 장기화 우려

직장 내 감염 우려도 커지면서 기업별로 다양한 대처법이 실행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식당 이용 시 마주 보지 않고 식사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 본사에 외부인 출입을 제한한 현대자동차는 직원식당 이용 시간을 2부로 나눠 사용 인원을 줄이는 한편 도시락 배달 수량을 늘려 직원 다수의 접촉 기회를 최소화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경우에는 발병자가 많은 대구·청도에 거주하는 직원들이 사업장에 출입하지 않도록 하고 유급휴가를 부여했다. 일부 회사는 인파가 몰리는 혼잡시간대를 피해 출근시간을 오전 10시 이후로 조정하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중국과 한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올해 1월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이 1억50만 대로 전년 동기(1억790만 대) 대비 7% 감소했다고 밝혔다. 중국시장의 40%를 차지하는 화웨이 출하량이 39% 줄어든 영향이 컸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올해 1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5~6%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증권가도 부정적인 전망 일색이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은 세계 스마트폰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라며 “1분기 중국 내 스마트폰 생산이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아이폰의 생산 차질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영산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의 본질적인 리스크는 ICT 하드웨어 시장의 전반적인 수요 둔화에 있다”며 “스마트폰·PC·TV 등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제품에 대한 수요 타격이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 리스크로 작용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발병한 여느 바이러스 감염증보다 국내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정유탁 중소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중소기업 영향 분석 리포트’에서 “과거 사스나 메르스에 따른 질병 확산 영향은 비교적 단기에 그쳤다”면서 “코로나19는 중국의 경제여건 악화, 한국과 중국 간 경제적 연계성 등을 고려할 때 과거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비스업이 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정 연구원은 2003년 사스 당시 외국인 관광객은 11.1%, 2015년 메르스 땐 6.8% 줄었는데 코로나19에 따른 타격은 이보다 더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구교형 산업부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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