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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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야구감독이 있습니다. 그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만을 중용하지 않습니다. 실력이 좀 떨어지더라도 다른 장점이 있다고 판단되면 눈여겨보고 기용합니다. 예컨대 타격이 시원치 않은데도 활기찬 성격에 입담 좋은 선수를 1군 벤치에 앉혀놓는 식입니다. 그 선수는 안타나 홈런을 많이 치지 못하지만, 더그아웃에서 쉴새없이 목청을 높여 동료들을 독려해 분위기를 살립니다. 야구 좀 한다고, 인기가 있다고 거들먹거리며 동료들과 마찰을 빚는 선수보다 이런 사람이 팀에 훨씬 보탬이 됩니다.

[편집실에서]리더의 조건

그 감독은 실력 이상으로 선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주의 깊게 살핍니다. 그리고 그 선수를 언제, 어디에 써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반드시 쓰임새가 있다고 보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철저히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찬스가 왔을 때 그 선수를 과감히 활용해 성공합니다. 한번 실패한 선수, 효용가치가 떨어진 선수에게도 애정과 기대를 품고 그들의 재기를 돕습니다. 그가 맡은 팀은 결코 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지도철학이 서서히 뿌리가 내리면서 선수가 다시 일어서고, 팀이 살아났습니다.

지난 2월 11일 타계한 일본 프로야구의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1935~2020) 감독의 이야기입니다. 야구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에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의 용인술과 리더십은 야구계뿐 아니라 일본사회에서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 1999년 4월 일본 인사원이 중앙부처의 간부가 될 국가고시 합격자 7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사’로 뽑히는 등 앙케트 조사를 할 때마다 노무라는 이 부문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높이 평가할까요. 그건 아마도 ‘아무리 부족한 사람도 강해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그 능력을 끄집어내 주는 역할을 노무라 감독이 훌륭히 수행해왔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그는 개인의 능력보다 팀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을 우대하고, 팀플레이의 가치를 인정해준 지도자였습니다. 진짜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솔한 대화를 통한 소통, 상대와 의견을 공유하려는 노력도 반드시 뒤따랐습니다. 선수들이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노무라 감독은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을 필요에 따라 부속품처럼 적당히 쓰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가장 적당한 선수를 가장 적절한 곳에 쓰는 건 지극히 어렵다.”

사실 사람을 내치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닙니다. 어느 조직에서든 그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이유도 다양합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능력이 모자라서, 부서장과 맞지 않아서…. 요즘 우리 사회에서 ‘노무라’ 같은 상사나 리더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사 보고 입사했는데, 상사 때문에 관두게 됐다”는 푸념이 적지 않게 들립니다. 큰 회사나 그룹을 이끄는 리더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몇 안 되는 작은 조직에서라도 노무라 같은 선배나 상사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흐름은 아마도 사회시스템의 토대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될 것입니다. 노무라 감독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떠오른 단상입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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