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사태’에 개미들 피눈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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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1조원 손실 예상… 손실률 마이너스 90%도

“마이너스 70%.”

적금과 유사한 상품이라는 은행 프라이빗뱅커(PB)의 추천을 받아 라임자산운용(라임) 사모펀드에 가입한 ㄱ씨(69)는 통장에 찍힌 손실률을 확인한 순간 눈을 의심했다. ㄱ씨는 “은퇴자금 1억원을 넣었는데 3000만원만 남았다”며 “억장이 무너져 잠도 못 자겠다”고 호소했다. 상품을 추천한 은행 PB는 “우리도 라임에 속았다”며 “소송을 걸든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하라”면서 말을 바꿨다.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피해자들이 2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검찰 수사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피해자들이 2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검찰 수사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2차 기준가격 조정’ 하면 손실 더 커져

환매 중단으로 최대 1조원가량 손실이 예상되는 라임 펀드 개인투자자들에게 펀드 성적표가 도착하고 있다. 2월 19일까지 확인된 최대 손실률은 마이너스 90%에 이른다. 손실률 100%인 ‘시한폭탄’도 남았다. 라임이 운영한 4개 모(母)펀드 중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에 연루된 무역금융펀드의 손실률은 3월에 나온다. 금융당국은 전액 손실 가능성이 작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라임은 지난해 10월 유동성 위기 등으로 4개 모펀드에 투자하는 자(子)펀드를 환매 중단 후 회계법인 실사와 기준가격을 조정해 자펀드 손실률을 투자자에게 통보하고 있다. 하지만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이 걸려 있는 자펀드는 ‘2차 기준가격 조정’이 들어갈 수 있어 손실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 TRS란 증권사가 운용사의 증거금(펀드 투자자산)을 담보로 자산을 대신 매입하는 것으로, 증권사는 채권자로서 펀드 손실 위험시 1순위로 원금을 회수한다. 즉 펀드별 TRS 계약 비율에 따라 투자금 회수율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는 판매사(은행·증권사)들이 이런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ㄴ씨(60)는 “뉴스에서 TRS를 처음 들었다”며 “증권사가 돈을 빼간 뒤 (내가) 후순위로 받는 줄 알았다면 가입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환매 중단된 173개 라임 자펀드에 투자된 계좌수는 총 4616개, 투자금은 1조6679억원이다. 이중 개인계좌는 4035개, 투자금은 9943억원에 달한다. 이번에도 라임의 사모펀드 중 절반가량이 은행에서 팔려 또다시 은행의 불완전판매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12월 기준 은행이 판 라임 펀드는 8146억원 규모로 전체의 49%를 차지한다. 법인을 제외한 개인투자자로 범위를 좁히면 전체 수탁액 9942억원 중 은행에서 판 금액이 5778억원으로 58%에 달해 은행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컸다. 수천억원대 원금 손실을 낸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비교하면 은행의 불완전판매 외에도 사기까지 얽혀 피해 규모가 더 커졌다.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투자처인 미국 펀드 운용사가 폰지사기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서 등록취소와 자산동결 제재를 받아 투자금을 언제 회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금감원은 라임과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를 제공한 신한금융투자가 무역금융펀드에 부실이 발생한 것을 숨긴 채 펀드를 팔았다(사기 혐의)고 보고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 PBS는 증권사가 사모펀드 운용사에게 필요한 대출·증권대여·자문·리서치 등의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다. 신한금융투자는 사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라임 펀드를 설계하는 등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은 수사를 앞두고 도주해 검찰이 지명수배를 내린 상태다.

‘라임 사태’에 개미들 피눈물 난다

그 외 라임 임직원들은 업무상 정보로 거액의 부당이득을 취하고 수익률 돌려막기 등의 위법행위를 한 사례 등이 금감원 조사에서 드러났다. 펀드 판매사(은행·증권사)는 “라임에 속은 피해자”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금투 업계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대의 금융사기가 터졌다”며 금융당국의 책임을 제기한다. 하지만 당국은 “사기는 늘 일어나는 것”이라며 “일부 펀드의 문제”로 사건을 축소해 투자자들과 업계의 빈축을 샀다. 이처럼 서로 진흙탕 공방을 벌이는 사이 개인투자자들만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사태 키워

투자자들의 배상 방법은 두 가지다. 가장 빠른 방법은 금감원의 분쟁조정을 통하는 것이다. 불완전판매로 분쟁조정을 신청하면 상황에 따라 6개월 이내 투자금의 절반가량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DLF 땐 판매사에 최대 80% 손실을 배상하라는 조정안이 나왔는데, DLF는 위험등급이 1등급인 초고위험 상품이었다. 하지만 라임 펀드는 3~4등급으로 분류돼 위험도가 낮아 DLF보다 불완전판매를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 사기행위가 인정되면 계약 취소에 해당돼 투자원금을 전액 돌려받을 수도 있다. 또 라임이나 판매사를 상대로 손배소송을 할 수도 있지만 투자자가 불완전판매와 사기에 대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모두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금투업계는 정부의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라임 사태를 키웠다며 제도 및 규정의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사모펀드는 소수 투자자(49명)에게 모은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다. 사인(私人) 간 계약으로 당국의 감시를 받지 않아 자유로운 운용이 가능하다. 금융위는 2015년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고 운용사 진입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문턱을 낮추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반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보완은 허술했다. 사모펀드 정책이 모험자본 공급을 위한 시장 활성화에 주력하다보니 이익을 추구하는 금융사들이 제도적 허점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 DLF에 이어 라임 사태에서도 일반투자자가 은행에 속아 사모펀드에 투자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사모펀드 최소 투자액이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아지자 예·적금 등 안정적인 상품을 취급하는 은행이 뛰어들어 일반투자자를 사모펀드로 끌어들였고, 불완전판매가 난무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다시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감원도 감독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감원은 지난해 8~10월 실시한 라임 검사에서 위법 사실을 발견했지만, 바로 시장에 경고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금감원이 조사 결과를 공개한 것은 수익률 돌려막기 의혹이 제기된 지 7개월이 지난 올해 2월로 ‘뒷북 발표’라는 지적이다. 김종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 후 미국과 유럽 등은 사모펀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규제를 도입했다”며 “한국도 글로벌 추세에 맞춰 사모펀드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성 경제부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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